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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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9-13 14:1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가족과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다면,그 정의는 올바르지 않은가


“제 가족한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내일 죽어도 좋다. 그런데 ‘집단항명의 수괴’라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내 군 생활,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부분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현재 육군사관학교 재학 중인 아들한테도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라. 아버지는 전혀 부끄럽게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저는 모든 걸 걸고라도 ‘집단 항명의 수괴’라는 혐의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충성스러운 해병대, 정직한 해병대, 이것이 해병대 정신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의 여러 가지 어려움의 시작은 제가 해병대 정신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군사경찰 병과장입니다. 제 방에는 ‘공명정대’라는 네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항상 정정당당하고 공명정대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게 제 처음이자 끝까지 지키는 신념입니다. 그 신념대로 했습니다.”

결기가 서린 고백처럼 보이는 이 진술은 대한민국 해병대 수사단장 겸 군사경찰 병과장(해병 헌병감) 박정훈 대령(이하 박 대령)의 말이다. 집단항명수괴죄로 입건되었을 때 박 대령은 가족 앞에서 그리고 육군사관학교 생도인 아들 앞에서 수사단장으로서 수행한 군사경찰의 소임이 결코 부끄럽지 않으며 집단항명수괴죄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변했다. 자신의 조국을 향한 충성과 정직 그리고 정정당당함과 공명정대의 정신이 어찌 해병대만의 것이겠는가?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하는 대한민국 모든 군인에게 적용될 보편적인 정신적 가치다.

국민을 향한 박 대령의 진술에서 목숨을 건 그의 항변은 그 진실의 최후 재판관으로 가족 특히 자신과 같이 대한민국 장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아들을 소환했다는 사실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큰 감동을 받는다. 억울한 죄명을 쓰고 법적 절차에 따라 진실과 상관없이 구속되어 재판받고 실형을 선고받는다 하더라도 가족과 아들 앞에서는 어떠한 부끄러움도 없다는 그의 말은 법정의 최후 진술처럼 들린다. 대한민국 사법 체계에서 진행되는 재판 과정을 볼 때 사실과 진실을 왜곡하는 수사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한 경우를 생각하면, 법을 전공하고 대한민국 재판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박 대령으로서는 가족과 아들을 마지막 재판관으로 불러낸 것은 그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보직 해임이나 기소 나아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과정이 그야말로 공명정대하다면 정말 좋으련만, 사법 후진국이라 비난받는 우리 사회의 불공정한 사법 현실을 감안하면, 거대한 상위 권력 집단에 맞선다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담보하고, 믿을 만한 소중한 가족에게는 자신의 정직함을 최후로 호소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박 대령에 대한 군검찰의 구속영장 신청이 기각당했다고는 하지만 목숨을 잃은 해병대 일병의 부모의 한은 더욱 깊어만 간다. 짐작컨대 박대령은 자신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기보다, 가족과 아들 앞에서 자신의 임무가 결코 부끄럽지 않다고 진술한 것이 진정으로 사실이라면, 그는 제일 먼저 목숨을 잃은 해병대 병사의 부모를 떠올렸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령이 최후 재판관으로 자신의 가족을 소환한 그 진정성은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젊은 청춘을 나라에 바친 병사와 그 병사를 아들로 둔 부모와 그 가족들의 억울함과 한을 사실대로 풀 수 있느냐의 문제이며, 박 대령은 무엇보다 그 고민과 책임감을 통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장관의 의혹투성이 발언, 대통령실 안보실 개입 의혹, 그리고 대통령의 ‘해병 1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겠느냐’의 언론 보도 등 박 대령이 채수근 일병 사망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어깨에 짊어진 짐은 40킬로 완전군장 몇 개를 짊어진 것보다 무거울 것이다. 일병의 사망에 대한 진실 규명을 위해 자기 상관들의 혐의까지 적시(摘示)하고 그들의 부당한 지휘권을 지적해야 하는 박 대령의 책무 부담 또한 결코 쉽게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왜곡하거나 가린다면 수많은 장병들의 사기 저하와 군 수뇌에 대한 불신은 증폭할 것이며 이는 결국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가 될 것이다. 진실 규명이 곧 국방력이 된다는 점을 박 대령이 모를 리가 없을 터, 수사단장으로서 그 고뇌와 책임감은 최후의 보루로 자신의 가족은 물론 해병대 장병의 가족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군인의 길을 맹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직한 군인들은 물론 아직도 본분에 충실한 많은 공무원들과 각계각층의 시민들은 과거나 현재나 부당한 권력에 무릎 꿇지 않고 자기 책무를 다한다. 모함과 회유, 모멸과 수치, 야비한 수사와 추잡한 조작 앞에서 항거하며 자기 책무에 충실한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들의 깊은 고민은 자신의 진실을 호소하면서 견디어 낼 수 있는 버팀목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에 집중된다. 극단적 선택을 마지막 보루로 삼는 많은 사례에서 보듯이 인간이 자기 억울함을 스스로 버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 가족과 아들을 불러 세우고 그 앞에서 정직한 군인의 삶이었음을 호소하는 것은 버틴다기보다 생의 마지막 배수진을 친 심정으로 보인다. 즉 견디어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두려움이 함께 엄습한다고 본다.

일상을 살아야 하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이러한 일들은 얼마든지 몰려온다. 교인으로서는 물론이고 시민으로서 신앙인의 자기 책무도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그 진실성을 확보할 수 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진실하고 진정성이 있느냐의 판가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며 은혜에 속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견디게 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게 생활하고 하나님이 주신 여건에 얼마나 의롭게 임하느냐의 문제는 우리 내면에서 혹은 사회적 기준으로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자기중심적 선악 판단을 내리는 피조물의 본성으로는 세상 어떤 것에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박 대령이 자기 진정성의 최후 보루를 가족과 아들 앞에서 찾았다는 사실은, 최후 보루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근본 한계를 처절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성도들의 억울한 고난을 의탁할 유일한 존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임을 온몸으로 절감한다. 복음 전파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가 붙잡아 주시길 기도한다.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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