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이근삼의 개혁주의적 문화신학 (11)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칼빈주의적 문화신학 수용-
V. 칼빈주의는 기독교 세계관과 문화관으로 성숙해야 함
3. 근본주의적 협착성 아닌 폭넓은 개혁신앙
이근삼은 개혁주의적 문화신학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역사적 개혁교회가 교회 안에서 그리고 신앙과 교리 수호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개인, 공동체, 사회, 국가, 역사, 자연, 우주에 대하여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세계관으로서의 개혁신앙을 가져야 할 것을 천명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근삼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을 극단적 비판으로만 몰아가지 않고 성경적으로 적합한 대안을 제시하며, 교회의 성장과 제도에만 집착하고 세상사에 대하여 무관심하여 부흥주의나 열광주의에 치우치지 않고, 창조 세계에 대한 문화적 위임(cultural mandate)을 인정하는 일반은총(common grace) 사상에 대한 이해를 넉넉히 제공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 캠브리지 역사학자 데이비드 베빙턴(David W. Bebbington, 1949- )은 “복음주의”(evangelicalsim)를 성경주의, 십자가 중심주의, 회심주의, 활동주의로 요약하였다. 복음주의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경직된 사고보다 훨씬 유연하다. 개혁주의(reformed faith)는 복음주의의 특징을 지니면서도 역사적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들을 중요시한다. 근본주의는 성경의 최종권위를 주장하며, 성경무오성을 믿으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근거한 영생을 추구하며, 복음전도와 선교를 강조하며, 영적으로 변화된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복음주의와 맥(脈)을 같이 한다.
개혁주의는 근본주의의 긍정적 특징에는 동의하나 부정적 특징과는 함께하지 않는다. 미국의 역사가이며 신학자인 조지 마스덴(George M. Marsden, 1939-)은 “근본주의란 화가 난 복음주의다.”라고 정의했다. 근본주의는 복음주의의 노선을 따르지만, 적을 자의적으로 만들고 비난하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기질이 있다는 것이다. 근본주의는 몇몇 특정 비본질적인 주제들(춤, 도박과 극장 구경, 주초(酒草), 피임(避姙), 공산주의, 천주교 등 이슈들)에 대해 지나치게 전투적이며, 일반 은총교리가 빈약하며, 종말론에 있어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강력하게 지지하며, 부흥주의나 감정주의적 경향이 있고, 신학적 자유주의를 배격하며, 지성주의를 경계하는 부정적인 기질이 있다.
이근삼은 신앙고백적으로는 벨기에 신앙고백(156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1563), 도르트 신조(1619),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1647) 등 역사적 개혁교회의 신조를 귀중하게 여기고 계승하면서도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불트만의 비신화론화 및 실존론적 신학, 19세기 자유주의 신학과 미국의 과정신학 등에 대해서는 지성적 대결을 하면서 성경적 정통신앙을 지킨다. 그리고 이 역사적 개혁신앙이 가진 역사적 문화적 사명을 화란의 카이퍼 문화신학을 계승하면서 감당하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근삼의 문화신학은 일반은총 교리가 빈약한 근본주의 신학과는 다른 폭넓은 역사적 개혁신학과 대화의 장에서 교감하고 있다.
VI. 카이퍼주의로서의 이근삼 개혁주의 문화신학의 특징
이근삼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일반은총(common grace) 사상을 수용한다: “카이퍼는 인간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보존되고, 본래의 과정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때문이라 하였다. 이것이 카이퍼가 말하는 일반은총이다.” 일반은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은총을 예비한다: “일반은총은 죄의 과격한 역사를 제재(制裁)하고 악을 통제하고 창조세계가 진행되게 하고, 시민 생활이 가능하게 한다. 이 일반은총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위한 준비가 되어 왔다.”
1. 은총의 교리를 칼빈주의 5대교리의 핵심 원리로 본다.
이근삼은 칼빈주의 5대(TULIP)교리 가운데 4번째 교리 “불가항력적 은혜” 교리를 칼빈주의 기본원리, 즉 핵심교리로 본다. “5대 교리에서 중심되는 특징 원리를 하나 택한다고 할 때 그것은 예정, 선택교리보다는 불가항력적 은혜일 것이다. 개혁주의는 특히 은혜의 신학이다. … 유효한 은혜는 성령의 창조적 효력으로 새사람 되게 하는 것이다.”
이근삼은 그 이유를 다음같이 제시한다: “예정 교리는 알미니안주의나 칼빈주의에서 다 같이 말하는 것으로 단지 예정의 이유 개념에 차이가 있을 뿐이며, 개혁주의가 다른 체계에 반대되는 특징은 ‘유효한 은혜(effective grace)’ 교리에 있다.” 여기서 이근삼은 예정교리를 개혁주의의 핵심으로 보지 않고 “유효한 은혜”의 교리로 보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예정교리가 개혁교회 신자들로 하여금 숙명주의에 빠지게 하여 어떤 자는 게으르게 하고 어떤 자는 절망에 빠지게 하였다. 이에 대하여 유효한 은혜의 교리는 성도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도록 하나님이 은혜로 효력 있게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게으르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2. 문화와 종교의 밀접한 관계: 인간 삶의 외면성과 내면성
이근삼은 문화와 종교와의 관계를 인간 삶의 외면성과 내면성의 관계로 표현한다:
“문화가 결코 종교와 분리되는 것이 아니고, 문화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의 외적 표현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활동면”이다. 문화는 종교의 내면성이 드러나는 외면적 형식이다. 하나님 사랑이란 내면에만 머물지 않고 이웃 사랑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신앙의 외면적 표현을 통하여 신자는 복음주의적 협착성에 머물지 않고 전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우리는 전인격적으로 생활 전 영역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여기서 이근삼은 개혁신앙이란 자기 내면과 영혼 구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교회나 교리 고백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몸과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삶의 모든 영역(가정, 직장, 국가, 자연, 우주)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3. 카이퍼의 신칼빈주의 문화관 수용: 카이퍼주의자 이근삼
이근삼은 “새천년의 신학적 전망” 글에서 현대의 신정통신학, 양식비평, 비신화론화, 구속사 세속신학, 실존주의, 해방신학, 여성신학 등의 도전에 대하여 개혁신학을 변호한다. 그리고 카이퍼가 1899년 프린스턴신학교 스톤강의(Princeton Stone Lecture)에서 제시한 “칼빈주의”(calvinism)를 수용하면서 칼빈주의야말로 참 종교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근삼은 참 종교의 네 가지 시금석을 제시하고 있다. 네 가지 시금석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 하나님과 교통하는 예배, 인생 전체를 하나님 면전에서 살며, 죄에서 구원받음이다. 그는 칼빈주의야말로 참 종교의 네 가지 시금석을 갖추고 있는 사상체계라고 말하고 있다.
개혁신학의 새천년의 새로운 전망이란 절대적 주권 사상의 확립, 성경중심의 신학, 성령을 통한 거듭한 신학, 생의 변화가 있는 신학이라고 제시한다. 이근삼은 여기서 카이퍼의 신칼빈주의 사상을 새천년을 향한 칼빈주의의 방향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카이퍼의 신칼빈주의의 핵심 사상은 역사적 칼빈주의를 개인과 교회의 영역에서 사회와 역사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확장된 칼빈주의 신학이 바로 신칼빈주의체계요 신칼빈주의 문화신학이다.
이근삼은 카이퍼의 신칼빈주의 사상을 수용하여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밖의 이 세상을 향한 문화적 사명을 강조한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들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교회 안’만 보고 생각해 왔고, ‘교회 밖’에는 전혀 관심 없는 폐쇄적 태도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세상도 인간도 하나님의 창조물이고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 있는 것이다. 교회는 이 세상에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의 계획을 우리는 알지 못하므로 ‘땅끝까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가까이서부터 땅 끝까지 그 누구에게나 접촉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알아야 하고 이 세상에서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면서 그들과 이 세상에서 삶을 올바르게 꾸려가야 하고, 가르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이근삼은 개혁주의 신학자로서 카이퍼의 신칼빈주의 사상을 오늘날 개혁교회가 실천해나가야 할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근삼은 칼빈주의를 개인 구원에만 치우친 복음주의적 협착성,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각 개인과 가정이 속한 이 세상 속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 곧 우리의 불신 이웃에게 복음 전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해야 할 신앙사상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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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영한 (기독교학술원장 / 숭실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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