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경의 절대 권위와 정경 확정의 섭리 과정 (Ⅵ)
<지난 호에 이어서>
7. 특별계시 기록 완성과 ‘말씀운동’의 심판 사례(1)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성령의 영감(靈感)을 받아 문자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의지를 지배하며, 심지어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 모두 관리하고 소멸과 생장도 주관하시면서 정신과 영혼의 세계 일체를 통제하고 보호하신다. 모세에 의해 기록되기 전부터 그 말씀의 권위는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많은 천사(사자)를 통해 전해졌으며 언약 자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주전 16-15세기경 모세를 통해 인간이 사용하는 문자로 기록되어 그리스도 예수의 승천 60여 년 후 주후 95년경 문자 기록으로 완성되었다. 인간이 사용하는 문자로 기록했지만 성령의 감동(感動)으로 기자(記者)들을 인격적으로 감화(感化)시켜 세속을 초월하는 절대진리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셨다. 이하에서는 기록한 성경이 단순한 문자 기록이 아닌 모든 피조 만물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이며 신적 권위를 가진 절대진리의 운동력임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말씀 자체의 신적 권위가 성경 권위를 깨닫지 못하도록 심판한 주요한 예를 먼저 알아보자. 주후 140년경 구약의 정경성을 부정하고 누가복음 1장과 2장을 임의로 배제하는가 하면 바울의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디도서·빌레몬) 일부를 임의로 제외하고 그 외 바울 서신만 정경으로 채택했던 대표적 이단 마르시온(Marcion of Sinope, 85년경-160년경)이 여기에 해당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마르시온이 자기 기준으로 정경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태의 본질은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의 신적 권위가 마르시온과 그 일파들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도록 심판한 것이다. 마르시온은 구약을 히브리인들의 책으로 보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제한다. 그리고 하나님 ‘여호와’(YHWH)를 율법의 신이며 그리스 신화의 잡신들처럼 인간에게 보복하는 하급신(Demiurge)으로 규정한다. 반면 예수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의 아들이라 보았으며 누가복음만 유일한 복음서로 채택하되, 예수의 탄생 기록과 구약의 예언 성취 부분도 유대교 색채가 강하므로 본문을 빼거나 본문을 변경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 말씀의 역사적 심판이 성취된 것이다!
정경에 대한 임의적 선별 대신 성경 진리를 인간의 보편적 이성과 조화시키고자 했던 경우도 있다. 로마 제국을 상대로 기독교 신앙을 최초로 학문적 변증을 시도하고 박해받아 순교한 저스틴(Justin Martyr, 100년경-165년경)이 대표적 인물이다. ‘기독교 변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저스틴은 ‘로고스 신학(logos theology)’ 이론을 정립하여 후대 플라톤 사상에 영향을 받은 ‘알레고리적 성경 해석’으로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오리겐, 클레멘스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모두 성경과 철학의 억지 혼합을 야기하는 데 악영향을 미친다. 저스틴은 신약을 ‘구약 예언의 성취’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이해했지만, 모든 인간은 그 내면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로고스의 씨앗’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철학자도 그리스도와 ‘같은’ 본성(本性, ousia)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사도들의 저작인 신약 성경도 구약과 같은 신적 권위를 갖는다고 보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은 철학적으로 변증하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 안의 이성(理性)적 존재’인 예수는 인류의 보편적 이성과 결합하여 역사 안에 육신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즉 예수의 인성과 인간의 이성(理性)은 동일한 성질을 공유한다. 이러한 보편적 이성에 대한 확신을 통해 저스틴은 기독교를 ‘철학의 완성’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저스틴의 이러한 변증은 성경의 신적 권위를 확증하기보다 훼손시켜 버린다. 영원자존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초월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성은 철학적 보편 이성과 어떠한 접촉점도 없다. 성경 진리는 신적 권위에 의해 모든 내용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啓示, apokalypsis)’로만 가능하며, 그 본질은 철학적 이성에서 완전히 구별된 절대성과 초월성과 거룩성이다. 철학적 이성으로는 성경의 권위를 결코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며,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보혜사 성령만이 영적으로 죽은 이성(理性)을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나게 하며 그때에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비록 역사 안에 육신의 몸을 입고 인간처럼 이 땅에 오셨다 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 이해 방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가령 저스틴이 『제1변증서』 14장에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한다’고 할 때, 만약 이것이 철학적 이성에서 자유롭지 않은 명제라고 한다면, 절대 진리 하나님 말씀의 권위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러한 저스틴의 영향을 받은 클레멘트(Alexandrian Clement, 150년경–215년)는 ‘로고스 씨앗론’을 계승하여 헬라 철학자들도 로고스를 통해 부분적으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다양한 철학적·신학적 주제들을 종합한 신학적 에세이 모음집 『스트로마타(stromata)』에서 ‘플라톤은 모세의 그림자였고, 그 철학은 그리스도의 빛에 이르기 위한 준비였다’고 한다. 살았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어떻게 ‘철학과 헛된 속임수’(골 2:8)를 폭로하고 심판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뿐 아니라 2-3세기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 155년경–220)도 초기에는 정통 교회의 입장을 옹호했으나, 후기에는 『새 예언에 대한 옹호(De Ecstasi, De Resurectione Carnis 등)』에서 몬타누스주의를 옹호한다. 몬타누스는 정경 완성을 부정하고 자신도 직접 계시를 받았다는 왜곡된 성령론을 주장한 자다. 당시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이들에 대해 ‘광기’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2세기 말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세라피온(Serapion of Antioch, 190년경 활동)도 몬타누스주의자들이 받았다는 것은 예언의 영이 아니라 ‘미혹의 영’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서방 최초의 조직신학자이며 교회 초기 전통의 형성자이며 초대 교회의 통합과 갈등의 상징적 인물인 히폴리투스(Hippolytus of Rome, 170년경–235년)도 몬타누스주의를 이단으로 규정한다. 그들의 예언은 성경과 교회 질서에서 벗어났으며, 극단적 금욕주의와 율법적 엄격주의는 성경의 가르침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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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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