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7-07-30 20:2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군자라면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 而後從之.
자공문군자, 자왈 선행기언 이후종지.

子曰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자왈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불주


논어 2장 위정의 계속이다.

“자공이 군자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먼저 그 말한 것을 실천하고 그 후에 (말이 실천을) 뒤따라야 한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두루 사랑하고 편을 가르지 않으나 소인은 편을 가르고 두루 사랑하지 않는다.“

‘선행기언’은 말하기 전(未言之前, 미언지전)에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공은 말을 잘했다. 그래서 공자에게서도 말을 잘하는 것으로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말하는 만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스승에게 이렇게 물었던 것 같다.

공자는 그 대답으로 군자는 말하기 전에 먼저 실천을 하는 사람이며 그 실천한 것을 후에 말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군자가 자신이 실천했다는 것은 자신이 경험하고 느끼고 살아온 것들을 말한다. 즉 군자는 반드시 자신이 이미 살아왔던 인생살이를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군자는 周하되 比해서는 안 된다. ‘주’(周)는 ‘보편’(普遍) 곧 널리 펼쳐져 있다는 뜻이다. ‘비’(比)는 ‘편당’(偏黨) 곧 어느 한편으로 쏠리고 당(무리)를 짓는다는 말이다. 군자는 누구와도 보편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 누구와도 자연과 우주를 친애하는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반면에 군자는 무언가 이익을 노려서 자신과 마음이 맞거나 기호가 같은 사람 몇몇과만 편을 짓고 무리를 이루는 따위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군자와 소인은 낮과 밤이 다른 것처럼 다르다. 말하기 전에 행동하는 자가 군자요 말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는 자가 소인이다. 두루 사랑하고자 하는 자가 군자이고 파당을 일삼는 자가 소인이다. 둘 사이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어느 때는 군자인 양 하다가 어느 때는 소인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두루 사랑하는 데는 근거가 있다. ‘주’가 보편타당성을 갖고 있듯이 군자의 사랑은 보편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군자의 두루 사랑함에는 반드시 보편적 인간애나 우주만물의 자연성이 있어서 누구에게도 군자의 두루 사랑함이 수용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공자의 군자상이 그리스도인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 역시 군자와 같이 말하기 전에 행동하는 사람이기를 암시해준다고 본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로 말하기 전에 먼저 누구에게도 두루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이익이나 소수만의 이익을 위해 파당을 지어서는 안 된다. 

온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각 교회는 한 분 그리스도의 지체다. 각각의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각 교회 안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한 분 그리스도의 지체다. 따라서 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고 모든 한 교회들은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대한의 교회들은 두루 사랑하는 교회들이기를 기대한다.   
대한의 선한 그리스도인들이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편적인 사랑을 실천해 나가도록 해 보자. 한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의 언어를 말하고 서로 두루 사랑하는 행동을 옮겨보도록 하자. 상대의 이단성과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파당으로 내모는 말을 내뱉기 전에 이미 그 먼저부터 그리스도의 보편적 사랑으로 두루 사랑하는 행동을 실천해 보자. 그 후에 말하도록 하자.

믿음의 실천을 강조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외쳤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1:19)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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