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교회개혁론』 저자와의 특별대담_07
<한국크리스천신문>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미완의 16세기 종교개혁이 성경 진리에 확고한 토대를 두고 완성으로 매듭이 지어져가는 제2의 종교개혁운동을 소원하며 특별대담의 연재를 시작한다.
이번 특별대담은 2017년 4월 25일 박용기 원로연구원(성경신학학술원)과 배윤리(한국크리스천신문 객원기자) 권사가 대담자로 참여하였다.
1. 성경의 가르침대로 교회의 모든 치리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습니다. 창세전에 작정하신 뜻대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시고 다스리십니다. 그런데 교회 헌법을 제정하여 교회에 통치기구를 두고 다스리는 개신교의 정치와 치리는 성경과 배치되는 행위로 매우 심각한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성경에 위배되는 교회 헌법은 마땅히 폐기처분해야 할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하셨는데 교권 남용과 관련해서 더 말씀해 주십시오.
인간에 의해 제정한 법에 의존하는 정치는 세속정치입니다. 이 같은 법을 종교적으로 이용한다면 그 법은 질서를 규제하는 법칙의 성격을 넘어서 우상이 됩니다. 법이 우상으로 고착화되면 법을 따르지 않는 자의 인권과 자유를 아무리 유린해도 어떤 책임이 따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부패한 세속에 속한 인위적인 법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통치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정말로 교회 안에 세속정치가 들어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한국 교회가 부패했다고 할 때 그 본질적 문제는 이러한 추악한 세속법이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속이고 있고 약탈하고 있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얼마 전 한국 교회 헌법 대가이신 은사님을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제가 쓴 『교회개혁론』을 먼저 드렸고 은사님의 고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그 책에 쓴 내용에 충분히 공감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교회개혁론』은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이상(理想)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은사님께 “개혁론에서 밝힌 내용은 인간의 주장이 아닌 성경적 근거를 통해 그리스도의 교회가 어떠한 것인가를 해명하고 증명한 것인데 어떻게 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드렸습니다. 제가 좀 강하게 은사님께 호소한 이유는 지금 권사님이 질문한 대로 한국 교회 성도들이 너무도 성경을 몰라 세속의 법에 휘둘리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고 속이 타서 그렇게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인간이 만든 법, 곧 교회 헌법과 정관으로 교회를 통치하는 것은 결코 안 된다고 확신합니다. 그 법의 이면에는 교회와 성도를 지배하려는 교권주의자들의 속셈과 음모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회를 지배하려는 탐욕의 노예가 된 자들이 자신들의 이권에 맞게 거짓 이념을 만들고 성도들을 통제하는 조항을 교묘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삽입해 놓았습니다. 어떻게 성경을 놓아두고 인위적인 헌법으로 그리스도를 속이고 자신들의 욕심을 실현하려고 법 조항을 끼워 넣을 수 있습니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개혁파 교회에서 성경이 권위 있다고 말할 때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성경만 제대로 성도들에게 전달하면, 깨닫게 하시는 성령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각자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각자 신앙 선배의 도움을 받아 자기 사명을 다 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렇게 하도록 목사는 성경권위 말씀권위를 세우는 일에 자기 사명을 다 해야 하는데, 성경의 가르침을 배역하는 행위를 뻔뻔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 현실은 부패해도 너무 부패했고 정말로 과연 돌이키는 회복이 가능할까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말 나온 김에 더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들이 있다면 고민하지 말고 성경에 나타난 법을 따르길 바랍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른바 개혁파 교회에서 바울을 통해 기록된 ‘목회서신’인 디모데전후·디도서·빌레몬서만 제대로 보면 목회를 성경의 법으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나의 일이라 조금은 부끄럽지만) 『교회개혁론』 전에 성경 진리가 왜 법인지, 왜 교회에 세상 법을 만들어서 안 되는지 그 대안까지 ‘성경신학총서 20권(진리의말씀사)’에서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900시간 동영상 강의까지 모두 올려놓았습니다(www.tbtlogos.com). 지금도 다시 강의하면서 부패한 한국 교회 정치를 성경적으로 회복해 주시길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2. 뉴욕 총회가 채택한 웨스트민스터 헌법을 100여 년 전, 한국 교회는 우리의 형편에 맞추어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현대 개신교의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제1장 ‘원리’에서 제1조에 ‘양심자유’를 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에 한국 개혁파 교회가 성도의 신앙 양심의 자유를 첫 조항에 둔 이유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누구라도 함부로 어거(馭車)하거나 지배하거나 다스릴 수 없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더 성경에 입각해서 좀 더 들어가 깊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성경 기록을 완성하게 하셔서 이제는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여 교회를 설립하시고 양육하시며 무장시켜서 교회를 세속 가운데서 승리케 하십니다. 로마 가톨릭은 인간 중에서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교회의 머리인 지도자를 뽑습니다. 그러나 개혁파 교회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개혁파 교회의 지도자는 교회 최고의 법인 성경을 먼저 깨달은 자가 단지 그 법을 전해주는 것으로 모든 것을 끝내야 합니다. 그런데 500년 전에 로마가톨릭의 거짓 권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신앙 선배들의 수고를 지금 목회자들이 뒤집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헌법의 제1조의 의미를 매우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성경권위에 기초해서 그 1조에만 충실하면 나머지 모든 헌법 조항은 필요 없다고 봅니다. 성령께서 택한 백성에게 내주하셔서 진리를 깨닫게 하고 사명도 알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신앙양심의 자유를 이끌어 가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개혁파 교회에 가장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성령론’이 너무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령론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어떻게 다스리는지를 보여주신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성령론 부분은 나중에 특별한 시간을 가지고 더 말하고 싶습니다.
3. 저서에서 밝혔듯이 현대 개신교 헌법은 지도자들이 모든 치리권을 사사로이 행사하도록 힘을 실어준 악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장로회 헌법 정치 제1장 ‘원리’, 제7조 ‘치리권’에서 전체 교회나 그 대표자 누구라도 오직 주님의 뜻을 받들어 전달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성경이 유일한 법으로 회원의 양심을 속박할 법을 임의로 제정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12장 ‘교회 정치와 치리회’에서 그 원리를 위배하고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치리회’를 두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심각한 모순을 가진 교회 헌법으로 치리하는 것을 범죄 행위로 봐도 됩니까?
간단히 답하겠습니다. 범죄 행위 이상입니다. 반역이며 역적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의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발상이나 그러한 행위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 속상하기보다 한국 교회의 한 성도로서 너무너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렇게 강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성도들의 영적 감각이 둔해져도 너무 둔해져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교회 헌법과 정관으로 교회와 성도를 지배하는 행위는 적그리스도의 종노릇이나 다름없습니다. 성경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며 정말로 마지막 심판 때나 있을 법한 하나님을 거스르는 종말론적 심판의 현장이 될까 두렵습니다. 정말로 우매한 성도들을 헌법과 정관으로 서로 속고 속이는 행위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을 알고 교회 안에서 헌법과 정관으로 치리권을 행사한다면 정말로 적그리스도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한국 교회에 비난 아닌 비판을 하는 것이 참 힘듭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너무너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습니다.
4. 현 개신교에서 목사가 삼권(행정권, 재정권, 강도권)을 독점하는 치리권을 가진 수장이 되어 교회의 통치자이신 그리스도의 자리에서 모든 치리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저자께서 당회장으로 계실 때, 삼권분리를 시도하셨는데 왜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돌이켜 보면 그때 더 확실하게 개혁하지 못한 것이 우선 하나님 앞에서 너무 죄스럽습니다. 제가 목회할 때 행정권과 재정권 그리고 인사권을 분리해서 시행했습니다. 목사는 단지 하나님이 주신 은사인 가르치는 일에 충실히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연구하여 정확하게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 철저하게 가르치지 못한 것이 회한으로 남아있습니다. 재정의 권한은 재정 관리의 은사를 맡은 집사님들이 일을 볼 수 있도록 했으며, 행정권은 교인 대표의 성격으로 장로회에서 선출한 장로님이 행정을 협의하여 처리하도록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우리도 세속적인 인간 중심적인 의도가 담긴 총회 헌법과 노회와 교회의 정관을 준수하다 보니 교회가 성경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고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전폭적으로 개혁을 단행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교육을 한 후에 개혁하고자 했으나 그러한 세속적인 정치 구조에서는 교육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교육개혁을 단행하여 모든 성도가 진리의 말씀을 스스로 찾아서 듣고 신앙양심의 자유를 회복시켜 받은바 은사를 깨닫게 하는 데 주력하면서 개혁을 했습니다. 성도들 스스로 성경권위를 확인하지 않으면 곧 부패한 세속 정치 속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교육개혁 7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그동안 목사 한 사람의 의존도에서 많이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성도들이 성경을 제대로 아는 것밖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는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5. 교회 재산의 폭발적인 증가는 교회 치리권을 가진 목사가 재정권을 독식함으로 이권과 권력투쟁을 낳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직을 합법적인 것처럼 보이는 신학교제도를 통해 매관매직합니다. 그리고 목사는 다시 성도들을 대상으로 귀한 교회 직분을 매매합니다. 이러한 불법 역시 교회 헌법이 합법적인 것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신교의 성경권위 회복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체제 개혁의 수순에서 교육개혁이 먼저 일어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가르치고 배운 만큼 건전한 교회가 수립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존의 체제가 그 교육을 억압하게 되면 성경으로 교육개혁을 하는 것 자체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공부하는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공부에 방해가 되는 제도와 방식을 우선 개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도들이 자신이 공부하고 싶어 하는 부분을 마음껏 빨리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공부하여 자신의 영혼과 신앙의 자유 신장에 몰두하기 때문에 교회를 세속화하려는 유혹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꾸 모이면 당연히 돈도 모입니다. 돈이 모이면 시체 위에 독수리 떼가 몰려오듯이 권력과 정치가 반드시 극성을 부립니다. 이렇게 되면 성경 진리에 대한 관심이 사라집니다. 정말로 하나님과 재물은 결코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특히 교회에서 사람 수와 그리고 돈은 부패의 온상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권력 다툼과 이권 쟁탈 나아가 매관매직으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기존 정관은 교회 직급이 올라가면 그만큼 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는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돈이 모여도 잘 관리하면 된다고 합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관리하면서 돈을 주는 쪽과 달라는 쪽에서 또한 이권쟁탈이 일어납니다. 절대로 돈이 모인 곳에 순수한 성경 진리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말합니다. ‘교회에 제발 돈 모아놓지 마세요!’
6. 개신교 총회 신학교가 성경진리를 사수해야 할 동역자를 목사 자격증으로 매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교회 직분을 받기 위해 거액의 연보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교회의 신성한 직분이 세속적인 권력처럼 변질되어 성도들 또한 교회 안에서 권력 다툼 내지 직분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개신교 수십만 성도들에게 저자는 어떤 호소나 촉구를 하고 싶습니까?
정말로 호소하고 싶습니다. 성도들은 제발 사람의 종 되지 말고, 성도들을 사람의 종으로도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성도의 자유를 절대로 함부로 유린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용당하지도 말고 이용하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성도에게 맺히는 열매는 전적으로 성령께서 돌보시며 관리하는 고귀한 열매입니다. 목사들도 성도들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인간적 방법으로 관리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리고 목사의 권력을 등에 업고 같은 지체인 성도에 대한 지배를 꾀하는 그릇된 장로나 권사도 사라지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결코 구호로만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성경 진리를 스스로 확인하고 확신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보혜사 성령의 교통 하심이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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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로고스의 운동력과 소피아의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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