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6-10-28 21:2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자금이 자공에게 공자의 행적을 묻다


子禽問於子貢曰 夫子之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자금문어자공왈 부자지어시방야 필문기정 구지여 억여지여
子貢曰 夫子 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자공왈 부자 온량공검양이득지 부자지구지야 기저이호인지구지여
子曰 父在 觀其志 父沒 觀其行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자왈 부재 관기지 부모 관기행 3년 무개어 부지도 가위효의


“자금이 자공에게 물어서 말했다. (우리) 선생님은 어떤 나라로 가면 반드시 그 정치를 듣는 데 (그것이) 스스로 구한(알고자 한) 것인가 아니면 (그 나라 또는 왕이) 허락해 준 것인가?
자공이 말하였다. 우리 선생님은 온화하시고 선량하시고 남을 공경하며 자신을 낮추시고 양보하는 분인데도 (정치를) 듣는 것이니까 우리 선생님이 (정치를) 구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사적인 의도로) 구하는 것과는 다르시다.”
“공자가 말했다. 아버지(부모님)가 계실 때는 그분의 뜻을 살피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분의 행위를 살펴(따라 살아)서 3년 동안 아버지의 도(길)를 바꾸지 않는 것을 효라 할만하다.”

공자가 그 당시 중국 내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각 나라의 정치 상황을 알고자 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공자의 ‘주유천하’(周遊天下)라고 하는데 이 행적을 사람들은 공자가 자신의 도가 실천될 수 있는지를 찾고자 하는 구도의 길이었다고 이해하거나, 개인적 정치야욕을 이루고자 한 것이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자금은 지금 자공에게 이러한 공자의 정치 행위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자금은 공자의 제자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가 제자로서 스승 공자를 따라다니다 보니 힘든 일도 있었을 것이고 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음직하다. 그래서 자금은 자신보다는 더 인정을 받는 자공에게 스승의 행적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자공(본명은 端木賜, B.C. 520-450)은 당당하게 자기 스승의 정치에의 관심은 공자가 한자리 얻고 싶어서 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정치 담당자들이 스스로 공자에게 들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공은 자신의 스승 공자를 ‘온화하시고 선량하시고 남을 공경하며 자신을 낮추고 남에게 양보하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자공은 언변에 뛰어나서 외교를 위해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런 연유로 해서 자공은 그 당시 고위직의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었고 교류하였다. 이러한 경험이 있는 자공이 보기에 자신의 선생님은 스스로 찾아 나선 것이 아니고 그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 그 나라의 사정을 들려주고 공자의 고견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자공의 주장은 계속되고 있는 공자의 가르침에서 다시 확인된다. 공자는 효를 강조한 어른이다. 누구든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서 행동하는 것이 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생전에 하시던 그분의 언행을 기억하고 그 뜻을 살펴서 처신하는 것이 효이다. 더 나아가서 부모님의 생전 생활 자세를 적어도 3년 동안은 바꾸지 않는 것이 효인 것이다.
이상의 사실에서 공자는 구차하게 어떤 자리 하나 얻어 보겠다고 남의 나라 정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님이 드러난다. 그는 인과 예를 지닌 군자의 인간상을 구현하고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공자는 자신처럼 ‘온량공검양’의 인품을 지닌 사람이 되어 효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가족, 제자, 친구, 나라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본문이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첫째는 자공과 같이 제자는 스승의 인품을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그분을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하늘나라 백성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분이다. 그분은 누가 자신을 비난했다고 괘씸죄를 적용하지 않으셨다. 큰 능력을 품에 안고 계셨지만, 그 능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드러내셨을 뿐 개인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으시다. 그분은 끝까지 사랑을 행하셨다. 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은 부족하더라도 스승 그리스도를 이렇게 깨달아 알고 따라 살아가야 한다. 둘째는 부모님의 뜻을 살피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살피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히 살아계신다. 그분의 뜻은 성경을 통해서 이미 다 말씀하셨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인 성경을 자세히 살피고 그 뜻을 실천해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효행이다. 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부모님에게 효를 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찾아내고 또한 그 말씀 따라 살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모에 대하여 잘못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부모님에게 효를 행하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부모님에게 효를 행하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죄다. 죄가 되면 그에 따른 심판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일들을 가지고 자신의 불효를 정당화할 수 없다.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히 살아계시고 그분의 뜻을 말씀은 진리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언행과 생각과 몸의 움직임 일체에 대한 기준이요 근거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를 밝히 깨닫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육신의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법을 찾아 묵묵히 실천해야 한다. 인간적인 변명은 필요하지 않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도덕(道德), 삶을 물어뜯는 ‘좀비’
‘무조건적 용서’라는 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