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배우며 생각하고 생각하며 배워야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
자왈 공호이단 사해야이.
『논어』, 「위정」의 계속이다.
“공자가 말했다.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하다.”
“공자가 말했다. 이단에 공을 들이면 해로움만 있을 뿐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마음에서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뜻이다. 마음으로 구하지 않으면 그 구하는 것이 혼미해져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不求諸心 故昏而無得, 불구저심 고혼이무득). 느낌이 없는 배움은 남는 것이 없는 법이다. 한편 배운다는 것은 그 배운 일을 연습해서 익혀가는 것을 말한다. 배우기만 하고 실제로 익히지 않으면 위태하게 되어 불안하다. 배운 것을 능숙하게 익히지 않으면 어설퍼서 자신도 타인도 그 모습에 위태하게 느낀다. 그래서 불안하다.
정자(程子, 호는 伊川, 1033~1107)는 널리 배우고(博學, 박학), 깊이 묻고(審問, 심문), 신중하게 생각하고(愼思, 신사), 밝히 분별하고(明辯, 명변), 독실하게 실천(篤行, 독행)하기를 교훈하였다. 즉 배우는 것을 마음으로 깊이 느끼고 궁금해하면서 열심히 익혀서 능숙하게 배어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마음과 몸에 평안함이 깃들게 된다.
배우는 자는 이단에 공을 쏟아서는 안 된다. 공을 들이는 것은 마음을 오로지 해서 그것만을 다스려가는 것을 의미하였다(專治, 전치). 마치 목공예나 석공예 또는 금이나 옥을 장식해 가는 기예를 익히는 것을 말한다. 춘추시대에 기예를 닦는 길은 공인의 집에서 숙식하면서 그 사람의 기예를 온전히 익힐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 배움이 이단의 길이라고 판명이 된다면 거의 인생을 헛되이 보낸 것을 의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단은 성인의 도가 아니다. 그런데도 다른 편에서 끝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이러한 이단을 기예를 익히듯이 마음을 온전히 기울여서 욕심을 내고 정열을 다한다면 그 해로움은 계산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러한 유학의 가르침이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유익함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울 때 생각함이 없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배울 때마다 마음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터득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동시에 배운다는 것은 마음으로 터득한 것을 반드시 내 몸에 익숙하게 해서 자연스럽게 실천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노력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단은 하나님의 말씀에 없는 단체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지 않으면서 번지르르하게 서 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무리들이다. 하지만 이단은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다. 그리스도인은 여기에 힘을 쏟아서는 안 된다. 말씀 위에 서 있지 않은 학문이나 부나 명예의 기예를 닦는 것도 이단에 힘을 쏟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해로운 결과만을 가져오고 자신의 인생 의미를 헛되게 한다.
대한의 선한 그리스도인들이여! 생각하며 말씀을 배우고 배우면서 생각하자. 이러한 신앙 실천을 통하여 이단에 빠져드는 어리석은 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반드시 말씀을 마음으로 느끼고 익혀서 실제 생활에서 능숙하고 유연하게 실천될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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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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