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23-05-03 15:2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학폭 진원지, 배타적 사악성을 조장하는 사회와 이기적 가족중심주의


고위공직자 자녀의 학교 폭력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 말에는 학폭에 대한 학교 현장의 처리와 조치가 권력을 가진 자의 자녀와 그렇지 못한 자녀에게 불공정하거나 불공평하게 진행된다는 말도 담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결국 바뀌어 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가해자가 전학을 하거나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반대로 피해자가 학교를 그만두거나 학교생활을 더 이어갈 수 없는 처지에 이른다. 학폭 처리 이후에도 폭력의 후유증으로 죽지 못해 견디고 있는 피해자 학생에게 다시 이차 가해가 시작되기도 한다. 별것 아닌 것 가지고 학교를 시끄럽게 했다는 낙인을 찍어 버린다. 가해자가 현장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는 폭력의 늪에서 헤어나기 쉽지 않다. 가해자는 떳떳하게 살면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피해자는 학교생활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청춘의 미력마저 소진당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기도 한다. 이러한 폭력의 저변에는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쫓아가서 끝장을 내겠다는 악의가 도사리고 있다. 살해 행위에 맞닿아 있는 무서운 범죄의 반복이 우리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학폭의 심각함이다.

얼마 전 고위공직자로 임명받은 자의 자녀 학폭에 대해 국회의 청문회까지 열렸다. 피해자는 분명히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해자는 사라진다. 피해자 몸에 남은 상흔은 너무도 선명한데 법 논리 속으로 점점 들어가면 가해자의 정체는 점점 사라진다. 여기에다 최고 권력에 가까이 있는 고위공직자이고 법을 잘 알고 법을 다루는 전문가들(검사, 판사)이 가해자 측에 속해 있다면, 피해자 측에서는 자녀의 피해 상황을 괜히 꺼냈다 하는 무력감과 자괴감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청문회장에서 드러난 소위 가해의 ‘객관적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법조인들의 변명은 자기 자식이 당해 봐야 안다는 말이 금방 튀어나올 지경이다. 몇 번의 법리 논쟁이 오가면 자살을 시도한 피해자 학생이 오히려 문제아가 되기도 한다.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검사 출신 부모의 자녀인 가해 학생이 한 말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면서 왜 문제가 된 학폭이 공정하게 처리되지 않았는지 그 진원지를 짐작게 했다. ‘검사라는 직업은 다 뇌물을 받고 하는 직업이다, 내 아빠는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는 사람이 많으면 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 성급한 일반화는 금물이지만, 가해 학생의 이런 말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학교 폭력에 대한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略取)·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 이러한 매우 다양한 폭력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학교 폭력의 피해 학생은 학교에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와 피해자 본인의 보호 요청을 할 수 있으며, 가해자, 그 감독의무자 및 학교 등을 상대로 손해(치료비 및 위자료 등)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피해 학생은 117신고, 고소 등을 통해 가해 학생에 대한 형사처벌을 요구할 수 있으며, 수사를 통해 범죄 혐의가 인정된 가해 학생은 형벌이나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법적 조치들이 한국 사회에서 아무런 효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언어폭력(사이버 폭력)을 비롯해 신체와 물리적 폭력 그리고 따돌림 등 타인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 내용을 보면 매우 상세하다. 험담, 놀림, 비하, 위협(문자 메시지 포함), 협박, 폭행, 기합, 수치심 유발, 물건 던지기, 꼬집기, 멱살 잡기, 넘어뜨리기, 머리카락 잡아당기기, 침 뱉기,  유인, 감금, 상해, 강제적 성행위, 성적 모멸감, 성적 수치심 유발, 바보 취급, 변박, 이간질 등. 문제는 이러한 가해 행위들이 선명함에도 불구하고 법적 공방의 영역으로 가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점점 사라진다는 데 있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사건을 입증하기 위해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은 악몽을 다시 떠올려 피해를 가중시키는 것처럼 학폭의 경우도 법적 영역 안으로 들어가면 같은 일이 벌어진다. 법을 잘 알고 최고 권력에도 가까이 있고 법적 인맥이 단단한 사람이 그냥 앉아서 처벌을 받을 리가 만무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권력과 부를 가진 자가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고 진정한 사과를 하기란 매우 어려운 풍조가 지배한다.

권력을 가진 자의 영향력과 지위가 남을 괴롭히는 데 악용되는 경우를 보면서 이러한 문제의 진원지를 사회 전반의 왜곡된 권력 구조나 계급적인 상명하복의 가부장적 문화에서 찾는다. 특히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가족중심주의가 집단적으로 다른 가족을 상대로 벌이는 참극의 원인이라고 한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인종과 성별과 출신에 대한 불평등과 차별을 극복할 수 없다. 이러한 억압과 폭력의 구조가 그대로 학교 폭력에 반영된다. 또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반복적 폭력과 이에 대한 방치가 학폭의 진원지라고 진단한다. 자녀들과 가족 전체까지 피멍 들게 하는 학폭은 그 진원지 중 하나가 권력을 악용한 배타적이며 이기적인 가족중심주의이며 이에 대한 극복은 가능할지 답답한 늪에 빠진다. 가해자에 대한 비난과 피해자에 대한 동정 이전에 내가 처한 바로 지금 이 자리가 학폭의 진원지가 아닌지 살펴야 할 것이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부정과 불법이 정상과 합법으로 되는 우리 사회를 보며
자기 가족의 큰 범죄를 참회하는 한 교우(校友)의 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