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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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7-05 09:2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악(惡)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섭리


18 발람이 노래를 지어 가로되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지어다 십볼의 아들이여 나를 자세히 들으라 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20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 25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 26 발람이 발락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더이까(민 23:18-20, 25-26)

앞의 본문은 이방 선지자 발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하심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명하는 모압 왕 발락의 요청을 거부하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십볼의 아들 모압 왕 발락은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이 심히 두려웠다. 이에 이방인 선지자 곧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신 23:4)에게 많은 뇌물을 주고 매수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간청한다. 하지만 이방 선지자 발람은 자기 마음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방 선지자의 모든 행동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락 왕은 세 번에 걸쳐 저주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발람 선지자는 거듭 여호와가 축복한 이스라엘 백성을 결코 저주할 수 없다는 말을 발락에게 반복한다.
택한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조차도 모르는 사이에 (물론 나중에 모두 드러나 알게 되지만)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악한 세력들의 연대를 오히려 택한 백성에게 약속한 복을 재차 확인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들이 아무리 연합하여 그 세력을 확장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분명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통치 섭리하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는 인간의 천박한 상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이해 방식을 뛰어넘어) 여호와 하나님은 악의 연대 세력을 적극 (인간 판단력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사용해 이스라엘 자손과 맺은 언약(자손 번창, 가나안 땅 정복, 통치 국가 건립)을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성취하신다.

앞의 본문에 더 집중하면서 악의 세력들이 자기 마음대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자유란 결코 없다는 사실을 더 확인해 보자. 여호와의 절대주권적 통치를 받고 있는 이방 선지자 발람은 이렇게 증언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피조물의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분이 결코 아니며 그러므로 자신이 언약하고 성취하는 일에 대해 결코 후회가 없는 신이다. 그리고 이렇게 강한 수사학을 통해 단호한 결론을 내린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택한 백성에 대한 언약 곧 여호와 축복은 자기 백성의 허물이나 범죄와 상관없이 보호받는다는 말도 한다(20). 이는 언약 자손이 받은 복의 조건을 그 자손 내면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으며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방 선지자 발람의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23)”라는 말은 악의 세력이 아무리 철저하게 공모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자기 마음대로 언약 자손을 해롭게 하거나 불이익을 당하게 하거나 멸망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여호와 하나님 존재 계시 측면에서 악의 문제를 정리해 본다면, 인류 역사의 악행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그에 대한 두려운 경외심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 없이는 결코 깨달을 수 없다! 또한 악한 의도 중 매우 사악한 의도가 있다! 악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섭리를 자신의 악행에 악용하겠다는 발상과 처사다. 이는 그 자체 저주이며 심판이다! 악행의 규모가 전 지구적 규모로 가공할 만큼 엄습한다고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절대주권적 통치를 배제하고는 대처할 수 없다. 인간의 도덕적 감정으로 접근할 수 없는 이러한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있어야 그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결코 저주할 수 없는 백성이라는 발람의 말에 모압 왕 발락은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25)”고 한다. 저주해달라고 하면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하는데 그렇다고 축복하라고 할 수도 없는 딜레마 상황이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택한 백성 이스라엘은 약속으로 받은 복(자손 번창, 땅 정복, 왕국 건립)을 받게 되어 있다. 악의 연대 세력이 택한 백성에 대해 어떠한 극악한 패역무도를 일삼는다고 하더라고 하나님의 정하신 ‘선(善)하신 뜻’은 소멸될 수도 파기할 수도 없다. 그 이유를 발람의 말로 대신하면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더이까(26)” 그리고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발람과 발락이 연대했던 악행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관하셨던 절대주권적 역사 섭리임을 이스라엘 차세대들에게 재차 확인시켜 준다.
4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케 하려 하였으나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6 너의 평생에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지니라(신 23:4-6) 


악행의 범람 문제와 하나님의 존재 문제는 신학뿐 아니라 철학과 종교의 가장 중요한 근본 문제다. 이 문제를 해명할 수 있는 인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에 나타난 신적 능력을 하늘에 속한 지혜와 총명이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 섭리를 악용해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심판을 자초하는 변명이며 스스로 심판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악행에 대해 지금 당장 모두 처리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인류의 동일한 바람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악행/선행’은 그 기준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이러한 틀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섭리를 결코 담을 수 없다.) 하지만 악행의 만연함에 대해 인간 중심적인 철학적 이성과 도덕적 판단력으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악의 연대 세력이 택한 백성과 주의 몸 된 교회에 대해 저지르는 훼방과 악행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심판까지 멈추질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 성도들은 그 과정에서 억울함과 답답함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발람과 발락 같은 악의 세력들이 함께 악행을 일삼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선한 뜻은 결코 변할 수도 소멸할 수도 없다. 이것이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난 신 중심적 의미를 지닌 진리다. 이에 다시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으로 간절하게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10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 (……) 12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벧후 2:10, 12-16)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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