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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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08 19:3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특별계시와 알파벳


1.

이른바 “한글 맞춤법”을 보면 4장 형태에 관한 것 중 2항과 29항에 “ㄹ” 탈락이라는 엉터리 항목이 보인다. 여기에 덧붙여 두음법칙이라는 말도 않 되는 규약을 무엇보다 끝까지 고집한다.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정음[음소] 중 아주 중요한 “ㄹ” 을 죽일까? 북한에서 적고 쓰니까 반대로 하는 건가? 1933년에 “한글 마춤법” 을 1988년에 개정하면서 “ㄹ” 소리를 더욱 정교하게 가로막았다.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우리 소리 우리 글자 부터 옳바로 찾아서 발전시켜야 한다. 딸림이 왜 따님이 되는가? 하날[하늘]님이 왜 하나님이 되었는가? 언어란 오랜 동안 숙성한 좋은 발효식품 같기에 어원을 담으려면 문사철을 오래 묵힌다.
소리와 문자를 적기와 말하기에서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상이 망가져서 바른 뜻을 알기 어렵다. 언어가 망가지면 력사가 망가지고 사상도 빗나간다. 요즘 건국 개념문제도 오리무중인데 누가 제대로 말하는 이가 있는가? 무엇보다 “한글” 을 오해하고 잘못 받다보니 우리말 성경번역과 더불어 쌍두마차처럼 갈수록 번역이 엉터리가 된다. 이것을 아는 이 거의 없다. 어떤 번역 성경인가를 신학방면 말고도 언어방면에서 디벼서 바로 잡아야만 변질과 곡해를 막는다. 왜 정음 28 글자가 24개로 줄었고, 그 중에 모음도 본음이라고 6개만 설정하고 니머지를 없애거나 중모음으로 못박아서 우리 언어와 사상과 문화가 교묘하게 무너졌다.

2.

한글전용론이 한문전폐론과 맞물려 있다. 한자만 하더라도 중자와 왜자랑 뒤범벅이라 도무지 우리 문자를 알기 어렵게 만들었다. 알파벳이라는 정음을 종잡지 못하면 가뜩이나 타락한 언어인데 더욱 엉망이 된다. 여기에 영미어가 더욱 뼈속 깊이 들어왔기에 절망상황이다. 교회개혁과 그 방편인 성경해석을 생각하면 일반은총으로서 계시를 적는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가? 알파벳의 개념 조차 오리무중인데 이것으로 적은 문자를 읽고 쓰는 일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생기겠는가? 불의식 가운데 말글살이에서 성경진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어떤 결과를 만들겠는가? 중문, 왜글, 영미어를 옳바로 알려면 알파벳 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유일한 음소문자가 우리말 뿐이다! 영어만 해도 음절문자인 어정쩡하게 음소문자로 만들려고 애쓴다. 음소문자란 발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뜻의 최소단위로 나누어 말한다. a 를 에이 라고 부른다. 문자의 이름인데 그 발음이다. 발음은 음소가 아니라 음절이다. 발음기호란 음절로 한 글자로 된 글자소리이다. 글자란 초성중성종성이 합음 해야 글자를 이룬다. 라틴 문자를 보면 음절문자로 중성으로 5개 모음 뿐이다. 라틴 자음이 자체로 음소이지만 라틴 모음을 음소 라고 할 수 없다. I 가 “아이” 인데 이미 두 음절이다. 영어는 음절문자로 소리낸다. 촘스키가 보편 음운형태론으로 히브리어를 내세우지만 음소문자가 아니다.

3.

우리 모음 21개를 보면 소리글자가 아니라 음소로서 음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 자음 경우 영어 알파벳이랑 같으나 공용의 발음이 없다. 영어는 b[bi]로 이름이 발음기호로 쓰이나 음소는 발음기호가 아니다. [기윽]이 발음의 대표성 명칭이지 음소 자체가 아니다. 음소가 조합하면 그 음이 달라지고 그 음이 다르다면 뜻이 다르다는 것이다. 문자의 삼요소라는 형[글꼴], 음[소리], 의[의미]를 알아야 한다. 日을 훈몽자회에서 “나 ㅿ” 로 했고 뒤날 “날 일”로 바뀌었다. 나와 날이 다르다. 훈이 다르다. ㄹ글자가 움직임을 나타낸다. 정음 처럼 만든 알파벳이 없다. 히브리어로 엘로힘을 우리말로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말이 음소만 4개 사라진 게 아니라 이상한 규칙들로 뿌리 채 바꾸었다. 자팬음을 본음으로 놓고 엉터리 법칙을 만들어 소리를 없앴다. 전혀 다른 언어인 영미문법으로 형태 까지 다른 말로 만들었다. 근본을 찾아서 다시 회복해야만 섭리 가운데 주신 우리 말글이 산다. 계시를 마지막에 언어로 적어서 정한 것이 성경기록이다. 이것을 특별계시라고 구분해서 부른다. 첫 한글번역인 로스역이랑 뒤이어 나온 이수정역에서 이미 정음이 망가졌다. 130년이 지난 지금 더욱 뒤틀렸다. 국립국어원에서 손질할수록 우리말 성경번역이 망가지는 줄 모르고 망가진다. 우리 정음이 사라진 자리에 왜음이 버젓이 한글로 위장하여 떵떵거린다.

4.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 말이 참 두렵다. 소리가 다르면 뜻이 달라진다. 글자가 망가지면 뜻이 망가진다. 글자가 없어지면 소리가 없어진다. 자연의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기호인 정음이 언청이 글자로 망가졌는데 왜 고치지 않을까? 중어와 왜어, 영어를 가려내야만 언어식민주의를 극복한다. 알파벳이 신학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기 어렵다. 세상이 다 쓰고 서로 주고 받으니 누가 말글을 문제 삼겠는가? 우리말 성경을 보면 정음은 뒤로 밀렸고 외래어들이 설친다. 100년이 넘었으니 그 피해가 엄청나다. 우리말로 제대로 번역만 해도 신학계는 물론이고 배달겨레가 얼마나 줏대 있을까? 개혁이란 말글개혁으로 시작한다.

성경원어를 보면 무주공산 같다. 당시 성도들도 이 땅에 없다. 그 언어들도 사명을 마치고 멈추었다. 뒤에 번역과 신학으로 겨레말들이 나타났다. 원어성경을 놓고 짝퉁 유태인과 로마 카톨릭에서 선점했다. 뒤이어 16세기에 잠시 개혁자들이 옳바로 연구했다. 그것도 잠간이고 서구언어들로 원어 성경을 연구하면서 철저히 망가뜨렸다. 오늘날 원어를 제대로 배우기 어렵다. 무엇보다 제 말글을 옳바로 알아야 하고 신학언어들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말만이라도 제대로 개혁하여 갖춘다면 다른 나라 언어들을 쉽게 힘입는다. 성경 번역과 원어 연구에 성경관인 신앙고백과 더불어 언어관이 큰 구실을 한다.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5.

원어성경관이 성경번역으로 나타난다. 정음관이 원어성경관으로 나타난다. 서구언어들로 원어 알파벳을 넉넉히 알기 어렵다. 음역한 낱말만 보아도 단박에 나타난다. 우리 배달말을 정음 대로 표기하면 차원이 다르다. 음역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번역 전체에서 그 차이가 나타난다. 하지만 지금 한글이 서구언어문법이고 소리와 이해가 중문과 왜어에 물들었기에 바른 번역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쉬운 말로 개정하고 원문에 충실하게 뒤친다는 말 자체가 모순이고 거짓이다. 특별계시를 마지막에 언어를 방편 삼으신 섭리를 깊이 생각하자. 왜 우리 배달말을 아직 들어 쓰시지 않을까 생각하자. 정음을 바른 력사관을 갖추면서 붙들자.
“그 성경신학” 을 놓고 다루는 글이다. 말글살이를 알고 끝없이 닦아나가야만 언어론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말글살이 속에 이미 성경관과 신학이 나타난다. 성경에서 깨달은 말씀을 어떻게 표현할까? 나아가 그 성경신학을 우리 정음으로 어떻게 정리할까? 지금 한글성경을 보면 중문이야 말할 것도 없고 영미 문법으로 문장이 비비꼬이고 더우기 왜어의 영향으로 한자와 음역에서 온통 도배했다. 아예 처음부터 새롭게 번역해야만 정통신학도 잘 표현하고 그 성경신학도 쉽고도 깊이있게 깨닫는다. 아무리 깨닫고 확신있게 말한다 해도 언어관을 넘어서기 불가능하다. 언어주권을 되찾아야만 하는 당위를 알고 우리 정음을 배우자.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리종연 목사 (서울진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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