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6-11-19 20:1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도덕(道德), 삶을 물어뜯는 ‘좀비’


“도덕은 지금까지 삶을 가장 심하게 비방하는 것이었고, 삶에 독을 섞는 것이었다.”(프리드리히 니체,『유고』 KGW VIII 2 10[166], 260쪽) 앞의 인용은 서양 기독교를 혹독하게 비판한 니체의 말이다. 우리 사전에 보면 도덕(道德)이란 ‘인간의 양심과 관습에 비추어 마땅히 지켜야 하는 행동 규칙’으로 정의한다. 마땅히 지켜야 하는 행동 규칙인데, 니체는 삶을 가장 심하게 비방하고 삶을 죽이는 독을 품고 있는 것이 도덕이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니체의 도덕 비판은 일반적인 윤리적 상식과는 결코 조화할 수 없는 독설이다.
하나씩 풀어가 보자. 니체는 일반적 상식으로 이해하듯이 도덕을 삶과 연관 짓고 있다. 문제는 인간의 양심과 습관에 관련하여 ‘긍정적 가치’로 자리잡은 듯한 도덕에 대해, 그것이 삶을 도와준 것이 아니라 비방해 왔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삶’을 격려하여 문화의 수준을 높여주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이 인간의 도덕이 아니라, 그 반대로 삶을 헐뜯어 삶의 활력(活力)과 활기(活氣)를 빼앗았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니체가 볼 때 도덕 때문에 삶에서 빼앗긴 것은 무엇인가? 우선 니체가 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니체가 말하는 인간의 삶 혹은 생(生)은 니체의 개념으로 다르게 말하면 ‘권력의지(der Wille zur Macht)’다.  권력의지는 ‘지금-여기-이 모양’의 신체(身體)를 지배하면서 현세적 삶을 이끌어가는 ‘의지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의지력은 또한 삶을 애초부터 고정된 것으로 파악하지 않고 쉼 없는 생성과 변화, 소멸과 재창조가 반복하는 창조의 공간을 만드는 동력(動力)이다.
신체가 발붙인 ‘이곳’(니체는 이곳을 기독교의 ‘천국’과 대비해서 ‘대지(大地)’라고 한다)에서는 생성과 소멸이 반복하며, 수많은 갈등과 모순이 교차하면서 통제할 수 없는 힘들이 역동적 군무(群舞)를 펼친다. 니체는 바로 ‘이 세계’의 운행을 지배하는 생명의 원천을 ‘힘’(force) 혹은 ‘권력’(power)으로 파악하며, 인간의 생존 의지가 바로 이 힘의 역학 구조에 의해 유지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니체가 볼 때, ‘이 세계’를 부정하거나 이 세계의 운동 원리를 이곳을 초월한 가상의 ‘저 세계’를 통해 설명하려는 것은 세계관의 왜곡이며 생생한 실존에 대한 범죄가 된다. 
힘의 역학 관계가 지배하는 이 대지(大地)에 뿌리를 내리고 버티려는 신체의 몸부림 곧 ‘삶의 의지’는 니체에게 가장 생생하게 다가오는 ‘살아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러한 시공간에 충실한 ‘내 몸’ 중심, 피안(彼岸)이 아닌 차안(此岸) 중심의 삶이 인간의 삶 즉 인생(人生)의 터전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지에 충실하려는 몸부림치는 삶의 의지를 왜곡하는 대적(對敵)은 무엇인가? 그것은 역학 관계를 흐려놓고 의지의 자유로운 활동을 억제하고 고정화하려는 것들이 바로 그 주적(主敵)들이다.
니체가 던진 문제를 더 좁혀서 말한다면, 역동적인 삶을 억지로 고정된 틀 속에 넣어 삶의 활기를 사장(死藏)시키려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짓이다. 그것이 바로 ‘도덕(道德)’이다. 왜냐하면, 도덕적 판단의 전제는 언제나 ‘이미 고정된 선과 악’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인간이 각자 생존을 위해 그때마다 필요한 자기 기준의 ‘선/악 판단’을 내리며 살아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생존의 조건이다.
그런데 힘의 엄격한 역학 구조 속에서 삶을 견디기 힘든 자들이 자기 유약함을 인정할 수 없어서 자기 고통의 원인을 자신보다 힘 있는 자들에게 그 ‘탓’을 돌린다. 이 순간 삶의 동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정하며 삶을 견디고자 분투하는 긍정적이며 ‘힘 있는 자’들은 ‘나쁜 사람’들이 된다. 동시에 삶을 견디지 못하는 유약한 자들은 강한 자들에게 피해를 입은 ‘좋은 사람’들이 된다. ‘강한 자=나쁜 사람’이 되고 ‘약한 자=좋은 사람’이 되어, 생기발랄한 삶은 그 자체가 ‘나쁜 사람’들이 지배하는 긍정할 수 없는 세상이 된다. 이것을 조장한 자들이 바로 고정된 선과 악의 법칙, 도덕적 법칙을 만든 자들이며 이렇게 태동한 도덕이 역동적 삶을 황폐화시킨 독극물(毒劇物)이 되었다.     
도덕적 가치를 표방하며 서구 문화 발전의 ‘견인차’로 자부했던 도덕은, 니체의 손끝에서 가장 먼저 단두대로 보내야 할 가장 사악한 인류의 반역자가 된다. 연민과 동정의 가면을 쓰고 고통에 동참하겠다고 선량하게 다가온 도덕은 삶의 의지가 약동하는 신체를 뜯어먹으려 했던 ‘좀비’였다.
니체의 도덕 붕괴는 서양 기독교의 뿌리까지 뽑아버렸다. 성경을 도덕화했던 자들의 탑들이 철저하게 붕괴되는 결과를 낳았다. 도덕적 삶을 표방했던 유럽은 니체의 이러한 폭로 이후 세계 제1,2차 대전을 통해 수천만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서양의 ‘도덕왕국’은 괴멸하고 만다. 기독교는 그 방향을 상실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도덕적 이미지 자체가 허구로 전락해 버렸다. 교회가 무너졌고 신학의 뿌리가 뽑힌 채 성경진리는 점점 그 효력을 잃어갔다. 생명의 원천이며 인류의 모든 질병과 영혼의 불구를 고쳐주시는 구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진리는 점점 외면당했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적 판단과 니체의 증오와 인간들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여전히 부활 승천하신 예수는 구약에서 언약한 그리스도이며, 지금도 우주 만물의 통치자가 되시며,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자기 백성의 구주이심을 고백한다.

30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31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 15: 30~31)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화 - 우주 최고의 덕목
자금이 자공에게 공자의 행적을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