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으로 신앙 지키기
‘이 집에선 이곳의 종교를 따르고 너희 집에선 너희의 종교를 따르라’는 말씀을 시아버님께서 하셨다. 불교도나 천주교인들은 타종교에 대한 포용을 보이는 것이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불자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천주교인이 위패에 절을 하는 것도 그러한 관용과 존중의 일종이라 여기는 듯하다. 뭐 얼핏 보면 '쿨'한 것도 같다. 거리낌 없이 그런 행위를 하는 게 아무래도 더 대인배처럼 보이긴 하니까.
내 기준은 조금 다르다. 나는 그러한 행동들에서 일말의 '쿨'도 느끼지 못하겠다. 아니, 그런 것으로 쿨해 보이고 싶지도 않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까이꺼 예민하게 굴지 말고 좋은 대로 좀 하자! 라지만, 대체 뭐가 좋은 것이며, 심지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다 뭉뚱그리는 건 어딘가 석연찮기까지 하다. 왜? 도대체 중요한 것이 무엇이기에?
물론 다른 종교를 매우 존중한다. 특히, 불교의 사상과 철학을 좋아하며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 싶은 의향도 있다. 하지만 다른 종교를 존중한다는 것이, 그들의 방식을 따르겠다는 뜻은 아니며 그들의 신까지 존경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에게 존중은 어디까지나 경계가 명확할 때 가능하다. 만약 다른 종교의 방식을 따르라고 한다면, 배교자가 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는 것 같은 모욕과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독실한 이에게 종교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다. 지역이나 문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의 정체성 일부이자 신념이고 앞으로의 삶에서도 지켜나가야 할 가치이다. 그 중요한 것을 마음 좀 편하자고 타협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또 모른다. 고문을 하려 들거나 목에 칼을 들이대면 금세 말을 바꿀지도. 지금이야 편안한 상황에서 ‘태도’의 문제 정도이니 펜이나 굴리고 있는 거다.)
기독교인이 제사에 참여하는 것보다 참여하지 않는 쪽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왜냐면, ‘굳이’ 마찰을 빚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쪽의 입장에선 교회에 다닌답시고 제사를 안 지내니 일도 안 하고 참 속 편하겠다 빈정거리겠지만, 그 빈정거림과 미움과 원망이 등 뒤에 있음을 알고도 신앙을 지켜내려 부득불 태도를 확고히 하는 것 아닌가. 욕먹을 게 보이는데 부러 그쪽을 택하는 사람은 없다. 차라리 몸이 수고롭더라도 마음이 편한 게 나을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한다. 유난해서가 아니라,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께 태도를 확실히 하려는 그들의 마음가짐인 것이다.
요즘 나의 이슈는, 남편 가정의 문화에 동참할 때 그들의 종교를 어떤 태도로 인정해야 하는가이다. 사실 강요해오지 않는다면 아무런 말썽이 없겠지만, 무턱대고 단칼에 거절했다간 그쪽 가정 전체의 문화를 거부하는 셈이 되니 참으로 예민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외인이 아닌 그 가정의 일원이기도 하기에, 기존에 고수해왔던 나의 방식으로 신앙을 지켜간다면 충돌을 빚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어디까지 양보하고 어디까지 단호해져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내 신앙을 지키며 그들의 문화에 동참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할까?) 이것은 게으르고 안이한 내게 하나님이 주시는 도전 같은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