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15-03-23 20:5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원시 미개로의 회귀 야수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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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Ƽ 1910>

20세기 인상파, 신인상파, 후기인상파 이후 가장 큰 특징은 추상파의 발현이다. 20세기 눈부신 과학의 발전과 기술공학의 발달은 실증주의적 사고와 실험적인 의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더 나아가 전자기술이 발달하고 정보화시대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전달 형식으로 미래의 세계를 찾으려는 노력이 고조되었다.

현대미술의 기저에 깔려있는 추상주의는 끊임없이 기존 양식을 벗어나고자 전통적 형식을 파괴함으로써 추상주의의 정체성을 규정하려고 하였다. 그 선두에 피카소가 이끄는 입체주의가 있었고 마티스가 이끄는 야수주의가 있었다. 이미 해양 국가들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면서 오세아니아의 섬들과 아프리카의 원시에 가까운 미술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불타오르는 듯한 강렬한 색채와 거친 마티에르(질감)는 젊은 작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겨 주었다.
야수파는 원시적 감각을 찾으려 타히티에 가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고뇌한 고갱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현대미술의 선각자 마티스는 젊은 작가들과 함께 강렬한 도전의식으로 살롱 전시회를 열었다. 과감한 그들의 도전적인 작품은 야수(野獸, fauve)속에 둘러싸였다고 비평을 받은 데서 야수주의(fauvisme)라고 명명하였다. 당시 비평가들은 ‘혐오스런 뺑끼 칠로 회화를 탈선시킨 작가들’이라고 혹평을 하였다. 그들의 작업은 특별한 의도라기보다 각자의 개성적인 화풍을 시도한 작가들이었다.

야수주의는 엄청난 회화의 바람을 일으켰으나 앞서 나간 입체주의의 거센 파고에 의해 수년 만에 시들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1905년부터 2, 3년간 불어왔던 12명의 20대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양식으로 표현된 야수파의 광풍은 20세기 입체파와 함께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

그 후 입체파는 기하학적 추상주의로 야수파는 주관주의적 추상표현주의에 직접적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야수파의 실험적인 창작 정신은 이후 현대 작가들에게 다양한 양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그들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물질문명의 발전과는 반대로 인간이 이루지 못하는 주관적 감성의 세계를 탐험하였고 원근법과 같은 전통적 규범과 고전적 이상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색채의 감각적 표현이나 선의 흐름을 자연스러운 율동으로 표현하였다. 즉 구체적인 사실 묘사보다 사상과 감정에 충실하려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미술의 흐름으로 추상주의는 작품의 구조와 틀에 주안점을 두었지만, 표현주의는 작가의 감정을 강조하는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상상의 세계와 비합리적인 성격으로 변모된 환상미술까지 합쳐져 바야흐로 미술사조는 복잡하고, 굽이굽이 흘러가는 미술의 흐름은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안갯속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미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현대인의 삶과 수고를 정확하게 간파하였고 이렇게 노래하였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고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전도서 1:3~10)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완재 전도사 (아둘람교회)

현대미술의 대하드라마, 표현주의
현대인의 자화상 입체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