오피니언
엘로힘과 떼오스
1.
먼저 신명[하나님 이름]을 원어부터 조금 생각해본다. 에베르말[히브리어]로 엘로힘이고 헬라말로 떼오스이다. 라틴어로 ‘데우스’라고 쓴다. 우리 배달말로 여러 가지이고 아직도 떠돈다. 보통 하나님과 하느님을 쓴다. 원어 성경에서 구약에 엘로힘만 나오는 게 아니다. 엘로아흐와 엘도 보인다. 그밖에 여러 형태로 나온다. 엘로힘의 경우 세상말로도 쓴다. 그래서 번역할 때 어렵다. 엘로힘을 힘 있는 사람을 가리킬 경우 복수꼴이다. 이방신을 나타낼 때 복수로 범신을 가리킨다. 상제와 천주로 우리가 옮기기도 했는데 어근을 생각하면 알맞지 않다. 그렇다고 하나님도 올바른 번역이 아니다. 우리말로 본디 유형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규명하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신으로 옮기면 그나마 조금 나은데 훈독으로 귀신이라고 붙였으니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만 한다. “귀신 신” 자로 표기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다. 다시 말하면 한글맞춤법과 표기법, 표준말제도 같은 것에 얽매이면 세상에 물든 번역이 된다. 모쉐가 처음 적을 때 엘로힘을 어떻게 골라서 썼는지 생각해야 한다. 구약에 많은 신들이 나온다. 이른바 셈어 계통만 보아도 알 또는 울이 신의 어근이다. 해서 알라로 오늘날 이슬람에서 신명으로 쓴다. 알에서 모음만 비틀어서 엘로 구약에서 표기했는데 본디 에베르말이란 모음 없는 자음글자이기에 엘이나 알이나 같은 말이다. 이것을 주목하자.
2.
원어에서 신명을 말뿌리로 먼저 정리하고 성경 전체 가르침에서 나오는 것을 일치시켜야 한다. 문제 중 하나가 계시언어들인 에베르말, 아람말, 헬라말을 먼저 알아야 한다. 구약과 신약에 쓴 두 언어를 보면 사뭇 다르면서도 연관함을 신명계시에서 찾아야 한다. 헬라말로 신명이 떼오스인데 두 말이 도무지 같지 않다. 뜻으로야 둘이 세상 말이지만 거룩하게 가다듬어 계시언어로 쓴 것뿐이다. 에베르말과 헬라말을 견주면 기묘하다. 지금 우리가 개혁자들이 받은 전통원어성경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성경”히브리어와 “성경”헬라어로 정해서 다루어야만 한다. 원문 비평학으로 나가면 이미 성경에서 벗어나기에 세상 언어학일 뿐이다.
엘로힘과 떼오스를 똑같은 신명으로 받아야 한다. 물론 계시관점에서 더 충만하게 신약계시에서 신명을 밝힌 것이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구약에서 자체로 엘로힘이 부족하단 말이 아니다. 말과 글에는 역사의 발자국이 묻어있고 생각을 사로잡는 힘을 지니기에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소리와 문자원리를 바로 알아야만 계시언어를 다룰 수 있다. 지금 우리말이 인도유럽어 문법에 깎여서 강제로 끼워있고 자팬 소리에 들어가서 찌부러진 채로 쪽혀 발음으로 망가졌다. 갈수록 두 언어로 변질한다. 이것이 한글번역성경에서 드러난다. 가칭 새한글성경이 나오면 더욱 심해질 것이다. 신명에도 직간접으로 손댄 흔적이 나타날지 모르겠다.
3.
히브리어 엘로힘을 구약번역성경 중 헬라어로 된 칠십인 역본이 있다. 이 역본에도 떼오스로 나온다. 그럼 이것을 보고 이에수스[예수]와 아포스톨로스[심부름군, 사도]들이 인용했는가? 흔히 신약헬라어성경이 칠십인 역본을 보고 인용했다고 쉽게 말한다. 누가 언제 무엇을 근거로 한 이야기인지 모르나 뜬구름 잡는 말이다. 구약히브리어성경 전체를 읽고 연구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더구나 신약헬라어성경을 구약히브리어성경에 비추어 깊이 제대로 연구한 사람이 누군가? 신학방면에서도 그렇지만 성경번역을 바로잡은 한글로 번역한 사람이 그동안 하나라도 있는가? 그저 들은풍월 따라서 앵무새처럼 무책임하게 말한다.
구약원어를 보면 모음부호라 해서 어떤 이들이 만들어 붙였다. 그 모음기호들을 살피면 헬라모음원리를 본땄는데 엉성하다. 그것이 자음소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사어가 되었기에 소리를 보존한다고 붙였다는데 엉성한 부분들이 보이고 5모음과 2반모음을 강제로 집어넣었기에 말도 않 된다. 다시 말하면 히브리어 성깔에 맞지 않는 표기이다. 게다가 이미 글꼴 자체 까지 바꾼 것에다 붙였기에 울퉁불퉁하다. 처음 배우는 사람이 누구라도 읽는 것조차 어렵다. 글꼴과 모음부호가 옛 사본과도 달라진 바람에 변질하지 않게 만들었지만 제한된 틀이기에 더 이상 말뿌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우리 모음체계에 견주면 햇병아리이다.
4.
엘로힘을 꼭 이렇게 소리내는 것에 지나칠 까닭이 없다. 모음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자음뜻을 갈라서 구분하는 구실 뿐이다. 땅에 속한 자음언어이기에 그렇다. 글꼴 자체도 미치는 힘이 대단한데 모음부호 까지 범벅이니 어수선하다. 섭리 가운데 첨가한 것이기에 조심해야 한다. 그동안 원어표기는 인도유럽어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계를 지닌다는 말이다. 더 바른 언어가 있다면 새롭게 손질하여 더 오붓하게 드러낼 뜻이 있다는 말이다. 성경으로 신학연구할 때 겨레어 마다 한계를 지닌다. 자모원리가 불충분한 하위언어인 알파벳으로 상위언어를 어떻게 제대로 다루겠는가? 이런 기본을 잘 알아야 한다. 이게 서방신학의 한계이다.
신명을 표기하고 뒤칠 때 우리 배달말이 영미문법과 자팬발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제 자리를 잡아서 연구한다면 성경신학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리라 본다. 서방언어학에서 범어 까지 나아가 보았지만 아직도 헤맨다. 영어로 갇 이라고 뒤치는데 갈수록 태산이다. 글자표기와 속뜻이 따로 놀기에 아주 위험하다. 자유주의 비평신학이 독일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는데 다른 나라말이야 오죽하겠는가? 일단 엘로힘을 히브리어보다 더 잘 소리내도록 음역할 언어가 있는가? 우리 배달말 말고는 없다. 그러나 우리말 표기법이 망가져서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 누가 이렇게 망가뜨렸는가? 28글자를 다시 찾아 쓰고 가다듬어야 한다.
5.
음소인 자모가 초성중성종성으로 셋을 합하여 비로소 뜻 담긴 소리로 글자를 만드는 유일한 언어가 우리말이다. 종성이 받침을 말하는데 언어학에서 코다라고 부르는데 말뜻이 담기기에 조심해야 한다. 우리 정음에서 모음을 줄였고 단모음체계를 무너뜨렸으며 자음도 자꾸 단순하게 만들어 줄이기에 심각하다. 더우기 한자발음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가득하다. 한자발음을 우리가 정음으로 동국정운에서 이미 밝혔기에 우리한자로 바꾸어야 한다. 나중에 다루겠지만 여호와만하더라도 우리한자가 아니고 자팬한자이다. 절대발음을 누구도 모르지만 예호바가 가장 가까운 발음이다. 언문과 한문을 정음으로 한자를 한음으로 소리낸다.
신명을 음역이던 풀이역이던 뒤칠 때 두 언어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구약을 신약으로 옮긴 원칙을 먼저 밝히고 다른 번역성경을 참고하되 개혁자들이 직역으로 번역한 것을 잘 새겨야만 한다. 엘로힘을 떼오스로 뒤친 보기를 연구하여 성령님이 가르치심을 따라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으로 뒤친다면 그 말뜻을 철저히 연구하여 확정해야만 한다. 이것을 먼저 쓴 게일이 잘못했다고 고백했다. 언더우드가 구역성경 부터 받아들였다는데 아무런 근거를 연구한 바 없다. 하나님 이름에서 이런 정도이니 성경낱말 전체와 번역 자체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지금 한글번역성경들로 성경연구란 한계를 벗어날 수 없고 번역자들이 집어넣은 언어관에서도 못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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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리종연 목사 (서울진명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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