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15-04-12 07:5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현대미술의 대하드라마, 표현주의

banner

<>, ũ(1983, 븣 ǥ ȭ)

현대미술을 살피다 보면 미술의 여러 사상체계에서 ‘主義’(ism)이란 언어를 대하게 된다. 그리고 ‘주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보면서 미술 세계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한 시대의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미술사조(美術思潮)를 논리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사실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특히 현대미술과 관련된 양식들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미술사조의 실타래를 풀어나가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주의’에서 구체적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깊이 있는 이해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 ‘주의’를 배제한 논의는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서양미술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지역적인 전통적 양식이 점차 국제적 경향에 따라 ‘주의’라는 언어로 흡수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19세기 근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로부터 20세기 현대미술의 시작인 인상주의까지는 일직선의 미술사조를 이루었지만 현대미술은 인상주의로부터 후기 인상주의를 바탕으로 여러 갈래로 전개되었다.

현대미술의 뚜렷한 세 가지 흐름은 표현주의 흐름, 추상주의 흐름, 환상주의 흐름의 경향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이러한 경향들은 다양한 양식이 맞물려 있으며 현대의 복잡한 생활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중에 표현주의 경향은 세기말 사회적 혼란과 위기의식 속에서 니체의 초인사상을 통하여 예술로 극복하려는 경향이며 사회적 혼란과 정신적 불안을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려는 경향이다.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뭉크는 인간 내면에 꿈틀거리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비합리적인 상황으로 전개해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려고 하였다. 뭉크의 대표적 작품 “절규”는 고흐의 정신적 불안을 나타내는 소용돌이 선과 빨강, 노랑의 밝은 색채임에도 검은색으로 음산한 분위기를 화면 전체에 깔고 있다. 그리고 공포에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괴이한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 사회적 상황과 인간이 가졌던 불안한 심리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다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어두운 한 세기를 지나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려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후기인상파 고흐와 고갱의 영향은 젊은 작가들에 의해서 야수파를 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창작으로 열정을 쏟아 나비파로 이어졌다. 히브리어로 ‘예언자’란 뜻을 지닌 (Nibis, 나비)파는 미래의 미술을 예견하려는 취지로 모인 작가들로서 고갱이 추구하였던 내면세계의 표현을 주장하며 상징주의적인 구조를 이어받았다. 나비파의 대표적 화가이자 이론가였던 ‘드니’는 “회화작품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이전에 특정한 질서에 의해 색으로 칠해진 평면일 뿐이다.” 즉 그림은 더는 일상세계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회화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3차원의 물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그림 그 자체의 평면작업을 독립적인 작업으로 본 것이다. 자연이나 외부의 세계를 묘사하는 것보다 인간의 신비로운 내면의 세계를 자율적인 작업으로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표현주의는 점차 거칠어지고 다듬어지지 않는 형식으로 나아가면서 현실세계를 초월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면서 자연을 관찰한 색이 아니라 상상력과 감정에 의한 구성으로 선택된 색채를 사용하였다. 또한, 형태는 뒤섞이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물체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시도는 바야흐로 추상주의의 새로운 길을 열게 한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완재 전도사 (아둘람교회)

현대미술의 주역, 추상주의
원시 미개로의 회귀 야수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