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예정론과 가정교회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3-5)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부르는 찬송은 하나님의 창세전 영원한 사역의 위대함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 형언할 수 없는 놀랍고 위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역은 이 땅에 사는 이 몸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베푸신 것이다. 그 신령한 복의 내용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자녀로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창세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의 비밀, 곧 출생의 신비를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땅에 살았고 살아있고 앞으로 살아갈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창세전 하나님의 베푸신 신령한 복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신앙생활의 실체가 된다.
지금 이곳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실존이 창세전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확정된 결과라는 이 소식은 그야말로 복음이며 감당할 수 없는 신비 중의 신비다. 그런데 이러한 신비가 출발하는 곳이 있다. 바로 ‘가정’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곳이라는 뜻에서는 ‘가정교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 신앙인들이 교회 생활의 원천인 가정교회를 너무도 소홀히 하고 있는 슬픈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다. 창세전 하나님이 하늘에서 베푸신 신령한 복과 그 복의 구체적 결과인 나 자신의 출생 비밀이 드러난 곳이 바로 가정교회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아름답고 경이로운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을 가정의 원천으로 삼은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또한 가정을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교회로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을 반드시 고백하는 곳이 된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복인 예정의 비밀을 얼마나 깨닫느냐가 가정교회를 성경 진리대로 이해하는 첩경이 된다. 이하에서는 창세전 하나님의 예정에 토대를 두는 가정교회와 그렇지 않은 가정교회가 얼마나 질적으로 다른지를 고민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이 바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의 성취 사건임을 주목하자. 왜냐하면 이 지상에 건립되는 가정교회의 신비한 토대가 바로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하신 구속 사건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을 배제하고 가정을 결코 교회로서 말할 수 없다.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엡 1:7-9)
필자가 ‘가정교회’라고 할 때 이는 우리 사회에서 통념적으로 말하는 혈통 중심의 ‘우리 가족’의 뜻을 뛰어넘는다. 물론 혈육을 포함하지만 혈육에 한정할 수 없는 뜻으로 가정교회라고 할 수 있다. 친부모 관계, 형제 관계, 친인척 관계 등 혈연이든 법적이든 ‘두세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마 18:20)이라는 뜻에서 가정교회이다. 온 가족이 삼사 대에 걸쳐 알고 믿는 것이 같은 교회부터, 전 가족이 무신론자인 환경에서 홀로 신앙을 지키는 지체들에 이르기까지 혹은 요양원에서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동역자 선배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오랜 시간 병실에서 아무도 함께해 줄 수 없는 병마(病魔)와 사투해야 하는 형제자매에 이르기까지 가정교회의 범주는 매우 넓다. 피와 살을 움직이는 이 몸으로 진리의 말씀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고백하는 곳은 그 모든 출발이 곧 가정교회가 된다. 이른바 가정이 없는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머물게 한 그 가정이 곧 교회가 되었다. 이러한 가정교회의 비밀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랍고 경이로운지 다음 말씀에 다시 주목해 보자.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 3:9-11. 강조는 필자에 의함)
가정교회는 하나님의 비밀이 드러난 곳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성도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뜻을 확인하며 살아간다. 어떤 조건에서 출생했든 어떤 환경에서 자랐든 세상에서 볼 때 불행하게 보이고 감추고 싶은 가정사라고 하더라도 창세전 비밀의 성취로서 교회는 정사와 권세들 즉 세상을 덮고 있는 악의 세력들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난 실체다. 이와 같이 창세전 하나님이 베푸신 신령한 복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녀로 선택받았다는 진리는 가정교회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토대 위에 가정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은 교회다. 그렇다면 가족 구성원 각자 자신이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비밀을 깨닫고 가정에서 교회로 모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질적으로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이러한 창세전 영원한 예정에 근거해 바울 사도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 그리고 자녀에 대한 부모의 훈계와 부모에 대한 자녀의 공경을 알려준다.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 5:21-23,25); 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 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1-4)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남편 혹은 아내 혹은 자녀의 신분으로 택정했다는 신비로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남편에 대한 아내 복종은 용납할 수 없으며 아내에 대한 남편의 희생도 가당하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자녀 공경과 자녀에 대한 아비의 훈계는 공허하거나 비현실적인 도덕으로 전락할 것이다. 창세전 하나님의 신령한 복으로 전 가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비밀의 영광스러움을 깨닫지 못하면 가정교회는 공허하고 무가치한 개념이 된다. 하지만 육신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이 몸이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근심한다고 하더라도 창세전 하나님의 자녀가 된 비밀을 깨닫는다면 바로 그곳에서 든든한 가정교회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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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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