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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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30 20:2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은혜(恩惠)란 무엇인가 (1)


이끄는 말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 대화나 목사의 설교 중에서 ‘은혜’라는 말이 매우 흔하게 사용된다. 이는 기독교 진리에 있어서 ‘은혜’라는 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라고 하기도 하고, 기독교 진리를 ‘은혜의 복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은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기독교 진리를 논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신앙적인 대화나 복음을 전할 때에 ‘은혜’라는 용어가 흔히 사용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일반 학문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특히 기독교 진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용어 하나하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아무리 자세하고 분명하게 정리된 진리체계라 할지라도 사용된 용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지 아니하면 진리에 대한 많은 오해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가 진리대로 전달이 되려면 전달의 도구로 사용된 용어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특별계시로 주신 절대 진리인 성경이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 결과 신앙생활의 형태도 매우 혼란스럽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 하나가 용어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되고 있다. 특히 ‘은혜’에 대한 오해는 건전한 교회의 암초 역할을 하고 있는 신비주의자들의 신안적 탈선에 요인이 되고 있다. 성경 진리의 기초 위에 견고하게 세워지고 자라야 할 교회가 몇몇 광신적인 신비주의자들의 어리석은 행동에 의해 커다란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 현대 교회의 현실이다.
신비주의자들은 마술적인 신통력에 의한 행위들까지도 분별없이 성령의 충만한 은혜의 역사라고 선전한다. 따라서 이상한 방언이나 환상 또는 신기한 행위들을 은혜로 생각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흔하게는 ‘주여!’ 삼창(三唱)을 부르고 등골에서 땀이 나도록 큰소리로 기도를 한다. 그러면 몸에 뜨거운 불이 임하고 진동도 일어나며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것이 성령의 충만한 은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더 흔하게는 소위 부흥회라 해서 많은 사람을 집회 장소에 모아놓고 북과 나팔 소리에 맞추어 빠른 속도로 복음 송을 부르게 해서 분위기를 고조시켜 참석자들의 감정을 들뜨게 하는 작태(作態)들을 충만한 은혜의 역사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은혜 받는 방법은 금식기도나 산기도 또는 새벽기도와 철야기도 등은 물론, 안수를 받거나 은사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깊게 해주고 있다. 이는 모두가 성경적인 은혜에 대한 오해에서 나타나는 잘못된 신앙적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건전한 신앙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신앙의 대상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이 건전한 신앙은 기대할 수 없다. 신앙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목적으로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가를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따라서 은혜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건전한 신앙도 기대할 수 없다.
현대 교회는 계속 개혁이 되어야 한다. 신학은 물론 신앙과 교회 행정 전반에 걸쳐서 꾸준한 개혁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에 대한 오해들을 바로 잡아가야 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그 중의 하나가 은혜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른 이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적인 은혜란 무엇인가?

은혜의 정의

성경적인 은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그 정의를 알아보기로 한다. 구약에서 ‘은혜’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헨’이라고 하는데, 이는 ‘은총(favor)’ 또는 ‘은혜(grace)’라는 말로 번역된다. 그리고 신약에서 은혜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리스’라고 하는데, 고대어에서 이 단어의 외적인 의미는 ‘매력’ 또는 ‘매혹’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친절한’ 또는 ‘예의 바른’이라는 의미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급기야 ‘은총’이나 ‘혜택’ 또는 ‘은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곧 은혜라는 말이 친절함이나 은택을 베푸는 자에게 받는 자가 감사를 느끼는 태도를 나타낸다.
결국 성경에 기록된 ‘은혜’의 용례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구약시대 홍수심판에서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일이나, 소돔 고모라의 멸망 때에  롯의 가족이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사건,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섬김으로 여호와의 진로를 받아 백성 삼천 명이 죽게 되었을 때에 모세가 여호와께 은총을 입은 증거를 보여 주시라고 간구한 사건 등이 있다. 이는 구약에서 사용되고 있는 ‘은총’이나 ‘은혜’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결국 은혜는 하나님의 심판이나 진로에서 구출되거나 용서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 대한  ‘구원’ 섭리를  말한다.
특히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 사역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구원 섭리는 하나님의 언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구약에서 ‘은혜’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언약섭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열조와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다. 그리고 그 언약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성과 자비성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작정하신 뜻을 따라 세우신 것이다.
그리고 신약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예수가 잉태될 것을 알리면서 ‘은혜를 받은 자’라고 했다. 그리고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이사야의 글을 읽고 말씀하신 것을 ‘은혜로운 말’이라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서신서에 은혜라는 말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는 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말한다. 처녀 마리아가 많은 처녀 가운데 예수의 모친으로 선택되자 ‘은혜를 받은 자’라고 했다. 그리고 이사야를 통해 예언한 것이 예수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말을 ‘은혜로운 말’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사가 믿음으로 되는 것을 은혜에 속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과 자비성에 의한 무조건적 사실들이기 때문에 ‘은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은혜’라는 용어는 구약과 신약에서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섭리에 의해 자비하심에 따라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대로 백성을 무조건적으로 구원해 주시는 섭리를 말한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용기 원로연구원 (성경신학학술원,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명예총장)

은혜의 내용
예배란 무엇인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