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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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2-17 14:0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의식의 개혁


지난 10월 26일 보궐선거 이후 사람들의 의식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파나 지면을 통하여 한결같이 흘러나오면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를 비롯해 기업인, 교사, 배우는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변화해야 한다는 외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외침은 내가 변해야 한다기보다는 상대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해 아래에서 사람들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바르지 못하고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어리석은 삶의 여정을 바꾸어 보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역사하시지만, 무리를 지어 다른 무리에게 미련하고 어리석음을 지적하면서 여러가지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너희는 변화해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다.

해 아래에서의 사람들은 왜 모두가 변화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지…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 7:3~4)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허물은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볼 줄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다.

해 아래에서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보다는 남의 허물 만을 보고 흠집을 내려고 하는 사악성이 가득하다. 사랑도 내가하면 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고, 남이하면 불륜으로 치부해 버린다.

자신의 허물을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니까 덮어두어야 한다는 개인주의적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사악성이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악한 것이니 반드시 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내가 아닌 상대방만을 변화 하라고 외쳐 대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경제학자인 카를로 치폴라는 사람을 무력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하고 그중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지식이나 성격과는 별도로 개인이나 단체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만을 보려고 하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어서 변화를 두려워하고 관념을 바꾸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해 아래에서의 사람들을 불완전하게 만들어 놓으셨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관념이나 삶에 대한 가치도 완전하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해 아래에서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것을 보기 싫다고 해서 안볼 수 없고 말도 듣기 싫다고 해서 듣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고 상대를 비방하거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기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볼 줄 알아야 변화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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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회고와 기도
가을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