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옳은 명분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싸움에는 언제나 명분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각 진영에는 현저한 입장 차가 생기기 마련이다. 전쟁의 역사는 늘 그러해왔다. 전쟁을 일으키는 쪽도, 막는 쪽도 ‘그럴 수밖에 없는’ 당위가 있었다. 혁명이나 항쟁 역시 마찬가지다. 두 진영의 입장을 살펴보면 치열하도록 타당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는 ‘마블의 역작’이라 할 만큼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에 동의하지 않으나 각 진영의 스탠스를 지속적으로 피력한다는 점에서, 영웅 영화의 탈을 쓴 정치 드라마라 같은 점은 재밌었다. 갈등의 출발은 간단하다. 어벤저스(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기 능력을 지닌 영웅들)로 인한 피해가 늘자 정부에서는 이를 관리, 감독하기 위한 안을 내놓는다. 일종의 ‘영웅 등록제’ 같은 것. 이들을 통제하여, 유사시라고 판단될 때에 군대처럼 쓰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입장 차가 생겨난다. 우리의 힘은 통제될 필요가 있다고 믿는 아이언맨과 그로 인해 더 큰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캡틴 아메리카. 둘은 한 치도 주장을 좁히지 않으며 팽팽하게 대립한다. 그 과정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보호하려고 했던 ‘무고한’ 인물인 바키는, 과거 악당에게 조종당하여 아이언맨의 부모님을 살해한 적이 있음이 알려진다. 캡틴 아메리카는 이 사실을 아이언맨을 위해 숨겼었으나 아이언맨은 눈이 뒤집힐 것 같은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다. 결국, 이들의 갈등은 화해 불가능한 결말에 치닫게 된다. 사실 영화만으로 놓고 보면 캡틴 아메리카의 행보는 몇 가지 의구심을 낳게 한다. 그의 명분이라는 건,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진짜 악’을 처단하기 위함이고 그 과정상의 희생양인 바키를 보호하는 일인데, 캡틴 아메리카와 바키의 관계만을 초점을 맞추다 보니 마치 둘의 우정 때문에 나머지를 배척하는 듯 보였던 것이다. 알고 보니 원작인 코믹스에 실려 있는 내용이 영화상에서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것. 원작을 읽고 보면 두 진영의 첨예한 대립과 그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바꿔 말하면 양 진영의 논리가 무서우리만치 타당하고 정연하다는 뜻- 견해 차이에 마음이 다 아플 지경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작은 통찰 하나를 할 수 있었다. 무슨 싸움이든 반드시, 좀 ‘더’ 옳은 진영이 존재한다는 것. 표면적으로는 둘 다 정당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둘 다 그 명분까지 50대 50으로 정당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일제 침략의 역사나,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항쟁들, 근래의 세월호 사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언제나 좀 ‘더’ 진실과 정의에 가까운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각자가 얽힌 이해관계 때문에 이를 직시하지 못했던 (않았던) 것. 인간은 자신의 이익이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동물이다. -그 이익은 금전적인 것뿐 아니라 정서적인 것까지 모두 아우른다- 그러므로 이익과 상관없이 순수한 진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거는 행위는 쉽게 일어날 수 없으며 설령 일어난다면 그것은 매우 숭고하고 값진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캡틴 아메리카든, 아이언맨이든) 잘잘못을 따지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일을 하려는 목적과 명분이다. 가지고 있는 목적과 명분이 ‘진짜’라고 한다면, 개인의 이해관계가 엮인 일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무턱대고 지키려는 행위 자체도 존중하지만, 나는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안 이후에 지켜내는 행위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분별의 힘은 곧고 단정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참뜻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동안 문화칼럼을 좋아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때론 모나고 때론 둥글고 때론 이해 못 할 말들을 해대며 삐죽거렸던 글들을, 주를 깨닫는 성장통이라 이해해주시고 아량 넓게 품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고, 글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이 땅 위의 생명과 아름다운 모든 것들과 슬픔, 고통과 아픔들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표현해 나갈 것이다. 좋아서든 아니든, 쓸 수밖에 없었던 한국크리스천 신문의 칼럼은 이제 돌아보니 나를 참 많이 자라게 해준 선생이었다. 이 뜻깊은 기회를 주셨던 분들과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에 눌러가며 읽어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다시 한 번 진심 어린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