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사라지지 않는 시각적 욕망, 사실주의
문화사
< > (1949~1850)
з <̻ݱ> (1855~1857)
프랑스 대혁명 이후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의 바람으로 마침내 근대사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이상 사회를 동경하게 되었다. 예술가들은 현실을 두 가지 관점으로 보게 되었는데 이성적 신고전주의와 감성적 낭만주의였다.
그러나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은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기보다 오히려 많은 사회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산업으로 인한 환경문제, 노동자들의 노동착취, 도시로 밀려든 도시빈민가, 빈부의 격차로 인한 사회불안 등에 대한 관심은 보다 정확하게 현실을 직시하려는 운동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때 산업혁명으로 인한 빈부의 격차로 결국 마르크스와 앵겔스는 공산당선언을 하게 되었고 이데올로기는 분열되었다. 결국,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사회주의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예술가들은 낭만주의가 추구해 온 이상적 예술의 규범을 깨뜨리고 사회 전반에 대해 현실을 직시하려는 사실주의로 나타내게 되었다. “회화란 구체적인 예술이므로 예술가는 직접적인 체험에 의한 실존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쿠르베의 말에서 사실주의의 개념이 정립되었다. 당시에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대립되어 성서나 신화, 역사 등 현실과 동떨어진 주제에 국한되었으나 현실문제에 대한 관심과 시대적 감정을 표현하려는 사실주의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한편 과학기술로 증기기관차, 자동차의 발명, 전화기, 사진기, 인쇄술 등이 발전되었고, 이는 현실에 대한 여러 분야에 관심과 지적인 미술을 추구하는 사실주의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다. 사실주의는 美에 대한 규범이나 전통적 이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 눈을 돌리고 당시 회화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노동자, 농민들의 삶을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표현하므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은 피곤한 노동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였고 밀레의 서정적 목가적 분위기의 ‘이삭줍기’는 가난한 농부의 아낙이 궁핍한 생활을 연명하기 위해 이삭을 줍는 모습으로 보수주의자들에게 비난을 받고 사회에 큰 파문을 몰고 왔다.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와 밀레에게 노동자, 농민의 입장을 표명하는 ‘사회주의 급진주의자’라는 혹독한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사실주의 대표적 화가 쿠르베는 하층민을 객관적 사실로 표현함으로써 현실적 문제를 정직하게 지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쿠르베는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에 대해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민주주의 공화주의자이다. 참된 진리의 친구인 리얼리스트(사실주의자)이다.”라고 반박하였다.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이념이나 원칙보다 구체적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실주의 화가 도미에는 위정자, 위선자들을 풍자적으로 묘사하여 현실적 사회의 모순을 노동자계급의 시각으로 대항한 화가였다. 이에 대해 쿠르베는 역사적 사실조차 부정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에게 사실이란 실제적 의미이며 현실인 것이다.
육체를 지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현실적 시각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제나 현실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실주의는 시각적 욕망의 산물인 현실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고전과 낭만주의에 의해 표현되는 이상 사회에서 사실주의는 현실 세계로 눈을 돌린 것이다. 현실주의적 사실주의는 이제 하나님을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인간의 정신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이는 계몽철학사상이 깊이 반영된 것이며 이후 현대미술은 과학기술과 융합하여 지극히 망막에만 의존한 예술세계를 구현해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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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완재 전도사 (아둘람교회) |
현대미술의 시작, 인상주의 |
이성적 신고전주의와 감성적 낭만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