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2-05-30 21:5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요한의 태초는 모세의 태초와 어떻게 다른가?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때를 태초라고 모세는 기록하고 있다. 한편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을 언급한다. 모세가 기록한 태초와 사도 요한이 기록한 태초가 같은 태초냐 아니면 서로 다른 태초를 언급하고 있느냐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먼저, 태초라는 용어 자체가 시간개념이기 때문에 “모세의 태초와 요한의 태초 의미는 같다”라는 주장은 태초라는 단어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는 시간이 시작(알파)과 끝(오메가)이 있지만 영원은 시간을 초월한 생명 곧 영생을 의미하기 때문에 시간의 시작인 태초가 영원의 어느 한 지점이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신학적인 주장은 모세의 태초가 창조주에, 그리고 요한의 태초는 구속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본다. 즉 같은 출발점(절대성의 태초: Absolute Beginning)에서 모세는 천지창조를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 요한은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를 이야기한다는 주장이다. 태초가 창조세계와 구속세계의 동일한 출발점이지만, 모세는 창조론적으로 접근하고 요한은 구속론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접근방법과 진행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한다.

모세의 태초와 요한의 태초가 서로 다른 태초라는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창세기 태초는 창조사역이 시작하는 시간의 출발점이고 천지 만물이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태초는 창세 이전의 시간이 없는 영원을 의미한다. 즉, 요한복음의 태초는 시간과 공간과 하늘이 창조되기 이전을 뜻한다. 생명의 말씀은 창세전부터 계신 예수님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태초 이전, 영원 전부터 계신다. 따라서 창세기는 영원 전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만물이 창조되는 시점부터 시작하고 있으며 요한복음의 태초는 초시간적인 영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원함 가운데서 우리를 선택해 주셨는데 이는 그 어떤 것도 보이기 전에(창세전에) 택해 주신 것이다.
개역개정 구약에서 태초라는 단어는 창세기 1장 1절, 열왕기하 19장 25절, 잠언 8장 22, 23절, 이사야 37:26, 40:21, 43:13절에 나오지만, 히브리어 레쉬트(ראשׂית) 라는 단어는 시작, 처음, 으뜸, 연초부터, 장자, 맏물, 먼저, 가장, 근본, 제일, 초기, 첫, 머리, 귀한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즉, 가장 근본이 되는 처음이라는 뜻이다.
미가서 5장 2절의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라는 개역성경의 말씀이 개역개정에서는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라고 번역되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존재하신 태초가 영원 전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신약에선 요한복음 1장 1, 2절, 히브리서 1장 10절, 요한일서 1장 1절, 2장 13, 14절에 태초라는 단어가 나오지만, 헬라어 아르케(άρχή)라는 단어는 본래, 시작, 창세, 창조 때, 처음, 권세, (보자기)귀, 통치(자), 초(보), 지위, 이제도, 근본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신약에서는 창조 때와 근본, 시작이라는 뜻이 구별되어 번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한일서 1장 1절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나님과 같이 선재하신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마가복음 1장 1절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구속사적 복음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한다.

이렇게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는 태초라는 단어에 대하여 논의의 편리성을 위해 태초를 원태초, 구속사적 태초, 천지창조의 태초로 나누어 보자. 원태초란 영원 전부터 계신 삼위 하나님의 존재 시점(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이고 구속사적 태초는 삼위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구속을 완성시키신다는 계획을 세우셨던 시점(이 역시 언제인지 알 수 없다)이며 천지창조의 태초는 삼위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신 시점(157억 년 전이라고도 하고 1만 년 전 정도라고도 하는 두 주장이 역시 논쟁하고 있지만)을 말하는 것이다.
쉽게 구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보자.
“오늘 고속버스 터미널에 대전에서 올라오는 친구를 마중 나갔더니 그 친구가 제일 먼저 버스에서 내렸다”라고 말한다면 이 이야기가 삼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 첫째는 그 친구가 그날 고속버스 터미널에 제일 먼저 도착한 버스에서도 제일 먼저 내렸다는 의미이고, 둘째는 그 친구가 대전에서 오는 버스 중에서 제일 첫차를 타고 와서 제일 먼저 내렸다는 의미이고, 셋째는 그가 타고 온 버스가 언제 왔는지 모르지만 그가 제일 먼저 내렸다는 의미이다.
첫째 경우가 하나님께서 존재하신 원태초이고, 두 번째가 인류를 구속하시기로 한 구속사적 태초이고, 세 번째가 천지창조의 태초로 대비된다.
인간의 이성으로 볼 때 태초의 순서는 원태초, 구속사적 태초 그리고 천지창조의 태초 순으로 순서로 매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세상적인 잣대로만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창조가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시종을 측량할 수 없다(전 3:11). 따라서 우리의 주장은 부정적인 표현으로 말하는 편이 좀 더 정확할 것이라 본다.
즉, 천지창조의 태초는 구속사적 태초보다 앞설 수 없고, 구속사적 태초는 삼위일체 하나님 존재의 원태초보다 앞설 수 없다. 이를 수학적 기호를 빌려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원태초(요한의 태초) ≥ 구속사적 태초(마가복음의 태초)≥ 천지창조 태초(창세기 태초)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여인갑 장로 (지구촌교회 / (주) 시스코프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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