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독교 학문과 삶에 고백과 연습이 필요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종교개혁사를 전공하고 지금도 종교개혁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교회 개혁 이것이 중요한 나의 중요한 관심사이고 이것을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며 살아왔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 그리고 낙스가 나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은 역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독교 사관에 대한 이해이다. 총신대학교 역사교육과 학과 개설 44년의 역사에서 ‘기독교 사관과 역사이해’는 유일하게 변동이 없는 필수 교과목이다.
이번 학기도 이 과목을 수업하면서 학생들과 이 문제를 같이 고민하여 던진 첫 번째 문제는 ‘기독교 사관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물론 기독교 사관은 직선론적 섭리론적 구속 사관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관이다. 그런데 여기에 여전히 모호한 긴장과 갈등이 있다. 기독교 사관은 이론이 아니라 삶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전에는 기말고사에 “기독교 사관에 관하여 서술하라” 이렇게 질문을 했는데, 이제는 “기독교 사관은 직선론적 섭리론적 구속 사관이다. 학생은 개인의 삶에서 이것을 어떻게 고백하고 느끼고 있는가! 하나님의 섭리와 구속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를 서술하라”라고 시험 질문지에 묻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이라고 본다. 신앙과 역사 칼럼이라는 주제로 매월 칼럼을 기고하는데 이번 호는 “기독교 학문은 자신의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 신앙은 개인의 삶에서 경험하는 구체적인 것을 말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를 대변하는 좋은 책(로렌스 형제, ‘하나님의 임재 연습’, 두란노서원)이 있어, 이 책(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The Best Rule of Holy Life)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나의 기독교 학문과 기독교 세계관과 역사관, 그리고 나의 주요한 관심인 교회 개혁에 지금 점검하고 확인할 것은 ‘지금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 연습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저자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 1611-1691)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이름은 니콜라 에르망(Nicholas Herman)이다. 훗날 수도원에서 평수사로 생활하면서 ‘로렌스 형제’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는 수도원 회계의 잔심부름꾼으로 일했으며, 30년 전쟁에 참전했다가 심한 상처를 입고 다리를 저는 장애를 지니게 된다. 열여덟 살에 신앙을 가진 그는, 이처럼 여러 가지 삶의 굴곡을 지나 마침내 카르멜파 수도회에 평수사로 들어갔다. 그는 수도원에서 주방 허드렛일이나 신발을 수선하는 일을 하면서도 매 순간 호흡하듯 하나님의 깊은 임재 속에서 온전히 살았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가면서 깨달은 영적 통찰이다. 한 평신도 수도사의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신앙고백은 300년이라는 시공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메시지다.
책의 일부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 외에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수도사 로렌스 형제가 남긴 말이 있다. 냄비와 프라이팬과 모든 사물의 주인 되신 여호와여, 식사 준비와 설거지로 나를 성인이 되게 하소서. 로렌스 형제는 식사 준비를 하면서도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고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며 신앙의 성숙을 이루었다. 좀 더 다르게 말하면, 신앙인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중요한데, 하나님의 임재를 예배와 기도와 같은 종교적인 행위로 보지 말고, 모든 삶의 현장에서 설거지, 운전 혹 집 계단 이동하는 중 사소한 일상의 일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의 임재의 개념은 좀 모호하다. 성경 번역도 명확하지 않은 면이 있다. 예를 들면, 성경 시편 21:6을 보면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라고 하는데 여기서 ‘주 앞에서’가 ‘임재’를 말한다. ‘임재’는 히브리어로 ‘얼굴’을 말한다. 달리 번역하면 ‘주의 얼굴을 보고 기뻐하다’의 의미이다. 신앙의 삶에서 주의 얼굴을 구하는 기쁨이 무엇보다 우선적인 신앙의 모습이 되어야 하고, 이것을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에 2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거부이고 다른 하나는 고정이다. 거부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고정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 집중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면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다. 거부와 고정 이것은 사실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가 거부와 고정을 연습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일이 경험되어진다. 일상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만나는 경험이 우리의 삶에 최고의 기쁨일 것이다. 특히 예배와 기도시간이 다른 시간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기도시간에 기도에 매달리는 것과 같이, 일하는 시간에도 하나님께 꼭 매달려야 한다. 특정한 기도의 장소가 아니라, 일상의 일을 하는 곳 반복해서 말하는 공부를 하면서도, 차를 운전하면서도,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면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기도할 수 있다.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연습을 6단계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삶의 정결함이다. 두 번째는 집중이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바라보기이다. 네 번째는 굴복이다. 다섯 번째는 습관이다. 여섯 번째는 하나님과 하나 됨이다. 이 여섯 가지 과정을 계속해서 연습하다 보면 여러 가지 영적인 유익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바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굳건해진다는 것이다.
기독교 학문은 하나님의 창조 타락 구속을 자신의 삶에서 고백하는 내용이 있어야 하고, 기독교 역사관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이론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가 있음을 느끼는 구체적인 삶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크리스천에게 가장 거룩한 최상의 삶의 법칙은 운전하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부엌에서 설거지하면서 하나님의 임재(얼굴)를 연습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일이 이 땅에서도 보이기를 간구한다.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Knox Kwon (신앙과 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총신대학교 교수) |
성전(聖殿)을 정화(淨化)하신 예수(Ⅱ) |
성전(聖殿)을 정화(淨化)하신 예수(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