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성경 번역가, 칼빈_27
아마도 독자들은 이런 제목에 놀랐을 것이 다. 성경 번역이라면 마틴 루터이지 어떻게 칼빈인가 할지 모르겠다. 하기는 칼빈이 성경 번역가라고 연구된 바도 별로 없거니와 칼빈은 오히려 성경 주석가로서 이미지가 더 알맞기 때문이다. 칼빈의 성경 번역이 책으로 출판된 일도 없거니와 그것이 금시초문으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여러 번 지적했듯이 칼빈은 위대한 고전어 학자였다. 그 중에서도 당대의 성경 원어의 최고의 권위자 아래서 공부했다. 특별히 라틴어는 자신의 모국어인 불어보다 더 유창하게 설교할 수 있었고 학문적으로도 엄청난 책을 저술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어의 천재적인 재능을 소유한 칼빈을 종교개혁의 지도자로 사용하신 것이다.
칼빈은 가톨릭의 라틴 불가타를 인정하지 않고 성경을 사역했다
칼빈이 천재적인 성경 번역가인 이유는 칼빈 성경은 없지만 그가 성경 매 장을 주석하기 전에 구약 히브리어 성경과 신약 헬라어 성경을 보면서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하였다. 칼빈 온 라틴 불가타(Latin Valgata) 즉 가톨릭의 공인역보다 철저히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원문에 가깝도록 성경을 다시 번역했다. 여기서 잠깐 왜 칼빈은 당시에 로마 가톨릭의 공인역을 버리고 칼빈 자신이 직접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다시 번역을 했을까를 생각해 보자. 가톨릭교회는 라틴 불가타를 공인역으로 쓰기는 했어도 그들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나마도 그 라틴 불가타 성경은 가톨릭의 조직을 위해서 변조시킨 것이었다. 라틴 불가타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면 이렇다.
콘스탄틴 황제 때 유세비우스라는 학자는 오리겐파였는데 과거 이단자 오리겐이 만든 성경을 편집하여 공인 성경 50권을 만들었다. 이 사본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콘스탄틴은 공인 성경 외에 어떤 성경이라도 소유하거나 읽거나 배포하는 자는 모두 체포하여 목을 자르고 그들이 갖고 있는 성경은 압수하고 불태우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 출신인 신실한 성도들은 박해를 피해 알프스 산속 피에드몽 골짜기를 거점으로 제국 전역에 성경을 보급했다. 그들이 전파한 성경은 바로 코이네 헬라어 성경에서 라틴어로 번역해준 라틴 불가타라 불리는 성경이었다. 안디옥의 라틴 불가타 성경은 비공개적이지만 대중들에게 널리 퍼지면서 당대에는 권위있는 성경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자 당시 교황 다마수스는 라틴 교부이자 저명한 성경학자인 제롬을 시켜 위조 라틴 불가타 성경을 만들어 전에 있던 라틴 불가타 성경을 대치했다. 그리고 이 성경은 후일 트렌트 공의회에서 정식으로 로마 가톨릭의 공인 성경으로 채택되었다. 그래서 자연히 위조된 라틴 불가타가 정통이듯이 대접받았다. 그러나 제롬이 만든 라틴 불가타 성경은 로마 가톨릭의 교권을 위한 성경이었다. 그 좋은 실례로 마태복음 3장 3절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리라.’는 본문 내용의 일부인 회개하라를 ‘‘고해성사하라’’(Doe nitentia)로 번역한 것 이다. 그러므로 가톨릭은 성경도 교회의 지배하에 있다고 하면서 전승을 성경 윗자리에 두게 하였다.
칼빈의 라틴어 성경 콘콜단스가 있다
그러므로 칼빈이 성경 주석을 할 때 가톨릭의 공인역을 쓰지 않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사역(私譯)해서 주석에 기록했다. 그런데 최근 25년 전에 미국의 칼빈대학(Calvin College)의 고전어학 교수인 리차드 웨벌스(Richard F. Wevers) 박사가 칼빈의 주석에 있는 칼빈 작품을 한 곳으로 모아 「요한 칼빈의 라틴어 성경 콘콜 단스(성구사전)」(A Concordance to The Latin Bible of John Calvin)를 만들었다. 그동안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 작업은 일찍이 칼빈의 「기독교강요」 번역자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칼빈학자인 고 포드 루이스 베틀스(Ford Lewis Battles) 박사의 조언으로 시작되었다. 베틀스 박사가 칼빈대학과 신학교 안에 있는 헨리 미터 칼빈 연구소장으로 있을 때 칼빈의 라틴어 작품들을 컴퓨터 작업을 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연구 프로젝트 때문에 1559년 출판된 「기독교강요」를 위시하여 칼빈의 라틴어 성경도 콘콜단스(성구사전)화 하였다. 칼빈의 성경은 그의 성경 주석의 과정에서 되어진 것이어서 아직 칼빈 성경이란 이름으로 출판되지는 않았으나 먼저 성구사전이 나온 셈이다. 칼빈의 성경은 완전하지는 못하다. 왜냐하면 칼빈의 성경 주석 중에 빠진 내용이 조금 있기 때문이다. 완성품은 만들 수가 없어도 그의 라틴어 성경 번역은 오늘 우리에게 놀라운 것을 던져준다.
칼빈은 어학의 달인
최근 영국의 대 칼빈학자 파커(T.H.L. Parker) 박사가 쓴 책 「칼빈의 신약 주석」을 보면 칼빈의 천재성을 알 수 있다. 칼빈은 어학의 달인이었다.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또한 헬라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당시의 철옹성같이 단단했던 라틴 불가타의 번역을 제쳐두고 직접 성경 원문에서 라틴어로 번역했다. 물론 선배인 에라스무스가 가톨릭 교황과 가까우면서도 가톨릭의 헛되고 거짓된 것을 폭로하고 「우신예찬」 곧 어리석은 신을찬양한다는 책을 썼던 신약학자가 있었기 때문에 아마 칼빈은 그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칼빈은 성경 주석의 왕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성경 번역의 대가로서 가톨릭의 라틴 불가타를 버리고 성경원문에서 성경을 번역했다. 물론 100% 완성은 못했지만 말이다.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정성구 목사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 전 총신대학교 총장) |
목사로서 칼빈_28 |
성경 주석에 사활을 건 사람, 칼빈_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