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15-06-16 23:1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캄보디아를 다녀와서 (2)


캄보디아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앙코르와트’다. 앙코르는 ‘도시’라는 의미며 와트는 ‘사원’을 뜻하니 ‘사원 도시’쯤 되겠다. 앙코르와트를 중심으로 주변에는 많은 사원이 있다. 하루 코스의 관광으로는 부족할 만큼 거대하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과 비교해 가치의 우열을 평가할 수는 없으나 규모만큼은 압도한다. 이런 거대함과 ‘사원’이라는 종교적 색채는 많은 생각을 자아낸다. 

첫째, 거대함 속에 감춰진 민초들의 한(恨)이다. 후대들은 조상들의 강인함과 위대함을 칭송하고 오늘날의 든든한 밥줄을 안겨준 것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쳐 노역을 감당해야 했던 힘없는 백성들은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는 중국의 만리장성의 이면에 감춰진 핏빛 찬란함의 역설과 같으며 이스라엘의 이집트 노예생활과 유사하다. 기술이 발달한 현대의 각종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피할 수 없듯이 인력으로만 감당해야 했던 그 시절의 생명선이 온전했겠느냐 말이다. 사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정서조망능력(affective perspective tak-ing)’이 떨어진다. 이러한 실상은 많은 연구 결과에 의해 뒷받침되며 ‘땅콩 회항’이나 재벌 회장들이 지금도 몸소 증거하고 있다. 그러하니 당시의 권력자들은 백성들이 노역에 동원되고 그로 인해 삶이 피폐해져도 아무런 감응도 없었을 것이다.
 
둘째, 권력자의 허무함이다. 자신의 ‘이름’이라는 ‘주체’를 남기려는 시도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유적지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거나 조각하는 일은 차라리 애교다. 권력자는 조금 더 나아간다. 자신을 알지 못하고 세상의 이치를 알지 못하니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 나아가 외적인 건축물을 이용해 자신의 위용을 드러내고 만인을 무릎 꿇게 하려는 유치함이 발동되기도 한다. 소위 ‘거대건축 콤플렉스(edifice com-plex)’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의도 대비 효과가 치명적 매력을 발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청계천 복원이 청와대로 가는 지름길이었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아울러, 힘 있는 사람들이 토목공사와 대규모 건축에 집착하는 현상들을 보라. 문제는 건축이란 것이 내면이 공허한 사람들의 자의식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따라서 권력자들은 건축에 집착하다가 마침내 건축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 된다. 돌조각에 삶의 목적을 둔 인생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셋째, ‘폐허로서의 가치(ruin value)’다. ‘폐허로서의 가치(ruin value)’이론은 “새로운 건물은 수천 년이 지나도 압도적인 폐허로 남아 제 3 제국(Third Reich)의 위대함을 증언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라는 사고에서 나왔다. 이 말은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이 우리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목도하는 바이다. 앙코르 왕국은 한때 1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거대 제국이었지만 타이 왕국에 함락되고 수도가 지금의 프놈펜으로 옮겨지면서 밀림 속에 갇혀 잊힌 왕국이 되었다. 근대에 유적지가 발견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에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앙코르와트는 ‘폐허로서의’ 문화 및 경제적 가치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앙코르의 수많은 사원을 건설한 권력자들이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알 길은 없으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렇다면 당시의 사원들을 건축한 민초들의 피와 땀의 대가(代價)를 후손들이 보상받는 셈이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하나님이 이끌어 가는 역사의 장기적 플랜을 전제하면서 수천 년 전의 받지 못한 품삯을 지금의 후손들이 받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란했던 영화를 누리며 주변국으로부터 부러움과 시기를 받았던 앙코르 제국은 사람들이 떠나고 풀과 나무로 뒤덮인 적이 있었다. 이는 흥망성쇠의 주관자가 목이 뻣뻣한 인생들에게 식물의 씨앗으로도 그들의 자랑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희 집사 (장안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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