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개혁 506주년과 산상수훈
2023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 506주년 기념일이다. 1517년 10월 31일은 독일의 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비텐베르그 교회에 로마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95개조 항의문을 게시한 날이다. 506주년 종교개혁 기념을 보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는 루터의 개혁 사상을 잊고 있거나, 아니면 개혁의 의미를 오해하고 일면 왜곡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 교회는 종교개혁 주일을 루터의 개혁 사상과 관계없이 형식적 기념 주일로 교회 카렌더에 한 날로 자리매김을 하는 정도이다. 이는 개혁자 루터에게 미안한 일이다. 국내 기독교 대학에서도 종교개혁을 대학 가을 축제의 의미로 축제 주간을 보내는데 루터의 개혁과는 관계없는 프로그램으로 그냥 축제의 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일부 신학대학원 종교개혁 세미나도 보면, 학기 수업 대체용으로 매년 하던 공허한 개혁의 주장을 반복하고 상기하는 정도이다.
필자는 506주년 종교개혁을 맞으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 교회의 이러한 종교개혁의 공허한 현상이 무슨 이유일까! 루터의 개혁의 대표적인 메시지인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구절을 통해, 한국 교회는 루터의 칭의론에 나타난 구원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교인들이 설교를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와 다른 칭의론과 구원론의 신앙에 자족하며 자신들이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자족감에 사는 우를 범한 면이 있다고 본다. 칭의론이 개혁 신앙의 본질이고 중요하지만, 이를 강조함으로써 야기되는 칭의론 강조 후유증을 기억하고 교회에서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필자는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점이라고 본다. 개혁에서 말하는 칭의는 죄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개혁의 정신으로 강조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은 예수님의 설교 산상수훈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의도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는 천국 백성다운 제자도의 삶을 말한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설교를 보면 (마태복음 5-7장) 천국 백성으로 삶의 구체적인 10가지 리스트가 소개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506주년 개혁이 한국 교회에 주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산상수훈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의 설교를 듣는 청중 중에 소문 듣고 찾아온 ‘무리’(마 5:1)들이 있다. 이들은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보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모인 이유와 관심이 자신의 병이 낫거나 예수님 통해 뭔가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는 사람들로 보여진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아니라, ‘무리 중에 제자’(마 5:1)를 언급하신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착각하거나 아니면 크리스천을 제자로 혼동하는 신화에 빠져있기도 한다. 윌라드 교수의 뱀파이어 크리스천(Vampire Christian,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제자도의 삶을 살지 않는 크리스천들)이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천국 백성은 그냥 주일에 교회 가고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보는(마 5:10) 즉 제자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설교 청중 중에 ‘무리’, ‘제자’를 언급하신 후,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를 언급하면서 ‘너희는’(마 5:13)이라고 대상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않고서, 그냥 크리스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는 어쩌면 환상이거나 신화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단순한 칭의)한다고 해서 제자가 되지는 않는다. 제자가 되려면 자기 버림과 비움이 있어야 한다.
제자도의 삶을 요청하는 구체적인 실천의 리스트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예수님은 권면하신다. 여기서도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빛과 소금이 되라(마 5:13-15)는 예수님의 권면을 좀 더 들여다 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왜 8복(마 5:3-10) 설교 후에 결론적 의미로 마태복음 5장에서 소금과 빛을 말씀하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왜 자꾸 소금보다 빛이 되려고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든다. 예수님의 강조를 자세히 보면 소금이 먼저이고 빛이 그다음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빛과 소금’이 더 익숙한 표현이지, ‘소금과 빛’이 더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만약 우리가 빛을 강조하는 것이 그러하다면 이것은 제자도의 잘못된 왜곡을 가져다주는 것이기에 수정해야 한다. 만약 예수님의 의도도 그러신 것이 맞는다면 우리는 먼저 세상의 빛이 되기 전에 먼저 소금이 되어야 한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제자도의 삶을 사는데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제자도를 한국 교회가 잘못 강조한 것이 있다면 지금 수정하자는 것이다. 한편 세상에 교회가 더 많아야 할 이유도 없고, 교인들이 줄어든다고 걱정할 일도 아니며, 바닷물 3% 염분 농도로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을 기억한다. 지금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것은 소금기 있는 크리스천 제자들이다. 내가 교수하는 총신대학교에도 1,400명의 학생들이 있는데, 수치상으로 보면 42명 정도만이라도 소금기 있는 청년들이 있으면 총신과 한국 교회는 걱정이 없을 듯하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서 지난 수십 년간의 교수와 목회에서 시행착오도 많았고, 돌이켜 보면 이에 대한 후회감이 크다. 그러나 그래도 스스로 감사한 것은 나이 20에 총신에서 공부하고, 미국 올랜도에서 이민 목회를 한 것과, 12년 전에 사당동 와우에서 개척하여 선교사역을 한 것은 다시 나에게 기회가 주어져도 다시 가고 싶은 길이다.
종교개혁은 이론적인 하나의 슬로건(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예수, 오직 영광)이 아니다. 구원의 칭의론만을 강조하는 것이 개혁 사상이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하나님이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보고, 박해받는 것이 있는 세상의 소금인 제자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2023년 개혁의 날에 세상의 빛이 되려고 하는 기도를 잠시 멈추고, 오늘만큼은 세상의 소금이 되기를 기도하며, 남은 인생 천국 백성으로 제자도의 삶을 살겠다는 결단을 열매로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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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Knox Kwon (신앙과 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총신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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