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목사님께
목사님! 안녕하세요. 교회 당회장으로 시무하실 때, 수찬정지를 당했던 영수님의 넷째 아들이에요. 놀라셨죠? 정말 놀라시리라고 생각했지요. 지금쯤은 잠이 드셨겠지만, 미안해요. 하지만 언젠가는 공개서한이라도 올려야 하지 않나! 하다가도 가슴에 묻고서 잠들고 싶었어요. 진정으로 사랑하는 교회 내부의 치부만 드러내는 처사가 아닐까 해서 그랬죠. 요즘 한국교회가 말이 아니거든요. 입을 다무는 것만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도둑이 침입했는데도 짖지 못하는 개의 형국이 될까 봐서죠. 마음이 언짢아도 제발 너그럽게 이해하세요.
40여 년 전, 교회 개척 초기 지방 도시에서 매주 열리는 정기적인 성경강좌를 인도하게 되었거든요. 한번은 큰 교회를 시무하시는 교단 선배 목사님이 점심을 사주셨어요. 식사하는 자리에서 목사님께 한국교회 상황에 대한 견해를 여쭈어보았지요. 살며시 눈을 감으시며 ‘이미 앞서 잠드신 선배 목사님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시는 순간 기절해서 다시 쓰러지실 거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깜짝 놀랐지요. 한국교회 부패의 심각성을 느끼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선배 목사님 외에도 많은 목사님이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답니다.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했고요. 훌륭한 선후배 목사님들이 즐비한데 공연히 교회부패에 대해 언급하면 미움만 받기 마련이죠. 자기만 똑똑하고 잘난 척한다는 비난을 받기가 싫은 거죠. 저도 한동안 침묵했던 이유거든요. 성경은 옳으면 ‘예’ 하고, 아니면 ‘아니라’ 하라고 했지만요.
떠밀려 적을 두게 된 자그마한 교단총회장을 역임한 적이 있어요. 교단 내부의 부패상을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요. 몇 년을 지나 섬기던 교회의 개혁도 단행하고 ‘교회개혁론’도 집필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요즘엔 한국교회가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팽배해지고 있답니다. 왜냐고요? 건덕에 대한 문제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고요. 교회에 대한 정치나 행정이 엉망이니까요. 교단총회마다 성경에 근거도 없는 교회헌법을 목사에게 유리하게 제정하거나 수정하는 것은 상식화됐고요. 성경도 뜯어고쳐야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총회가 제정한 헌법을 어기고 교회 재산을 사유화하는 것은 보통이고요. 경쟁이라도 하듯이 교회 세습은 일반화되고 있고요. 목사가 교회헌법에 저촉되면 헌법을 뜯어고쳐 합법화하면 그만이고요. 그 헌법으로 교회에 대한 삼권을 당회장 혼자 거머쥐고 순박한 성도들을 마음대로 지배하며 뒤흔드는 꼴사나운 일이 비일비재 하거든요. 정말 기상천외한 일들이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답니다.
한국교회의 현상을 접할 때마다 목사님 생각이 떠오르곤 해요. 한국교회 부패의 뿌리가 깊다는 생각에서죠. 저를 교회 밖으로 추방하려고 6개월도 아닌 4년이 넘도록 이른바 성찬에 참여치 못하도록 하신 목사님의 처사는 예나 오늘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좀 거북하시겠지만, 사실 그렇잖아요? 살아계실 때, 따져 묻고 싶었어요. 교회당에서 성경 공부를 하지 못하도록 저를 추방했으니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교인들을 선동해서 몰매를 유도하신 것은 좀 너무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때 장로님 댁 방에 둘러앉은 제직들이 제가 성경공부의 정당함을 피력하니까 호롱불을 끄고 주먹으로 때리려고 달려들더군요. 문을 박차고 튀어나오지 않았으면 큰 불상사가 일어났겠죠. 생각하면 예나 오늘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하기야 목사님도 과거부터 이어오는 선배들로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겠죠.
목사님! 당회원도 없는 교회에 부임하셔서 고생도 많으셨지요. 당회를 구성하시려고 공동회를 열어 장로선임투표를 하셨지요. 목사님은 심방을 하시면서 성도들에게 장로는 돈이 좀 있어야 한다고 귀띔을 했잖아요. 투표 결과는 목사님의 원대로 많은 전답을 경작하는 젊은 서리 집사가 피선되었지요. 그 집사는 오랫동안 교회 재정을 맡아 부자가 된 집사 가정의 사위였지요. 감사절에 들어온 벼 수십 가마로 대부업을 해서 부자가 되었거든요. 객지에서 처가 동네로 이사 와서 장로라는 높은 벼슬을 거머쥔 거예요. 교회설립 초기부터 수십 년을 봉사하며 살아오신 아버지는 낙선의 쓴맛을 보았잖아요. 장로는 교회의 질서를 따라 세우는 것이 상식이고 합리적이라면, 당연히 서리 집사보다 영수님이신 아버지께서 장로선임을 받았어야죠. 교회나 나라나 민주주의의 결함을 깊이 깨닫게 되었죠. 순박한 교인이나 백성을 감언이설로 설득시키면 장로도 되고, 고무신 한 켤레면 대통령의 당락이 결정되는 어두운 시대였으니까요. 목사님! 안 그래요? 자기 아버지를 두둔한다고 하시겠죠.
교회로부터 추방당한 후, 무지로 인해 순박하기만 한 교인이나 국민을 일깨워야 한다는 사명 의식이 더욱 뜨거워지기 마련이잖아요. 지금은 세속정치는 도리어 바르게 하려는 노력이라도 하고 있어요. 교회는 과거나 현재나 다름이 없이 개혁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목사님들이 대부분이죠. 더러 뜻있는 목사님이나 학자들이 교회개혁의 의지를 갖고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기는 하죠. 그 효과는 너무 미미할 뿐이지만…. 때로는 답답하고 분노가 치밀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인간에게는 교회를 개혁할 능력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하나님께 기도드릴 뿐이죠. 성경을 기준으로 해서 아니면 ‘아니라’ 하고, 옳으면 ‘예’ 하라 하셨으니 지상을 통한 공개서한이라도 동역자들과 성도들에게 보내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랍니다.
한동안은 솔직히 목사님이 너무 밉기도 하고 증오하며 분노할 때도 있었거든요. 지금은 고마울 때가 많답니다. 목사님이 아니었으면 계몽운동이나 개혁 의지도 일찍이 사라져 현실에 동화되어 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니까요.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 저를 의의 길로 인도하셨어요.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요. 주님 재림하시는 날에는 부활해서 목사님을 뵙게 되겠죠. 하나님 앞에서는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요. 누구를 정죄해서 내쫓거나 성경을 알지 못해 누구를 속이고 속는 일도 없을 것이고요. 목사님! 그때는 얼싸안고 서로 사랑하며 오직 여호와의 이름만 찬송할 수 있기를 소원해봅니다. 부디 편히 주무세요.
2021년 정죄 받았던 세례교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