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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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1-14 09:5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법과 원칙’의 실종, 권력자들의 거짓말 일상화,‘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다


“자유는 보편적 가치입니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유 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유마저 위협받게 됩니다. 자유는 결코 승자독식이 아닙니다. (……)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합니다.”[강조는 필자에 의함]
앞의 말은 2022년 5월 10일 화요일 윤석열 씨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연설한 내용 중 일부다. 앞의 연설문을 지배하는 단어는 ‘자유’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가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일임을 그의 취임 고백에서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금 이 시민의 자유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 시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자유에 가장 큰 위협을 가하는 인물이 다름 아닌 자신의 취임사에서 자유 수호가 자신의 책무라고 선언했던 윤 대통령이다. 취임 이후 2년 7개월 동안,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5분 전까지 그가 말한 자유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자유이었는지 의심하고 또 의심하게 만들었다. 앞의 그날 밤 대통령 자신이 쿠데타의 총지휘권자가 되어 벌인 친위 쿠데타를 보면 그가 취임사에 말한 ‘자유’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정답이 나온다. 결국 자신의 자신을 위한 자신에 의한 자유였다. 자유와 방종이 전도(顚倒)되고 권력자의 어리석음과 야욕이 자유의 가치를 짓밟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통상의 자유는 타인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수반하는 것이며 도덕적·법적 규범 내에서 가능한 행동이라는 엄격한 기준이 있다. 이 결과 자유는 개인의 행복과 동시에 사회적 조화를 가능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자신의 권리 행사만큼 타인 권리도 그만큼 존중하는 균형을 지향한다. 반면 방종은 자기 욕망만을 추구하며 자신의 책임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덕과 규범을 무시하고 결국 타인과 사회에 치명적 피해를 주게 된다. 최고 권력자가 국가의 가장 강력한 물리력과 권력 기구들을 총동원하여 그야말로 자기 멋대로 하는 방종을 ‘자유’라고 착각했다면, 그리고 그의 괴기(怪奇)스러운 행동이 올바르다고 여기는 국민들이 아직도 많다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국가 전체주의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 회자되는 ‘내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는 말은 현재의 수사학이 아니라, 우리 역사 전체를 항상 위협하는 뇌관의 위험을 펙트 체크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현재 내란 수괴로 지목당한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이렇게 말하면서 계엄을 선포한다. “민주당의 입법 독재는 (……)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입니다.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강조는 필자에 의함]
내란 피의자 윤 대통령은 야당인 민주당에 대해 입법 독재 정당이며 범죄자 집단 소굴이며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꾀하는 괴물이고 파렴치한 종복 반국가 세력이라고 규정하면서 쿠데타를 시도했다. 비록 현재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쿠데타라고 하더라도,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야당을 이렇게 규정하는 태도에는 권력자인 대통령이 국민 개개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과거 어떤 공무원이 국민을 ‘개돼지’에 비유한 적이 있다. 권력자의 눈에 보이는 대한민국 국민은 1980년 광주 시민들을 그렇게 한 것처럼 총질하고 몽둥이질해도 되는 대상으로 보는 듯했다. 야구 방망이, 종이 절단기, 망치, 눈가리개 등 살벌한 도구들을 사용하려고 했던 그 권력자들의 눈에 국민은 ‘개돼지보다 못한 것’들이다. 금번 쿠데타 과정에 어떤 여당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한 일 년 지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또 찍어줄 것이라며 국민 비하를 서슴지 않았다. 보수의 텃밭 지역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된다는 말로 지역 유권자들을 등신 취급하는 것은 일상화했다. 자유라는 국민의 보편적 가치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실현 가능하다는 생각은 비현실이며 항상 우리의 자유는 위기에 직면한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앞의 내용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 중 일부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과 헌법적 가치를 선언하고 있다. 특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한다’는 문구는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순간 무너질 수도 있는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를 대한민국 국민은 현재 온몸으로 배우고 있다. 눈 맞으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응원봉으로 법과 원칙을 외치는 이들에게 적어도 어떤 선입견으로 이데올로기의 틀을 씌우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한 기독교인으로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소중하게 여기는 한 사람으로서 그야말로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마 5:6)가 되어 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앞의 진리는,  당시 유대인의 처지를 고려하고 말씀했듯이, 이 땅에 일어나는 현실 역사를 배제하지 않는다. 물론 더 엄격한 것은 그 종교적 해답도 현실 역사에서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신앙인으로서는 더욱 답답하고 더 괴롭다.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이 조항의 실현 가능성은 역사의 주관자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 있다. 그래서 신앙인인 우리에게 그 헌법 조항의 실현은 더 절실하며 그래서 더 신중한 태도에 처하게 한다. 왜냐하면 내가 추구하는 의(義)가, 내란 혐의자가 시도하려고 했던 잔인무도한 계획처럼,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억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신앙인에게 ‘대한민국의 법과 원칙’은 마치 양날의 검과 같다. 아예 무시하면 성(聖)과 속(俗)을 나누는 이원론자의 오류에 빠지고, 지나치게 기대하고 의존하면 역사의 주관자인 하나님의 통치권을 망각하게 된다. 가령 헌법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의 공정성 명시 조항을 보면, 언제나 개돼지 취급당할 초라한 한 인간의 모습에 절망감과 자괴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세속의 유한하고 불안정한 가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여받은 신령한 가치를 고려하면 어리석은 판단에 속한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한 국민으로서 당하는 불의와 불평등, 불공정과 모멸감 ‘속에’ 그러한 자신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과 더불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는 귀한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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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위(親衛) 쿠데타’ 반대를 외치는 교회학교 후배들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