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바흐의 관계 (2)

바흐의 음악은 루터의 영향을 받은 것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흐의 음악의 중심은 교회였다. 바흐는 라이프찌히로 이사해서 당시 독일에서 가장 명망 있는 직위인 성 토마스 학교(St. Thomas school)의 칸토르(Cantor, 교회음악가, 1723-1740년)와 시의 음악 감독이 되었다.
이 학교에서 체결한 칸토르 계약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흥미롭다: 1. 성실한 생활과 행동으로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열성적으로 학교업무에 임하여 학생 지도에 충실한다. 2. 이 도시에 있는 두 주요 교회의 음악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3. 시의회에 최대한의 존경과 복종을 맹세하고, 시의회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의원들 중 한 분이 학생들의 음악을 듣고자 하면 기꺼이 학생들을 보내어 음악을 들려준다. 그러나 학교의 책임자들과 교장의 사전 동의 없이는 어느 누구도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4. 의회의 이름을 걸고 학교 책임자들과 검열관들에게 복종한다. 5. 음악에 기본적인 재능이 없거나 교육을 받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학생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존엄하신 검열관과 책임자들에게 사전에 알려 동의를 얻지 못한 학생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6. 교회의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 학생들에게 성악뿐 아니라 기악도 열성적으로 가르친다. 7. 교회의 규율을 지키는 데 기여할 것이며, 그러한 취지에서 음악이 지나치게 길지 않고, 극장에서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울리게 하며, 청중으로 하여금 신심(信心)이 우러나도록 한다. 8. 우수한 학생들을 새 교회로 보낸다. 9. 학생들을 다정하고 신중하게 대할 것이나 그들이 복종하지 않을 시에는 적절하게 꾸짖고 올바른 길을 가도록 충고한다. 10. 학교에서 가르치는 임무 외에도 나에게 맡겨지는 모든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11. 만약 더 이상 임무를 수행하기가 어려울 때는 의회에 비용 부담을 주지 않고 교직의 적임자를 주선한다. 12. 현직 교장의 허가 없이는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한다. 13. 장례식에는 가능하면 관례대로 학생들 옆에서 행렬한다.
라이프찌히에서 칸토르 겸 음악 감독으로 바흐는 매주 토마스 교회와 니콜라이 교회에서 1년에 60여 회의 칸타타를 연주해야 했다.

바흐와 루터의 관계는 당시 상황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바흐가 라이프찌히의 토마스 교회에서 일을 할 때 루터교의 정통교리에 근거하여 작곡을 하였고, 라이프찌히의 도시와 교회는 교리적인 면에서 칼빈주의와 경건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다. 바흐는 음악에 자신의 신앙,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마리아 십자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반영하여 작곡을 하였다. 루터와 바흐의 관계를 고찰할 때, 음악적인 형식에서 바흐의 음악에 루터가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루터 음악의 기본적인 형식인 코랄이 바흐의 음악에 중요한 형식이다. 바흐가 200곡이 넘는 교회 칸타타 중에 코랄을 사용하지 않은 곡은 21곡에 불과하다. 루터의 음악이 바흐에 영향을 준 흔적 중에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이 있다. 이 수난곡의 가사를 보면 1) 복음서 말씀(요 18-19장, 마 26-27장) 2) 코랄 가사 3) 자유가사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루터의 음악과 신앙이 바흐에게 얼마나 영향을 준 것인지 알 수 있다. 바흐가 루터 교회에서 자란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바흐가 ‘루터란’인가 하는 문제는 그의 유품을 통해 알 수 있다. 바흐의 유품으로 1681년판 루터교 성경, 루터 전집과 루터의 단행본 시편 주석 등이 있다. 바흐는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자랐고, 그의 음악 세계도 자연히 종교적인 성향의 음악이 지배적이었다. 바흐의 음악에 루터의 사상이 영향을 준 것은 그의 음악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남겨진 바흐의 재산 리스트를 보면 루터의 작품과 복음에 대한 내용들이 많았다.

종교개혁사에서 루터의 개혁이 신학과 신앙의 개혁에만 그치지 않고, 근대 음악의 발전에 기여하고 바흐의 음악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일이다. 루터는 16세기 다른 개혁자에 비하여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음악이 자신의 개혁을 표현하는 주요한 방법이었다. 루터는 회중들이 함께 교회 음악을 부르도록 라틴어를 독일어 가사로 하거나, 회중들이 쉽게 부르도록 단순한 선율을 사용하고, 독일의 민요나 유행가 가사에 성경 말씀을 가사로 사용하여, 교회 예배 음악을 통해 그의 개혁 사상이 대중화되는 데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루터의 음악은 이후 서양 음악 발전사 즉 요하네스 엑카르트, 미하엘 프레토리우스, 요한 크루거, 바흐로 계승되었다고 본다. 바흐가 저명한 음악가가 된 것은 먼저 바흐 가문이 음악가 집안이라는 사실과 교회와 시 당국이 18세기 바흐의 시대에 후원세력(system of patronage)이었다는 점, 그리고 바흐 자신의 타고난 음악에 대한 소질과 노력, 마지막으로 바흐에게 가장 중요한 종교적인 신념 등이 그 배경이 되었다고 본다.

바흐는 음악사에 있어서 중세와 르네상스 초기 바로크 시대의 모든 음악을 집대성한 작곡가이다. 음악 기법에 있어서 바흐는 대위법의 진수인 푸가를 완성시켰고, 수백 개의 칸타타와 4성부 코랄을 통하여 화성 음악의 다양한 기법을 보여주었다. 그의 화성은 단순히 하나의 멜로디에 다른 성부가 종속되는 수직적 처리가 아니라 각 성부의 독립성을 보장한 수평적 요소를 병행한 것이므로 오늘날의 화성법의 교과서가 되었다. 바흐는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 음악가였다. 그는 하나님을 위한 완벽하고도 최상의 음악을 만드는 일에 평생을 바친 작곡가였다.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이 말은 바흐가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였다는 의미에서 음악의 아버지가 아니라, 바흐가 이전 시대의 음악을 조합하고 최고의 음악으로 한 차원 올려서 새로운 미래의 음악 기초를 마련한 음악가였다는 의미이다. 현대의 음악은 바흐의 음악은 아니지만 바흐의 음악은 현대 음악의 구성 원리와 창작기법을 설명해 주는 교과서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의미로 보면 바흐는 ‘근대 음악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루터의 영향을 받은 바흐의 음악의 기초는 복음과 관련이 있었고, 그의 음악의 작곡과 음악 활동의 중심이 교회였음을 알 수 있다. 바흐의 음악 활동 중에 라이프찌히의 성 토마스 학교의 칸토르와 시의 음악 감독으로서의 활동이 이를 반영한다. 바흐의 사후 그가 남긴 유품을 보면, 바흐가 루터의 작품과 신학에 얼마나 관심이 많았는지를 알 수 있다. 바흐의 음악에 루터의 영향은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면이다. 루터의 개혁이 신학과 신앙의 개혁을 통한 교회 개혁이었듯이, 교회를 통해 보여준 바흐의 음악은 ‘하나님 말씀 중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의 16세기 종교개혁의 메시지를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본다. 루터는 루터대로 바흐는 바흐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개혁가와 음악인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면서 루터의 신학 사상이 바흐의 음악으로 승화된 점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