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황순원 선생과 기독교 세계관
필자는 몇 년 전 경기도 양평으로 이사를 와서 서종면 문호리에 사는데, 옆 마을 10리 떨어진 수능리에 유명한 장소 소나기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 마을’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가 황순원 선생(1915년-2000년)의 고결한 삶과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문학 테마 공원 문학촌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황순원 선생과 양평은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양평이 황순원 선생의 고향(평안남도 대동)도 아니고 그가 살았던 지역도 아닌데,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마을이라서 이 지역에 문학촌이 만들어졌다고 하며, 현재 문학관 건물 좌측에 황순원 선생과 부인 양정길 여사의 삶을 기억하고자 합장묘가 있다. 필자는 역사도 잘 모르지만, 문학에 대하여 아주 무지하다. 그냥 궁금증이 생긴 것은 문학가들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사는지, 황순원 선생이 바라본 세상이 궁금하였다. 그러다가 황순원 선생이 2000년 9월 14일 오전 8시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택에서 향년 85세의 나이로 별세하는데, 장례식을 조용기 목사가 집례한 기사를 보면서, 그의 문학 세계관이 기독교 신앙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좀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 문제에 대한 ‘황순원 선생의 기독교수용 양상 연구’(가천대 문학석사, 김현아)에 의하면 황순원 선생의 작품 세계와 기독교의 관련성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황순원 선생은 1931년 시 「나의 꿈」으로 창작을 시작하여, 「거리의 부사」를 『창작』 제3집에 발표하면서 시인에서 소설가로 전신하였다. 황순원의 부모는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황순원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을 접하면서 성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소설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가치관을 드러내었다. 예를 들면 단편 『두꺼비』, 『그』와 장편 『카인의 후예』, 『인간 접목』을 통해 생명존중과 구원의 문제를 파악하였다. 『두꺼비』는 해방 후 사회적 혼란과 생활고 속에서 생명존중이 사라진 비인간화된 사회 현실을 기독교적 인물인 김 장로를 통해서 비판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인간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예수는 갈등하고 슬퍼하는 인간의 눈을 바라보며 인간의 세계에 더 머물고자 하나님께 기도한다. 『카인의 후예』에서는 『그』에서 등장했던 눈을 오작녀의 타는 듯한 눈으로 연결해 희생적 사랑과 생명존중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오작녀가 모성을 넘어 구원을 상징함을 알 수 있다. 전쟁 체험으로 인한 공동체의 상처 치유의 문제를 다룬 『인간 접목』에서는 최종호를 통해 고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 인물인 홍 집사를 통해 기독교인의 바리새인 면모를 비판한다. 한편,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서 선우 이등 상사는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인물이다. 그는 죄의식으로 인해 정신분열까지 앓게 되는데 안 이등 중사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며 구원의 길에 이르게 된다.
『일월』에서는 현실의 고난을 회피하려는 방안으로 신앙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홍 씨를 비판한다. 또한, 죄의식을 지닌 기룡을 통해 자신의 죄를 회피하는 신앙인을 비판하면서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 회개는 진정한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단편 『소리 그림자』는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와 성에 대한 결벽증을 가진 장로의 모습을 통해 기독교인의 부정적 모습을 나타내고, 성도들을 방문하지는 않고 고기잡이만 하러 다니는 목사의 죄의식 없는 모습을 비판한다. 그러나 자신을 꼽추로 만든 장로를 용서하고 사랑하기까지 하는 성일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움직이는 성(城)』에서는 토속적인 무속신앙에 기독교 신앙이 들어오면서 기독교 신앙 안에 기복적인 모습이 혼합되어 나타남을 등장인물인 준태와 민구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홍 여사와의 부적절한 관계에 죄의식을 가지고 있던 성호는 참회를 통해 스스로 죄의식을 극복한다.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은 고난을 참고 연단함으로써 구원에 이르는 것임을 성호를 통해 보여준다. 한편 후기 작품인 단편 『뿌리』와 장편 『신들의 주사위』를 자유와 구원의 문제로 살펴보았다. 『뿌리』에서는 현세보다 내세를 중시하는 김 권사와 교회 사람들의 모습을 비판한다. 또한, 교회 아줌마를 통해 현세를 살게 하는 힘은 인간 내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내세의 구원에 대한 소망임을 작가는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신들의 주사위』는 신이 던진 주사위와 같은 인간존재가 어떻게 갈등하면서 자유와 구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한국 현대 문학의 거장 황순원 선생의 정신세계를 드러낸 순수한 첫사랑에 아련함이 드러난 소나기를 넘어서, 작가의 기독교 신앙과 세계관이 드러난 작품을 보면서 그의 깊은 영적 고민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황순원 선생은 그의 작품을 통해 생명존중, 죄 그리고 자유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작품에서 기독교 신앙과 세계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예배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소나기 마을을 찾아 산책하였는데, 문학관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어 독자들을 위해 여기에 남긴다. 문득 드는 생각은 황순원 선생은 욕심 없는 선비인 것이 부럽다. 세상에는 선비가 있고 벼슬아치가 있는데, 선비는 학문연구와 문학적 정진을 통한 절대가치 구현에 매진하기 위하여 벼슬길을 포기한다. 그의 교수로서의 인생과 개인의 인생을 보면 이러한 선비 같은 고상한 면이 있어 보인다. 황순원은 일생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정신적 아름다움과 순수성, 고귀함과 존엄성을 존중해왔다. 그의 작품들은 근대사의 질곡과 부침 속에서도 하나의 완결된 자기 세계를 풍성하고 밀도 있게 제작함으로써 깊은 감동을 남기고 있다. 황순원은 경희대학교 교수로 특별한 보직 없이 23년 6개월을 재직하는 동안, 이러한 선비정신을 묵묵히 삶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교수로서 학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선비였다. 연암 박지원이 선비를 두고 “지위로는 등급이 없고, 덕은 본디부터의 일이다”라고 한 것은 선비의 신분적인 면과 가치적인 면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 이렇듯 선비정신은 역사를 이끌어 가는 주체세력과 혁신세력으로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고상한 정신이다. 이런 점에서 이 시대는 황순원 선생과 같은 자기 부인의 선비정신과 청교도 정신을 가진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그의 인격을 드러내는 또 다른 감동의 에피소드가 있다. 1977년 황순원 선생은 작가 홍성원과 함께 『서울신문』 신춘문예 심사를 하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두 작품이 남아 홍 씨가 그에게 결정을 구했더니 그는 외려 홍 씨더러 골라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대물과 뱃사람 얘기 중 기법 상으로 더 우수해 보이는 후자를 추천했더니 동석했던 문화부장과 함께 이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 연후에야 황순원은 군대물을 쓴 이가 제자였음을 밝혔고 홍 씨는 그를 새삼 다시 인식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황순원 선생의 일화를 보면서, 그의 학자의 고상함과 그의 사심 없는 공정한 인격에 적지 않게 감동하고, 갖춘 것 없이 욕심 많은 필자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어찌할 바 모를 지경이다. 아름다운 고결한 인생을 산 황순원 선생의 마침표가 바로 이것인 것 같다. 황순원 선생은 소박한 식생활, 조용한 동네 산책, 그리고 주일 교회 예배, 한 해 몇 번의 제자 모임 등으로 만년을 보내던 어떤 날 여느 때처럼 고요히 잠자리에 들며 이 세상에 마침표를 찍으며 향년 86세를 일기로 그의 작품 세계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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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Knox Kwon (신앙과 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총신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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