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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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27 22:0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여덟. 성경권위 확정의 절실함을 위해, 미완으로 끝날 유럽의 종교개혁 1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4~7).


1. 로마 가톨릭과 종교개혁의 공통 유산:
  아우구스티누스   

“종교개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이 그의 교회론에 궁극적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 말은 미국 개혁파 신학을 이끈 구(舊) 프린스톤 3대 정통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B.B. 워필드(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 1851~1921)의 말이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1517년 종교개혁은 중세 로마 가톨릭 신학 범위 내에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말이 된다. 만약 이 말이 타당한 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중세 로마 가톨릭에 대한 또 하나의 개혁(改革)이 16세기 종교개혁이라고 평가해도 틀리지 않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로마 가톨릭이나 종교개혁 사상이나 모두 지금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론에 신세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지적하면서 기독교 역사가 맥클로흐는 종교개혁을 이렇게 평가한다. “1517년부터 1세기 이상 동안 서방교회 내의 혼란은 오래전에 죽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 속에서 벌어진 논쟁이었다.”(365쪽)

앞의 내용을 통해 종교개혁 발흥 시대를 좀 더 이해해 보자. 중세 로마 가톨릭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회론 위에 세워진 종교이기도 하다. 같은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 위에 세워진 개신교 종교운동이다. 교회론을 강조하면서 로마 가톨릭은 로마의 교황청을 구원과 모든 진리의 중심과 원천으로 삼아 천 년 동안 중세 유럽을 암흑시대로 몰아넣었다. 로마 교황청의 교황 허락이 아니면 삶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이론과 실천의 굴레를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로마 가톨릭 체제를 더 비판하면 할수록, 우리는 동시에 그 이론을 제공하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도 동시에 비판하게 된다. 비성경적인 로마 가톨릭의 교회관의 기초를 제공하는 아우구스티누스 또한 비성경적 인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을 강조하면 장로교 교리의 뿌리가 되는 예정론으로 향하도록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은 장로교 예정론 수립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16세기 루터가 강조한 ‘오직 믿음’의 구호는 그 원천이 아우구스티누스가 되고 이 인물은 종교개혁을 강조할수록 더욱 중요한 인물이 된다. 상반되는 구교(舊敎)와 신교(新敎)의 신학 사상으로 볼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한편으로는 더욱 비판할 수밖에 없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귀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인물이 된다. 무엇이 진실인가? 앞서 칼빈주의 3대 신학자 중 하나인 워필드나 옥스퍼드 대학의 유명한 역사가 맥클로흐의 평가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중적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인물이다. 혼란을 가중시켰는지 아니면 적대적인 그룹들에게 모두 유익한 도움을 주었는지 진실 게임 양상으로 가는 면이 있다.

사실 르네상스 운동으로 인문주의가 유럽에 흥행하고 또한 종교개혁이 유럽으로 번질 무렵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은 스위스 바젤의 한 인쇄업자에 의해 유럽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유럽에 그렇게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 예상하지는 못했다고 한다.(365) 유럽에서 일어난 16세기 종교개혁은 이렇게 혼란된 배경에서 시작했으며 이후 교황권위를 혁파하고 성경권위를 회복하는 기독교 혁명의 큰 흐름을 만들기도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신학 이론뿐 아니라 실천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논란을 낳기도 한다. 서양 고전에 아우구스티누스를 반드시 포함한다는 말은 그의 중요성과 유명세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이용하기에 편리한 애매하고도 모호한 인물이라는 뜻도 된다. 이 말은 그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절대진리 성경에 철저해야만 가능한 평가다. 성경권위 수립을 목표로 하는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상과 이론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한 계기일 뿐이다. 물론 아우구스티누스의 방대한 신학 체계를 두고 이렇게 평가하는 것이 성급한 일반화를 차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천 년 이상 공유하고 있는 그의 주장이 분명한 진실 중의 하나라면 그 진실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를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권위를 교황권위로 덮고 있던 중세 로마 가톨릭은 신학 이론의 대부분을 헬라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어받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인간을 포함한 현상 세계의 물질에 초월적 신성이 담겨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데아론은 로마 가톨릭 사상의 결정적인 토대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화신(化身)으로서 교황의 무오설이나 마리아 숭배 사상, 수많은 성인(聖人) 제작의 그럴듯한 이론의 원천이다. 그리고 교회론은 고대 교부의 최고 권위를 받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에 기반을 두었다. 일반적 판단으로 보면 매우 그럴듯한 조합인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진리로 보면 모두 ‘세상 철학과 그의 헛된 속임수(골 2:9)’다. 이러한 중세 로마 가톨릭 시대의 암흑과 혼돈과 타락의 구렁텅이 속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종교개혁 사상에 또한 유익한 부분을 제공해 주는 인물이 되었다. 

우리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으로 중세부터 현재까지 성경권위를 확정한 성경신학(Park's The Bilbe Theology)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지형도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가는 방향을 잠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성경권위와 관련된 개혁파 신학의 현 주소를 보면 서구 종교개혁은 미완이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의 핵심 구호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 신학과 교회의 절대표지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종교개혁 500년 기념식은 단지 구호제창으로 끝날 판이다. 18세기부터 본격화하는 성경권위에 대한 도전인 자유주의, 문서설, 역사비평학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교회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필수로 삼아야 할 교회가 현격히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야말로 ‘성경권위’는 교회 유지 수단을 위한 허울이 되고 있다. 속임수의 쇼에 우리 교회가 성경권위를 버리고 있다! 개혁파 신학의 현주소는 더욱 참담하다. 성경 그 자체의 권위를 확증하는 것은 개혁파 신학의 후예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혁파 신학교와 그 신학자들에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확증하는 문제는 큰 과제로 남아오다 소득 없는 결과만 낳았기 때문에 이제는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문서설과 역사비평학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성경신학은 이 과제를 떠안고 그 과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러한 단정적인 평가는 성경신학이 미완의 종교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글은 2014년 ‘진리의말씀사’를 통해 27년에 걸쳐 완간된 박용기의 《성경신학총서》 20권이 종교개혁이 다 하지 못했던 미완의 과제 ‘성경권위 확증’을 완수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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