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시작하며-9월의 계절
9월은 가을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가을은 오관(五官)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지기 시작한다. 독일의 대시인 릴케는 1902년 9월 21일에 지은 ‘가을날’이란 시를 통해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놓으시고 벌판에 바람을 놓아 주소서/마지막 과일들을 결실토록 명하시고 그것들에 또한 보다 따뜻한 이틀을 주시옵소서…”라고 노래했다.
9월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란 문자대로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이다. 이 천고의 계절에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창 15:5) 보고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시 19:1)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앙망하고(사 45:22)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전 10:31).
9월은 등산의 계절이다. 가을을 산이 유혹하는 계절이라고도 한다.
산은 확실히 우리가 유혹될만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우리로 하여금 가고 싶고 정상에 오르고 싶어하는 충동을 일으킨다. 그래서 등산을 좋아하는 것이다. 등산이 건강에 좋고 산의 철학을 일깨워 주며 불로장생의 도장이란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9월은 유리알처럼 투명한 하늘 아래서 나뭇잎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익어가는 계절이다. 온통 빛깔들의 축제로 불타고 있는 가을산에 올라 자연이 베푼 향연에 참예해 본다는 데 가을 산행(山行)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일찍이 우리나라는 산고수려(山高水麗)라 하여 국호를 고려(高麗)라 한적이 있었고 지금도 외국에서는 고려(Korea)라고 부르고 있으니 산고수려한 곳에서 어진 백성들이 산처럼 고상하게, 수목처럼 푸르게 살아온 것이 우리 겨레의 생활이요 역사인 것이다. 산은 인생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어떤 책이든 읽고 또 읽기를 즐기지 못할 바에는 아예 그런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산은 좋은 책과 같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기를 계속하노라면 귀중한 교훈과 참된 기쁨을 아울러 찾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좋은 책과 같은 산이기에 우리는 등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9월은 독서의 계절이다. 각급 학교도 문을 열었다. 각자 나름대로 보냈던 여름방학 동안의 분방을 털고 이제 차분한 마음을 되찾는 가운데 책상 앞에 앉아야 한다. 그것은 비단 학생들에게 국한 된 일만은 아니다. 평생을 배우고 닦아 나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길이라는 점에서 사회인(人) 또한 서가의 책을 꺼내어 여름동안 묵어 있었던 먼지를 털고 읽어 나가야 한다. 고요한 밤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느라면 이름모를 풀벌레 소리가 밤이 이슥하도록 벗하여 주는 것이 이 계절에 하는 독서의 기쁨이라 하겠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 옛 사람과 만나고 스승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유구한 세월을 두고 권태로움을 보임이 없이 사시(四時)는 운행되어 온다. 아무런 말도 없이 때가 오면 계절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소슬바람 속에 결실을 보게 되면 이어서 우리는 다시 조락(凋落)을 보고 인생의 무상을 느끼게 되는 것이 해마다의 일이었고 올해 또한 그 가을로 들어선다.
이번 가을은 읽고 생각하는 가을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넓고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영혼의 연륜을 쌓아가는 것이 가을이다. 그 수확도 계절의 수확 못지 않게 중요하다. 여러분의 가정에 책을 꽂아 둔 서가(書架)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 가을에 거기 있는 책이라도 읽으시라. 영국 속담에 “책은 읽지 않고 쌓아 두기만 할 때, 나무조각과 다를 것이 없다”고 했다.
“악서는 지적인 독약이며 정신을 독살한다”(칼 힐티)고 했다. 우리는 성경애독에 치중해야 한다. 9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한 것’ 같이 우리도 성경을 통해 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여 축복받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신 17:19, 계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