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선교사 언더우드의 『그리스도신문』 발행의 이유
한국 근대화에 기독교가 학교와 병원 설립에 기여한 점은 여러 측면에서 알 수 있지만, 신문 발행에 대한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구한말 대표적인 기독교 신문은 감리교의 아펜젤러의 주관하에 『조선그리스도인회보』(1897.2.2 창간 후에 『대한그리스도인회보』)와 장로교의 언더우드 중심의 『그리스도신문』이 그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 한국명 원두우)의 『그리스도신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언더우드는 자신의 선교 사역에서 신문 창간이 매우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한국 선교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사명감을 표현하였다. 언더우드가 신문 발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 사람에 대한 그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음을 신문 기사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언더우드는 신문을 통해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선교에 그 목적을 두었다. 한편 신문이 사람들에게 복음 전파하는 데 영향을 준 사실이 길선주 목사의 기록에 나타나고 있다. 평양 제일교회에서 거행된 추도식에서 길선주 목사는 자신이 회심하게 된 것이 기독교신문의 영향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언더우드에게 문서 사역은 그의 선교 사역의 조성 기반이었다. 언더우드는 문서 사역으로 한글 보급과 성경 간행과 찬송가 보급 그리고 정기간행물 발행과 전도문서 발행에 주력하였다.
『그리스도신문』은 1897년부터 1901년까지 언더우드가 간행하였고, 1901년 5월 안식년으로 언더우드가 미국에 가면서 신문 편집을 게일(J.S. Gale)에게 맡겼다. 이후 1905년 7월 1일에 장로교와 감리교 연합으로 『그리스도신문』으로 발간되어 1907년 9월 27일까지 간행되었다. 그 뒤 1907년 11월 13일 『예수교신보』로 개칭하고, 1910년 『예수교회보』로 다시 바뀌었다. 그리고 1915년 감리교의 『그리스도회보』와 함께 『기독신문』으로 변경되었다. 신문 발행의 필요성으로 언더우드는 한국 사람들의 인식이 신문의 필요성에 관심이 없는 시대적 상황을 말하고 있다. 언더우드는 신문이 다른 나라에서는 아주 필요한 것인데, 조선에는 아직 그 필요성을 잘 모르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말하고 있다. 신문이 백성과 정부의 일을 서로 알게 하여 나라에 유익함이 있다고 하였다. 언더우드는 책보다 더 박식해지는 것이 신문이고, 나라의 일과 교회일 그리고 세상의 일을 알게 되는 세상을 사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신문의 유익함을 강조하였다.
언더우드는 한국에서 신문을 발행하는 일이 어렵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유컨대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객점(客店) 주인이 어떻게 주인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손님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려 하면 (땔감으로 쓸) 나무도 장만(필요한 것을 사거나 만들거나 하여 갖추다)해야 하고 물도 길어야 하며 쌀도 씻어야 하고 그릇도 설거지해야 할 텐데, 어떻게 이 여러 가지 소임을 홀로 담당할 수 있겠는가. 조선에서 신문 내는 일에 도와주는 이가 부족한 이유는 이렇게 신문을 내는 일이 처음인 연고다. 지극히 쉬운 밥 먹는 일 같은 것이라도 배우기 전에는 서투른 법이거늘 어떻게 배우지 않고 신문 내는 일에 조력할 수 있겠는가. 조선의 친구들이 신문 내는 법을 배운 연후에는 저술하는 이가 각색 말을 기록하는 이에게 맡겨두어 고준(考準)하는 염려가 없겠으나 아직은 그렇게 할 때가 되지 못한 듯하니 그러므로 이 객점 주인이 종종 옷과 갓을 벗고 나무도 장만하며 물도 길을 수밖에 없겠더라.
『그리스도신문』은 언더우드에 의해 1897년 4월 1일 창간되었다. 그는 논설을 통해 신문 창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신문』 제1호를 오늘 창간하는데, 이 신문의 (내용을) 어떻게 꾸밀지에 대해 밝힌다. 이 신문은 기독교의 신문이니 기독교의 교회가 만민에게 복된 소식과 착한 일 한 것을 전하려 한다. 이 신문에 게재되는 내용은 조선 나라와 백성을 위함이며 또 기독교회는 임금 섬기기를 극진히 충성하라고 강조한다.” 신문 창간의 의미가 백성으로 통치자에게 충성과 칭송을 표하고, 백성들에게 필요한 신문이 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이 창간사를 보면 민족 교회의 정체성에 충실하여 ‘충군 애국 교회’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진술이다. 신문 창간의 목표가 조선 나라와 백성을 위하고 교회가 임금 섬기기를 극진히 충성하라는 것이다. 이는 언더우드의 선교론이 서구 기독교인의 사상과 문화를 이식받는 것이 아니라, 한국 문화 전통과 민족 정체성을 계승하는 것이 언더우드의 목표였던 것이다. 신문 발행은 일주일에 한 번 발행하는데, 신문에 기고하는 사람들 중에 미국 공사 실(John M.B. Sill) 씨와 부공사 알련(H.N. Allen) 씨와 육영공원 교사 하치신(W. du F. Hutchison) 씨와 배재학당 교사 벙커(Dalzell A. Bunker) 씨와 영국사람 견묘(G.W. Gilmore) 씨와 ‘사민필지’를 지은 미국 사람 홀보(H.B. Hulbert) 씨와 의비션(O.R. Avison) 의원과 또 고명한 여러 사람을 명시하고 있다.
언더우드는 신문이 만고에 없는 은인과 같은 것이라 평하면서, “신문이라는 것을 누가 처음에 만들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세상에 요긴하고 만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임을 생각하면 참으로 만고에 없는 은인과도 같은 것이니, 천하사람 중 칭찬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천추만대에 잊을 수 없는 공헌이다. 서양의 각 나라를 보면 신문이 여러 가지가 있어서 정부의 비밀스러운 일을 신문을 통해 보도함으로써 백성이 다 알게 한다. 향곡(鄕曲)에 사는 평범한 백성이 의리를 알지 못하여 무식하게 하는 일도 정부에서 알 수 있다. 방방곡곡 염문을 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크고 작은 일을 신문이 아니면 어떻게 자세히 알 수 있겠는가. 거짓말을 조금도 보태지 않은 적실(的實)한 소문을 신문이 아니면 그렇게 진실되이 전할 수 있겠는가. (신문이) 종이 한 장에 기록한 글에 지나지 않지만 지극한 보배와 같은 것이다. 극동의 여러 나라 중 대한국에만 홀로 신문이 없었으나 지금은 『독립신문』과 『그리스도신문』과 『한성신문』과 『죠션크리스도인회보』가 있어서 지구상의 모든 일과 천리와 각국 형편을 알려주고 있다.”
언더우드는 신문을 통해 사람이 박식해지고 문견이 넓어지며, 나라와 백성과의 관계에서도 나라가 흥왕하는 데 필요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언더우드는 당시 신문 발행이 어려운 일이지만, 신문 발행을 통해 견문을 넓혀주려는 언더우드의 신념을 알 수 있다. “어떠한 연고로 힘과 세월과 돈을 들여가며 신문을 내겠는가…돈을 벌려 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조선의 친구들이 이때를 당하여 문견을 넓히려 하는 마음이 목마른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보고 지식의 조금치라도 유익함이 있을까 하여 이 신문을 내는 것이다.” 구한말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신문 발행이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언더우드는 신문 발행이 나라와 백성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여겨 『그리스도신문』을 창간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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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Knox Kwon (신앙과 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총신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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