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삶의 설정은 하나님께 있기에
나는 교사를 꿈꿔보지 않았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내게 군인을 직업으로 택하기를 바랐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사를 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알게 되었다. ‘지리학자’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전 세계의 나라와 수도를 달달 외웠고 세계지도를 그려 보이면 친구들이 놀라곤 했다. 중학교 때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 여행을 했고 각 지역의 지형을 살피는 것이 좋았다. 고교 시절에는 휴일이면 버스터미널에 들러 더 먼 지역으로의 답사를 즐겼다. 거기까지였다. 고교를 친지의 도움이나 장학금으로 다녔기에 대학은 무상이 전제된 곳이어야 했다. 그래서 ‘교육대’였다. 관심 밖이었던 교사가 된 후 몇 년간은 다른 세계를 기웃거렸으니 좋은 교사는 아니었다. 그리고 20여 년이 흘렀고 인생의 결정권은 내 것이 아니었다.
야곱은 레아를 꿈꾸지 않았다.
사내다운 외모와 행동으로 이삭의 총애를 받았던 에서가 동생인 야곱에게 분노했던 까닭은 자신이 받아야 할 축복을 가로챘다고 생각해서였다. 야곱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삼촌인 라반에게 도피한 이후 고단한 삶을 살았던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사실, 오랫동안 조카가 아닌 종처럼 살았던 것은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얻기 위한 수고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라헬 대신 레아를 주었고 그녀로부터 난 자식을 이스라엘의 열조로 삼으셨다.
자신의 흥미와 특기를 따라 진로를 정하는 것은 오늘날 교육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창의적 체험활동’에서도 진로교육이 필수이며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등학교까지 진로와 관련하여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구체적으로 기입해야 한다. 진로교육을 하다보면 진로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이 과거와 다른 점이 발견된다. 우선 시야가 넓어졌다. 이는 어디서든 쉽게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시대성에 기인한다. 또한, 자신의 흥미와 관심을 따라 진로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부모가 바라는 자녀의 진로는 소위 ‘사’자로 끝나는 직업에 대한 열망이다. 사회적으로 변변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애정과 바람이 반영된 것이다. 이를 굳이 변별하자면 학생들의 진로목표는 내재적이고 부모의 경우 외재적이다. 내재적 목표가 학습 동기와 정서적 측면에서 효과적임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부모들의 외재적 관점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재적 목표에 비해 현저히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부모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학생들에게 학업 스트레스나 학교생활에서의 행복감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나 TIMSS(수학·과학성취도 국제비교) 성취도에서 톱클래스로 나타나고 있지만, 학교생활만족도는 참가국 중 최하위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도 이와 관련이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행복교육’의 세부과제로 제시되고 있는 진로교육 활성화는 이러한 연유로 제시되었다.
최근 진로교육연구는 진로발달이 특정 시기에 국한되어서는 안되며 전 생애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는 발달과업으로 강조되고 있다. 전 생애라 함은 한 가지 직업이 평생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점과 자녀의 선택권이 훨씬 넓어짐을 의미한다. 근래 직업의 유연화는 이러한 추세의 실마리다. 학생들도 성장함에 따라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 자신의 생각과 현실과의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미래에는 지금처럼 안정적인 직업이 흔치 않을 것이며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오늘날의 좋은 직업이 내일을 담보하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부모들이 가진 외재적 접근, 즉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미래에 무엇이 되어야 행복할지를 설득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 진로에 대한 관심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12세 정도부터(J. E. Nurmi), 자녀와 진로를 논하는 것도 늦지 않다. 인생을 먼저 살았기에(先生) 자녀가 하고 싶은 일을 격려하되 때로는 원하지 않는 일도 할 수도 있으며 그 뜻을 헤아리며 사는 지혜가 필요하고 그 지혜는 성경에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야곱은 7년을 더 수고하여 라헬을 얻었고, 나는 좋아하던 지리영역을 석사과정에서 전공한 것으로 호사를 누렸지만 그러한 호사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설정은 하나님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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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희 집사 (장안중앙교회) |
“쫌 그러지 않나?” |
본질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