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개혁 정신의 반역 III : 대형 교회·교단 불패의 적폐
지난 7월 19일 대한예수교 합동 측 주관으로 서울 승동교회(담임 박상훈 목사)에서 ‘예장 합동-통합 2차 공동 심포지엄’이 열렸다. 1차는 지난달 15일 통합 측 주관으로 연동교회(담임 이성희 목사)에서 열린 바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한국 교회의 현실과 나아갈 길’이 주제였다. 통합 측 총회장 이성희 목사는 개회예배를 통해 “종교개혁 기념의 해를 맞아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상실한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 장로교 교단에서 당연히 주장하고 지켜야 할 고유한 이념이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과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하는 것은 두 가지 내용이 아니다. 성경 권위가 회복이 될 때 교회의 거룩성도 회복된다. 반대로 말하면 성경 권위가 회복 되지 않으면 교회의 거룩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장로교를 대표하는 두 교단인 예장 합동(2009년 통계, 134노회, 2백9십여 만 명)과 예장 통합(2011년 통계, 64노회, 2백8십5만 명)은 정말로 성경 진리로 돌아가 성경 권위 회복을 교단 존립의 사명으로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장로교의 얼굴인 두 교단이 성경 진리로 돌아가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하는 데 앞장서려는 의지가 있을까?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이 두 교단에게 특별한 인연이 있다. 왜냐하면 두 교단이 갈라진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문제였으나 그 이후 두 총회의 역사를 보면 각자 스스로 장로교 개혁파 전통을 지킨다고 하면서 ‘성경 권위’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연구와 입장을 선명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했다는 기념행사를 하긴 하지만, 성경 권위로 한국 장로교가 하나되기 불가능하다는 것은 스스로도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두 총회 소속의 각 신학교의 노선을 보더라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본문비평의 문서설은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신학자들과 목사들의 성경해석의 주관성과 다양성은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지적하자면 누가 어떻게 성경을 풀든 상관없이 교인 수만 늘고 교회만 커지면 성경이야 어떻게 사용하든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다.
성경 권위 회복의 대안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것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대신해 목사가 쥐고 있는 교권은 너무나 막강하다. 강단권과 재정권 그리고 인사권에 이르기까지 두 장로교의 헌법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목사의 손에 쥐어주고 있다. 세속의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목사의 자산으로 만들고 있는 교회의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오직 말씀만 바로 세울 수 있는 방법을 정확하게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과연 현재 장로교 대형교회와 교단이 그 길을 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예수께서 영생을 묻는 부자 청년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마 19:21)” 한국 대형교회와 대형교단은 ‘소유’가 너무 많다. 오직 성경진리 전수만을 위해 모든 것을 처분하거나 기득권을 내려놓기에는 아까운 것들이 너무 많다. 아마 통합측 총회장의 설교에서 말한 소망처럼 ‘성경으로 돌아가는 길’(www.tbtlm.kr)을 알려준다고 해도 아마 고민하고 떠나는 부자 청년의 경우처럼 될지도 모른다.
성경 권위 회복운동이 제자리를 찾는다는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최고통치자가 되는 것을 말하며,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하나님 백성인 모든 성도가 성경 권위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신앙의 자유가 억압당하지 않게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려면 목사들 스스로 분명히 알고 있는 특권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를 치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볼 때 목사들의 기득권 포기와 오직 성경만 가르치는 본래 사명으로 회복하는 환골탈태는 실현불가능한 이상(理想)으로만 깜박거릴 뿐이다.
노회장이나 총회장이 되는 요건이 ‘성경 권위’를 지키며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오직 진리의 말씀만 바로 세우는 사명이 충일한 자가 아니라, 자금 동원력이나 정치적 능력을 소유한 자가 대표직을 자치하는 것이 현실이다. 진리의 전당이어야 할 신학교도 성경 진리에 충실한 학자가 책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교단의 정치적 논리에 따라 선출되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부자 청년이 가진 것처럼 교단은 이권(利權)과 관련된 ‘소유(所有)’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 교단과 소속 신학교들이 진리탐구와 전수에서 멀어진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총회장 이성희 목사는 설교에서 이렇게 말한다. “선교사보다 성경이 먼저 들어온 한국 교회는 성경적 교회다.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열심히 가르치는 한국 교회는 세계기독교사에 유례가 없는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이제 한국 교회가 다시 성경 본질로 돌아가 성경적 개혁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전부 온당한 말이며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두 거대한 장로교 교단이 과연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 본질로 돌아오는 개혁을 할 수 있을까? 이들은 심포지엄 후 ‘예장 합동-통합 공동기도문’을 낭독하며 마쳤다. 그런데 어디에도 성경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 죄인이 자신들이라는 회개는 없다. 성경만 사랑하기에는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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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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