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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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01 21:2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국가와 교회의 공적(公的) 재산,눈먼 공(空)돈인가?


국가의 대다수 공적 기관들은 국민이 낸 세금과 직결되어 있다. 세금을 모으는 기관이기도 하고 사용을 승인하는 기관이며 동시에 그 세금으로 먹고살기도 하는, 말 그대로 국민의 공복(公僕)이기도 하다. 세금 사용은 매우 귀하고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가치 평가를 듬뿍 담아 세금을 ‘혈세(血稅)’라고 부른다. 과거 부패한 왕조나 나라의 통치자와 관리들은 백성이나 국민의 그야말로 ‘고혈(膏血)’을 짜내는 일도 빈번했다. 고대 사회나 현대 국가에서 국가를 향한 대정부 투쟁에는 항상 국민 혈세의 낭비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한 예로 이씨조선이 망할 무렵 조선 팔도의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으며 그야말로 패망을 재촉하는 많은 징후들이 널려 있었다. 소위 양반이라는 작자들이 매관매직을 통해 왕조의 고위 관리가 된 이유는 분명했다. 권세를 이용해 부정부패를 일삼고 백성의 피와 땀을 짜내어 사리사욕과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저열하고 저급한 종자(種子)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작금의 대한민국 공적 재산 운영을 보고 있노라면 2021년 예산 555조 지출이 얼마나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 의구심을 더한다. 별로 하는 일 없는 국세 낭비의 일번지처럼 보이는 국회의원들의 입법부가 그러하고,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죄와 유죄를 국민 정서와 눈높이에 맞지 않게 재판하며 고위 공직자의 모든 혜택을 누리는 사법부의 전반적 이미지도 그러한 것으로 보이고, 고위 관료부터 행정부 말단 직원 그리고 그 주변에 이권으로 얽히고설키는 자들까지 행정부 곳곳의 혈세 운영 상황은 생각할수록 더한 의구심만 자아낸다. 그리고 상당한 중앙정부의 지원금과 지역 주민의 혈세를 징수해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은 신경만 써서 보면 정말로 더 눈먼 공돈으로 보이기가 일쑤인 듯하다. 그것을 감시해야 할 국가적 차원의 여러 감시 기관들은 공평하지 못하고 선택적이며 선별적인 감시만 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좋아지기를 바라기는커녕 더 큰 부패로 망하지만 않았으면 다행이라 여기고 싶다.
그런데 이러한 공적 재산의 운용에 대한 의구심은 교인인 우리의 바깥이 아닌 바로 성도의 영적 삶을 이끌어 가는 교회 내에 쏟아져 내리는 문제라는 데 그 심각함이 있다. 헌금을 낸 당사자 곧 연보(捐補)의 주체는 교인이다. 하지만 헌금은 함께 하자고 하지만 지출은 몇몇 사람에 의해 결코 성도들이 함께 할 수 없게 하고 소수의 교회 권력을 거머쥔 자들에 의해 남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교인들에게 보여주는 듯한 합법적이라는 몇몇 절차인 제직 총회나 교회 총회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요식(要式)이며 최후 결정은 마지막 지출 결정의 길목에서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거짓 목사를 중심으로 모인 거짓 장로들로 낭비될 때가 많다. 여기에는 성도들도 연보 사용과 운영에 대한 관심이 적고 그냥 ‘하나님 앞’에 내고 목사의 축복을 받으면서 마치 무당에게 복채(卜債)를 맡기듯 냈으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무지도 한몫한다. 이러한 성도들의 무지도 참으로 답답하지만, 더 속상한 것은 그러한 성도들의 무지를 철저하게 이용하여 속이고 속이며 교회 연보를 자신의 사리사욕으로 쓰려는 자들의 뻔뻔함을 지켜보는 것이다. 현재 교회법은 이러한 불법을 일삼는 자들을 경계하거나 처벌하기보다 오히려 보호해주는 악법의 성격이 매우 짙다. 성도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른다. 성도들은 무조건 헌금할 뿐 운영에 충분히 관여할 수 없는 정관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러한 정관을 고치려고 해도 이미 근본 초안들은 담임 목사를 중심으로 한 당회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아무리 성도들이 그것을 온당하게 요구해도 별 소용이 없을 때가 허다하다.
교회에는 헌금이라고 하는 연보 자산이 늘 존재한다. 현행 교회법은 교회 법적으로 누군가가 소수에 의해 최후에 재정 사용을 결정하게 되어있다. 안수집사를 중심으로 하는 재정위원회가 있다고 하지만 최종 결정은 당회(재단법인일 경우 소수 재단이사)의 승인과 결재가 최종적인 것을 결정한다. 성도를 위해 좋게 운영되는 곳도 있지만, 재산 규모가 수십억 내지 수백억을 넘어서면 항상 불안하며 항상 부정과 불법을 야기하기에 십상이다. 교회 재정과 관련된 이러한 제도는 성도들 중심의 공적 재산 운영 방식이 결코 아니다. 동산이든 부동산이든 헌금의 주체 즉 연보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모든 성도가 자신에게 주신 모든 것을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사용하는 것이 연보 사용의 원리다. 헌금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한다’는 말에 더 이상 속지 말았으면 한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 경로를 보면 당회나 종교재단을 중심으로 한 소수에 의해 그릇 유용(流用)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회 분쟁의 모든 원인은 반드시 부동산과 돈 문제로 직접 관련된다. 교회 성도들이 양분되어 고소·고발하며 세상 법정에 가는 것도 대부분 돈 문제다. 즉 성도들이 대부분 헌납했던 공적 자산을 소수 몇몇 탐욕에 눈먼 자들이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은 이제 일상화하고 있다. 노회나 교회의 정관(定款) 규칙은 물론이고 성경 말씀까지 끌어다 쓰면서 성도들의 공공 자산을 더 많이 사용하려고 온갖 술수를 부리는 형국이 통탄스러운 상황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다시 한번 명심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국가든 교회든 이 모든 공적 자산의 주관자는 여호와 하나님이다. 그 공적 자산의 운영 방식도 하나님의 주권성이 결정한다. 이런 점에서 눈먼 공(空)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불꽃 같은 눈으로 관리하는데 몰래 훔칠 수 있는 눈먼 공(空)돈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국민 혈세와 성도 연보의 공적 자산은 여호와 하나님의 철저한 관리하에 그때마다 용도대로 집행되고 있을 뿐이다. 누구에게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공정한 통치가 확증되는 수단으로 또 다른 누구에게는 부정축재와 사리사욕의 늪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 강림 전 구약의 유다 백성의 심판도 결국 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의 십일조와 헌물의 도적질 행위(말 3:8)의 만연으로 드러났으며, 신약 교회 체제에서도 모든 악의 뿌리 즉 ‘일만 악의 뿌리가 돈 사랑’(딤후 6:10)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교회와 국가의 공적 자산이 눈먼 공(空)돈이 되는 현상이 만연한다는 사실은 ‘신의 죽음’도 ‘신의 부재(不在)’도 아닌 신 존재의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될 것이다.

5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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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 탐하는 ‘마피아’ 세력,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에서?
사죄(謝罪)와 용서, 멀고도 험한 길이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