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교회개혁론』 저자와의 특별대담_13
<한국크리스천신문>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미완의 16세기 종교개혁이 성경 진리에 확고한 토대를 두고 완성으로 매듭이 지어져가는 제2의 종교개혁운동을 소원하며 특별대담의 연재를 시작한다. 이번 특별대담은 2017년 9월 19일 박용기 원로연구원(성경신학학술원)과 배윤리(한국크리스천신문 객원기자) 권사가 대담자로 참여하였다.
1. 저자는 ‘권위주의적 교회 행정’에 대한 개혁의 시급함을 지적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권위’는 한마디로 ‘타인을 지배하는 힘’이라고 봅니다. 개신교의 ‘당회장’ 제도가 어떻게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가중시키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신약교회에서 유일한 권위는 오직 성경입니다. 기독교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자기 백성에게 드러내신 유일한 종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자신을 보여주신 바로 그 사건이 영원한 로고스 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권위가 되십니다. 그리고 부활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대로 보내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주된 사역은 계시기록을 완성하시는 것이면서 또한 예루살렘으로부터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지금도 그 사역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혜사 성령께서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권위만이 교회의 유일한 권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교회의 절대 유일한 표지를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500년 전 서구교회에서 ‘오직 성경만’ 교회의 표지로 삼고자 노력했던 운동인 종교개혁은 그 이후로 지금까지 성경권위를 상실해 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권위, 그리스도의 권위, 성경권위는 점점 인본주의적이며 인간의 욕심을 대변하는 제도들에 의해 성경권위에 위협을 받아 결국 중세보다 더 부패한 인본적인 교권세력으로 낙인찍히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성경권위는 점점 추락하고 그 자리는 인간적인 정치권력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성경적인 온갖 불법적인 권위들이 세속적인 방식으로 교회와 성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불법을 위장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어린 성도들을 위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인사나 재정 등의 모든 권한을 장악하기 위해 교회법을 강화하고, 자기편을 만들기 위해 또 다른 불법을 저지르게 됩니다. 한 마디로 성경권위를 망각하기 때문에 서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합니다.
2. 개신교는 모든 인사권을 당회장이 가지고 있으며, 말로만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점점 부패해 가는 당회장에 의한 교회 인사권의 부패를 막을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개신교의 교회 행정은 성경에서 빗나간 총체적인 결함과 불법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행정 관련 조항 하나하나를 개혁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 대담에서 늘 강조하지만 근본적인 잘못은 교회가 성경권위를 중시하지 않은 점입니다. 말로는 주님의 몸 된 교회라고 하지만 교회의 행정은 목사 중심으로 운영하고, 최종적 승인도 목사가 해 버리는 일이 이제는 일상화되어 마치 정상처럼 보입니다. 이는 교회 행정이 성경권위를 보존하여 진리의 말씀에 충실히 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성경권위를 차단하는 그야말로 역설과 모순이 발생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경권위를 세우려는 진실한 성경교사들을 경계하여 배제하고 어떤 때는 이단으로 몰아가는 참담한 상황입니다. 또한 계급 구조 중심의 행정에서 목사는 자신이 마치 군주제하에서 임금이 신하에게 관직을 주듯이 장로나 권사에게 직분을 하사(?)한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이미 인사와 행정에서 부패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인간적으로 딱한 것은 성도들이라도 빨리 깨어났으면 하는데, 행정 구조가 성도들이 성경진리의 말씀으로 깨어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시길 저나 ‘한국크리스천신문’이나 사명감을 가지고 함께 무지하고 딱한 성도들에게 진리를 전해주길 바랍니다.
물론 지상에서 완전한 교회 행정과 완벽한 인사제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성경진리를 분명하게 깨닫는 만큼 주님의 몸 된 교회 행정의 주체가 누구이며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가면서 땅에 속한 행정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분명한 약속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반드시 승리하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진리에 대한 성도들의 확신 정도를 가지고 평가하자면, 한국 교회 행정의 성숙도는 정말 미미한 수준입니다. 한국 교회의 비성경적 교권은 과거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간 마치 산헤드린 공회처럼 보입니다. 진리에서 점점 떠나는 한국 교회는 거짓 종교 지도자의 놀이터이자 약탈의 현장이 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진리에 대한 수준이 높아지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정보통신혁명의 많은 매체를 통해서 진리의 말씀이 더 많은 성도들에게 전파되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몸 된 교회를 세우시고자 성도 각자에게 자원할 마음을 주십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행정에 익숙해진 성도들은 자원보다 누가 시켜주길 바라고, 직분을 받으면 권한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어떤 충고나 제안을 해주시겠습니까?
우선 한국 교회 성도들은 성경보다는 비성경적 종교적 관습에 얽매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경권위를 알려주는 것이 제일 시급합니다. 한국 사회는 동양사상의 ‘겸양지덕(謙讓之德)’에 지배를 받고 있어서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매우 꺼립니다.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여러 기자를 통해 기록하게 하신 말씀을 택한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선한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셔서 자발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하십니다. 교회의 교사란 먼저 깨달은 것을 후배에게 올바르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한국 교회의 그릇된 지도자들처럼 성도를 자기 종으로 만들려고 하는 태도는 주님의 교회를 배반하고 반역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 지도자들에게 성도들이 쉽게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은 성경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전통적인 수동적 복종 심리까지 겹치면서 결국 거짓 지도자의 먹잇감이 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분명히 다시 강조하자면, 성경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간교한 거짓 지도자에게 속고 속아서 그들에게 종노릇 할 수밖에 없습니다.
4. 로마 가톨릭은 교황을 중심으로 교회의 행정이 분열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잘 운영된다고 자랑합니다. 지금 개신교의 조직 행정도 로마 가톨릭과 방불합니다. 이러한 인위적 행정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은 무엇인지 신앙 원로로서 저자의 생각을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엄격하고도 무서운 섭리가 분명하지만, 현상적으로 그 과정을 분석해 본다면, 진리에 미숙하면 미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으며, 미개한 삶을 살면 그곳에서는 반드시 독재(獨裁) 정치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적 독재 정치는 영혼까지 침탈당하는 더 비참한 결과를 낳습니다. 그런데 종교에서 독재의 간교하고 사악한 면은 바로 거짓 지도자들에 의해 성도들이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지 못하도록 우민(愚民) 정책을 교묘하게 조장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성경 해석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는 일로 드러납니다. 로마 가톨릭의 경우 성경 해석의 권한이 교황에게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로 개탄스러운 일은 로마 가톨릭에서 하는 것보다 더 노골적으로 거짓 지도자들이 성도들에게 대놓고 성경 공부를 너무하면 이단이 된다고 말도 되지 않는 공갈과 협박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알려주고 성도들을 일깨워야 합니다. 그리고 대안을 제시해 줘야 합니다. 그 일에 열중하고자 저는 작년에 『교회개혁론』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마음에서 지난 40여 년 동안 교회를 시무하면서 ‘성경 공부하고 싶지 않다면 교회당에 오실 필요가 없지 않으냐’고 항상 말했습니다.
5. 저자가 제창한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에서 말하는 교회 행정의 원리와 실제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에서 말하는 교회 행정의 원리는 너무 분명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유일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교회 행정 시행의 원리는 보혜사 성령의 교통하심입니다. 교회의 유일한 창립자는 오직 약속대로 임하신 성령 하나님이시며 또한 주관자가 되십니다. 행정 시행의 유일한 방법과 도구는 성경이며, 성령의 교통함 속에서 성경을 깨닫게 하셔서 주신 은사대로 봉사와 희생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인간 중심의 이익집단이 결코 아닙니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성경진리 위에 세우는 교회가 결코 인간적인 세속주의가 지배하는 집단이 되지 않게 하십니다. 다시 강조하면 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진리의 인도자 보혜사 성령 그리고 교회의 절대 표지 성경이 바로 교회 행정의 삼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행정의 실제는 위의 삼 원리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택한 백성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거듭나고 중생케 하여 말씀으로 양육하고 무장시키면서 각자에게 소원을 주고 교회의 행정 체제를 갖추어 비진리와 투쟁하게 하시고 최후 승리를 얻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교회의 실제 역사를 무시하거나 거역하여 인간이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 줄을 세워서 행정을 펼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며 적그리스도의 행위가 됩니다.
6. 한국 교회는 재물 곧 돈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버리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저자도 지적하신 것처럼 교회가 법으로 만들어 놓은 ‘십일조’는 그 폐해가 너무도 심각합니다. 십일조의 신학적 문제를 간단히 지적해 주시고, 아직도 십일조에 얽매인 성도들에게 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눅 16:13)고 하셨습니다. 육신의 삶만 생각하면 재물은 목숨과도 같습니다. 인간은 객관적 진리에 대한 생각보다는 눈에 보이는 재물과 돈이 먼저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한국 교회사를 보면 한국 교회의 부패는 국가경제 발전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에 돈과 재물이 많아지는 것을 ‘부흥’이라고 규정하면서, 교회부흥도 교회재산의 증식과 일치하게 되었고, 개인 신앙의 성숙까지도 돈과 재물이 쌓이는 것과 일치시켜 버렸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점점 돈을 숭배하는 욕망과 사욕의 집단이 되면서, 한국 교회는 점점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과 재산의 증식이 신앙의 성장이요 교회의 부흥이라고 보게 되는 상황에서 이제 교회의 모든 행정은 돈을 모으는 방법을 찾는 데 몰두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진리를 거스르면서까지 ‘십일조’라는 제도를 마치 종교 생활의 핵심인 것처럼 강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치는 십일조는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이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 죄 가운데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인류 중에 택한 백성이 지상에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되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백성들은 이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선한 일을 도모하면서 자발적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여기에 목사가 개입하여 십일조를 교회에 내야한다는 주장은 성경의 진리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사실 십일조는 신약교회에 있어서 성경적이 아니라 총회의 결의로 정한 것입니다. 마치 십일조가 성경의 핵심 진리인 것처럼 무지한 성도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모든 소유는 그리스도를 통해 모두 거룩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살아도 죽어도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누구한테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바 은사를 발견하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에 사용하면 됩니다. 선한 일에 쓰고 나면 아깝거나 혹은 남에게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7. 개신교의 부패 원인 중 하나가 성도들이 교회 생활에서 성경적인 올바른 ‘연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올바른 연보 생활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올바른 연보는 그리스도를 통해 택한 백성의 모든 인생 즉 몸과 영혼과 재물 모두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주신 재물은 내가 무엇인가를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정하신 규모대로 하나님의 선한 일에 쓰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 진리에 무지하다 보니 무엇이 하나님께 선한 일이며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들에게 성경 말씀에 확신이 서지 않으면 함부로 연보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내는 연보에 대해서는 액수와 상관없이 건전한 교회 지도자라면 삼가게 해야 합니다. 성도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확인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소원을 줍니다. 성경 진리 보존이나 선교나 구제나 아니면 사회적 기부까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주신 것을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 올바른 연보의 과정입니다.
무조건 돈부터 모아놓고 보자는 식으론 안 됩니다. 사용할 곳이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으면 연보의 목적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모아놓고 쓰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쓸 곳을 먼저 정해 놓은 후에 사용하되, 누구한테 맡기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를 깨달은 성도라면 하나님께 받은 바 은혜의 풍성함을 깨닫기 때문에 아까워하지 않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이타적인 마음으로 연보하되 생색내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목사가 알아주길 바라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에 확신을 가지고 각자 받은바 은총과 은사에 따라 행복하고 수준 높은 연보 생활을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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