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철저히 회개한 사람 칼빈_50
칼빈은 본래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그 자신의 자서전도 없거니와 간증문도 없다. 그가 언제 회개했는지, 그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다만 학자들 사이에 구구한 추측만 있을 뿐이다. 칼빈이 회심하고 회개했다는 것도 그의 시편 주석을 쓰면서 잠깐 언급한 것밖에 없다. 그러나 칼빈의 작품을 살펴보면 칼빈이야말로 가장 회개를 강조하고 회개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회개 없이는 믿음을 가질 수도 없고, 회개 없이는 주님의 사역을 할 수 없다고 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회개에 대한 칼빈의 강조는 『기독교 강요』와 『성경 주석』 등에서 100번도 훨씬 넘게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말하자면 칼빈의 신학은 회개의 신학이고 칼빈의 신앙도 회개의 신앙이며 칼빈의 삶도 회개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이 회개를 그토록 강조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철저히 부패하고 병들었으므로 회개의 관문을 통과해야만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칼빈의 회개론을 간략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하나님 앞에 서려면 죄의 회개가 전제되어야 한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회개에 대하여 정리하기를 “회개의 히브리어는 전환이나 돌아옴을 의미하고 헬라어는 마음이나 의도의 변화를 의미한다. 회개는 우리의 생활을 진정으로 하나님께 전향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께 대한 신실하고 진지한 두려움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육과 옛사람을 죽이고 소생함에 있다.”(Ⅲ. 3. 5) “회개의 참된 두 부분은 육은 죽이고 영은 살리는 것이다.”(Ⅲ. 3. 8)라고 했다. 칼빈에게 있어서 회개는 단순한 뉘우침이나 반성이 아니며 인간의 전적 부패와 타락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칼빈은 회개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회개란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아주 명쾌하게 밝혔다. 특히 칼빈은 에스겔 주석을 쓰면서 말하기를 “우리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묻히기를 원한다면 우리 자신은 그것들을 기억해야 한다.”(p.174)고 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 앞에 도말되기를 원한다면 자기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수단이다
그래서 칼빈은 구체적 회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개의 시작은 자책감과 함께 죄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다. … 우리는 우리의 죄를 뿌리째 뽑고 우리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헌신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효과적으로 할 수 없다.”(창세기 주석 pp.96, 110)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이 상한 마음으로 그의 자비의 발 앞에 엎드리는 것이라고 했다(시편 주석 2권 p. 306). 그러므로 모든 역경은 우연에서 오지 않는데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를 회개하도록 이끄신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징계는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회개의 시작은 모든 속이는 것과 잘못된 생각을 끊고 우리의 악을 발견하게 하는 유일한 빛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죄인이 자신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내놓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진정으로 회개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또한 참된 회개는 죄를 불쾌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데서 일어난다. 그리고 의를 사랑하고 갈망하게 한다. 이러한 칼빈의 메시지는 그의 공관복음서 주석이나 이사야, 예레미야, 창세기 주석 등에서 아주 빈번히 나타나는 메시지이다. 이렇게 보면 칼빈은 인간 내면의 깊은 죄악의 더러움을 예민하게 가려내었을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회개함이 없이는 하나님과의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개가 선행되어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갖게 된다고 주장했다.
회개마저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회개마저도 인간의 자기 의지로만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회개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회개마저도 하나님의 자비의 사역으로 보았다. 칼빈은 여기서 개혁주의 신학 곧 칼빈주의 신학의 단단한 기초를 놓았다. 곧 회개마저도 인간의 자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는 것은 칼빈이 성경에서 발견한 위대한 진리가 된다. 칼빈은 예레미야 주석에서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보조자로 불려지지 않고 회개의 조성자로 불리신다.”, “회개에 관하여 말할 때 교황주의자들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께 돌아온다고 한다. 이 점이 오늘날 우리와 그들 간의 가장 논쟁점이다.”(3권 p.228, 229, 4권 p.102)라고 했다. 그러므로 회개의 기초가 잃은 자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 보며, 회개가 주어지지 않는 사람은 회개할 수 없으며 회개는 하나님의 독특한 선물로 보고 있다.
참회개는 믿음의 결과이다
특히 칼빈은 회개와 믿음과의 관계를 또한 예민하게 다루고 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말하기를 “참된 회개는 언제나 믿음의 결과이며, 회개는 즉시 믿음을 따를 뿐 아니라 믿음에서 생긴다.”라고 했다(Ⅲ. 1. 1 그리고 3. 1). 회개와 믿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또 어느것이 먼저라고 판단하기보다는 참된 믿음은 회개가 있어야 하고 참된 회개는 또한 참된 믿음을 가져오게 된다. 칼빈은 이사야 주석을 쓰면서 “우리가 먼저 우리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 … 회개는 분리될 수 없는 방법으로 구원과 결합된다.”고 했다. 또한 칼빈은 다니엘 주석에서도 “회개란 마음이 변하여 그들이 반항했던 하나님께서 자발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과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p.255)고 했다.
칼빈은 회개의 사람이다. 그의 신학과 신앙은 회개에서 시작해서 회개로 끝났다. 그래서 칼빈의 첫 회개와 회심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는 시편 주석 서두에 “나는 철학 공부를 중단하고 법률 공부를 하게 되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섭리의 은밀한 인도를 통해서 마침내 나의 인생 행로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꾸었다. 처음에 나는 깊은 수렁에서 쉽게 구출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회심에 의하여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을 유순하게 만드셨다.”(p.11)고 썼다. 그는 이 회개의 체험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의 포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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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정성구 목사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 전 총신대학교 총장) |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관계에 있다 |
지도자의 힘 (고전 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