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경제를 일으킨 칼빈_ 44
오늘날은 경제 전쟁시대이다. 오늘날 모든 국가의 목표도 경제 살리기이다. 그런데 실제로 지금 온 세계는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탁월한 국가지도자들과 경제전문가와 금융전문가들이 대안을 내어놓고 있지만 좀처럼 경제가 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경제원리가 문제인가 아니면 정치가 문제인가? 이러한 때에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의 경제 논리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성경적 경제 활동의 모델이 필요
물론 칼빈은 종교개혁자일 뿐 경제학자는 아니다. 그는 목사요 설교자일 뿐이고 경제 활동을 한 일도 없다. 그는 수많은 저술을 남겼지만 경제 교과서를 쓴 일은 더더구나 없다. 단지 우리는 그의 설교집과 성경 주석을 통해서 경제에 대한 원리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그가 제네바시의 실제적인 관리자로서 그가 행했던 경제 정책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근대 자본주의는 칼빈 사상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록 칼빈은 신학자이자 목회자였으나 자신이 지도하고 있던 제네바 시민들의 경제 활동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았으며 아주 세심한 관심을 가졌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간이 땅 위에 사는 동안 생명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물질이라고 한다면 물질적인 경제생활을 성경적으로 또는 합리적으로 영위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칼빈은 성경적으로 바람직한 경제 활동의 모델 제시가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의 제네바는 지리적으로 세계의 다른 경제권과 아주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다. 국제적인 무역 시장이 열렸다. 종교 개혁 당시 제네바는 인쇄업이 발전되어 성경, 시편 찬송, 논쟁서가 많이 출판되어 각국에 수출하고 있었고 동시에 종이나 잉크 등 관련 산업이 발전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력이 필요했고 제네바에는 특히 직물 산업이 발전하고 있었기에 칼빈은 주변의 경제적인 바탕을 성경적인 방법으로 풀어갔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하나님 앞에는 평등하다
칼빈에게 있어서 부와 빈곤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재물은 금욕주의자들의 말처럼 무시하거나 거부되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을 봉사하는 데 사용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부를 혼자서 호의호식하며 독점적으로 누려서는 안 되고 형제들의 궁핍함을 돌보는 것이 부자의 사명이라고 했다. 칼빈의 경제 원리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한데 인간의 탐욕과 욕심 때문에 무질서와 불평등이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칼빈은 가난한 사람들, 특히 과부나 고아 및 이방인들과 압제를 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그들을 돌보며 일생을 살았다. 예컨대 그는 제네바의 책임 있는 직책에 있었기에 고액의 월급을 받았지만 의식주에 드는 약간의 비용을 제외하고는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고 청빈한 삶을 살았다. 칼빈은 물질 관리에 있어서도 하나님 앞에 청빈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칼빈은 교회 개혁뿐 아니라 사회 개혁으로 말미암아 많은 비판과 도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깨끗하고 순결하고 청빈한 삶을 보여주었기에 부동의 개혁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칼빈은 사회공공의 복리를 주장했다
칼빈은 또 원만한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정선에서 국가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예컨대 국가는 개인의 사유재산이 안전하게 보장되도록 노력할 뿐 아니라 재산권이 공공의 유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했다. 칼빈은 누구보다 사회 공공의 복리를 강력히 주장한 실용주의자였다. 칼빈은 세금은 국민에게 부담되어야 하지만 이것은 결국 국민들의 피라고 보았다. 그러기에 군주는 국가의 수입을 군주 개인의 재산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국민 전체를 위해 쓰여질 기금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노동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다
노동관에 있어서도 칼빈은 혁신적이었다. 중세에는 노동을 죄의 결과로 생각했으나 칼빈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보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노동을 주심으로 불안정한 인간의 본성을 질서 있는 생활방식으로 통제하시므로 노동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고 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일정한 물질을 얻게 된다. 칼빈은 임금에 관해 고용주나 피고용주나 자기 권리만 따지지 말고 피차 사랑하고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칼빈은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해서 예레미야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도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재물의 약탈에 불과하나, 가난한 사람에게 노동력을 착취하여 그의 임금을 가로채는 것은 그들의 피를 빨아먹은 후에 발가벗겨 무일푼으로 내쫓는 것과 같은데 이러한 행위는 이방인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보다 더 흉악하다.”(23:13)
부자는 섬기는 자이다
칼빈은 상업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상업은 하나님이 설정하고 조화로운 사회 질서를 구체화하는 데 필요하고 상품이 유통됨으로 인간의 고통이 줄어들고 삶이 향상된다고 했다. 그러나 매점매석하는 자들은 살인자와 다름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생필품의 유통을 막아 물가를 올리므로 빈민의 목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은 고리대금을 금했다. 그러나 돈을 빌려줄 때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칼빈은 이 세상에는 부자나 가난한 자는 항상 있지만 부자를 ‘가난한 자를 수종드는 자’, ‘예수님의 대리자’, ‘하나님의 사무변호사’, ‘대행자’로 불렀다.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질서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돈의 관리자이고 청지기일 뿐 돈의 신 곧 맘모나즘(Mammonism)을 섬겨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물질도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필요하다. 흔히 칼빈 사상을 현대자본주의의 근원이라고 하나 칼빈은 하나님 앞에서 물질을 관리하고 사랑으로 나누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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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정성구 목사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 전 총신대학교 총장) |
십자가 위에서 큰 소리로 시편을 읊으신 예수님 |
국가의 질서를 세운 칼빈_ 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