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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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7-14 21:0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하시는 나사렛 예수 (Ⅳ)


Ⅲ. 성만찬 제정: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1. 성만찬의 구속사적 의미

성만찬 제정 기록은 공관복음(마 26:26-29; 막 14:22-25; 눅 22:19-20)과 고린도전서 11장 23절-26절에 있다. 사도 바울의 본문이 문학적으로 가장 오래된 본문(고린도전서는 56년경 작성)이며, 마가복음의 본문도 이보다 후기이지만 성만찬 제정 본문은 매우 오랜 전승을 전해준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전하는 성만찬 제정 본문은 제자들의 공동체에 전해진 예수의 말씀을 바울이 원(原) 전승자들로부터 받아 고린도교회에 전해준 것이다.(고린도전서 11장 23절-26절에 대한 해설, 『해설•관주 성경전서』, 독일성서공회판, 412.).
성만찬 말씀과 행위의 역사적 신빙성을 부정하는 학자들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과 대속적 죽음 사상과는 일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성경적 구속사를 부정하고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부인하는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그의 제자 신약학자 에른스트 캐제만(Ernst Käsemann), 조직신학자 프리드리히 고가르텐(Friedrich Gogarten) 등이 제시하는 현대역사비판사고로는 대속사상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교의학자 발터 퀘네트(Walter Künneth), 칼 바르트(Karl Barth), 신약학자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 페터 스툴마허(Peter Stuhlmacher)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구약에서 내려오는 속죄 사상을 이해한다면 예수의 속죄 사역은 신화적 각색으로 거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적 예수 인격과 삶과 사역의 본질에 관한 것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제공하신 율례의 준행이 거부된 후에는 이제 남은 것은 약속의 땅으로부터 이들의 추방과 대속의 길뿐이다. 이미 구약 예언자 이사야의 예언에 포로 되어 간 이스라엘에 관한 하나님의 구속 의도가 약속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사 59:13b-18).

“에돔에서 오는 이는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사 63:1-5).

수도가 보스라인 에돔은 하나님 백성의 적들을 대표한다. 에돔은 포도주로 유명했다. 이사야의 예언은 에돔이 포도즙 틀이 되어 이 틀을 밟은 자, 하나님에 의하여 그 선혈(鮮血)이 낭자하게 될 것을 예시하고 있다(이사야 63장 1절-6절 해설, 『해설•관주 성경전서』, 독일성서공회판, 1165). 하나님이 스스로 그의 백성의 원수 에돔을 벌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이사야의 예언은 신약에서 하나님의 메시아 예수의 십자가 대속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십자가적 사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고 패역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프리즘이다. 예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의 복음을 받지 않고 오히려 그를 낭떠러지로 밀어 떨어뜨리려 하였다(눅 4:29).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제공에 대한 거부와 불순종에 대하여 하나님은 인간의 구속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으로 주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순종으로 이끌어 주신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복음이며, 이것에 대한 깊은 이해는 십자가적 사고 안에서 드러난다.
복음서 저자 마태(마 26:17-29)와 누가(눅 22:7-23)는 이 최후의 만찬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예수는 성안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신다. 유월절이란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해방일로서 이집트 바로 왕의 종 되었던 때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의 집마다 죽음의 사자(使者)가 해(害)하지 않고 지나간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어린 양의 피는 죽음의 세력이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속죄(贖罪)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유월절 어린 양은 오실 메시아 예수를 상징하는 예표(豫表)이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 36)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유월절을 지키시고 유월절 음식을 나누시는 것은 구속사적 의미를 함축한다.

2. 성례전은 물질이 하나님의 은혜를 매개하는 행동

제사(sacrifice)는 인간이 제물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우리의 호의를 표시하는 인간 편에서 위를 향하여 나아가는 종교적 행위이다. 이에 반하여 성례전(sacrament)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그분의 사랑을 표시하는 하나님 편에서 인간으로 내려오는 종교적 행위다. 성례전은 물질이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에게 매개하는 종교적 행동(세례, 성만찬)이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들에게 매개하기 위하여 떡과 포도주를 사용하신다. 예수가 축사한 떡은 예수의 희생의 몸을 상징하며, 포도주는 예수가 흘리신 피를 상징한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영한 (기독교학술원장 / 숭실대 명예교수)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하시는 나사렛 예수(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