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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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2-28 21:1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가정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


<지난 호에 이어서>


V. 어린이를 칭찬하고 존중하였다.

파피루스(예수 당시 이집트 지방 문서를 갈잎으로 만든 일종의 종이)에 적혀 있는 기록은 1세기경에 있었던 남아(男兒)선호 사상을 알려주고 있다. 최근 발굴로 나타난 어느 파피루스 기록에 의하면 당시 가정생활의 면모를 알 수 있다. 외국에 나가서 일하는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우리는 지금 알렉산드리아에 있소. 당신이 애들을 잘 돌보기를 바라오. 나는 보수를 받는 대로 당신에게 그것을 보내겠소. 만일 그 아기가 사내거든 잘 기르고, 계집아이거든 내어 버리시오.” 이 서신은 당시에 지배한 남아 선호 여아 무시 내지 폐기 사상을 보여준다.
1세기경 유대인 사회에는 어른 우위 및 남아 선호(選好) 사상이 지배했다. 이런 시대 배경에서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는”(막 10:13) 장면이 이해될 수 있다. 복음서 저자 마가는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꾸짖는 제자들에 대하여 노하시고 이들을 가르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5)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신다”(막 10:16). 복음서 저자 마태도 어린이를 사랑하는 예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2-3). 예수는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함을 좋아하셨고 이들의 순수한 신앙을 칭찬하셨고,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이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어린이 존중에 있어서도 우리는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이 당시 어린이를 천대한 시대사상을 능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VI. 하나님 나라를 우선(優先)시함.

예수는 가정을 신성시하면서도 가정을 하나님 나라에 비하여는 이차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전파를 위하여 가정생활에서 나와서 복음전파에 모든 것을 바쳤다. 복음서 저자 마태는 하나님 나라를 우선시하는 예수의 말씀을 전해준다. 복음 사역을 하고 계시는 예수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서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마 12:47)라고 말을 건넨다. 예수는 그에게 다음같이 대답하신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나의 어머니요 동생”이라고 칭하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49-50).
예수는 복음으로 인하여 가족 관계에 갈등과 불화가 생길 것을 말씀하신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5-36). 이러한 불화와 갈등은 재산이나 명예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과 사람의 뜻을 따르는 것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불화이다. 복음서 저자 누가도 장례(葬禮)를 당한 제자에 대한 예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다. 제자는 말한다: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눅 9:61). 예수께서는 그에게 하나님 나라의 우선을 말씀하신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 9:62). 예수는 여기서 부친의 장례를 치를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부친은 이미 돌아가셨으니, 장례는 남은 가족들에게 맡겨두고 먼저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우선을 두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치열한 영적 전투 속에서 죽은 자에 대한 작별 인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예수는 따름의 긴급성, 말하자면 제자직의 극단성(the radicality of the discipleship)을 말씀하신다. 예수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정보다는 하나님 나라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가르치고 계신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영한 (기독교학술원장 / 숭실대 명예교수)

한중 문화의 전달자,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
개혁자 마틴 루터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