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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작성일 : 16-03-30 21:0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허무주의와 중국 근대의 소용돌이


“수구적인 사람과 현대문화를 존숭(尊崇)하는 사람은 그(니체-필자 주)를 광인, 악마라고 말하며 새로운 것을 말하는 사람과 현대문화를 혐오하는 사람은 그를 위인, 천재라고 칭한다....요점은 금일 유럽 문예 예술이 아래로는 인민생활부터 니체 영향을 받지 않음이 없음이 과한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이상욱,“현대성의 이중성”,『니체연구』제26집, 2014년 가을, 354쪽)


앞 인용은 청(淸) 말기 중화민국 초 고증학자였던 왕국유(王國維, 1877~1927)가 당대의 서양 철학자 니체의 영향력을 평가한 내용이다. 니체의 철학이 20세기 초에 유럽 사회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을 서술한 이 내용에는 니체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가 잘 나타나 있다. 한편으로 미치광이로 평가절하하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 위대한 천재로 존경하고 있다. 이러한 극단의 평가를 동시에 받는 니체라는 인물은 침략과 몰락, 격동과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는 중국인 유학자에게도 적지 않은 인상을 준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시기로 보면 중국은 아편전쟁(1840년) 패배 이후 외세의 침략으로 시작한 강요받은 근대화라는 크나큰 과제를 떠안고 있었다. 1910년 신해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근대화 과정은 서양 제국주의의 실체를 파악하고 대처하려는  몸부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니체 철학의 개념을 중국의 시대적 변화를 평가할 수 있는 올바른 척도로 사용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앞서 말한 왕국유의 평가처럼, 당시 중국의 선각자들에게 니체 철학은 서양 문화와 사상의 본질을 간파하고 중국의 미래를 위해 얼마나 쓸모 있는 사상인가라는 고민을 안겨주기에는 충분했다.

  니체 스스로 말한 ‘허무주의(고정된 가치의 철저한 부정과 동시에 새로운 가치 창조의 필연적 운동)’라는 무서운 손님이 이제 중국까지 방문한 셈이다. 서구 열강의 침략과 이동을 지켜보면서 중국의 ‘근대성(modernity)’을 고민하는 문필가와 사상가들은 전통 가치를 버리기도 해야 하며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도 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었다. 오랫동안 동양 사상과 동양 문화의 독보적 지위를 유지했던 중국은 결코 삶의 가치에 대한 고정된 ‘정답’을 제시할 수 없는 허무주의의 역사적 흐름 속으로 들어온다. 중국의 모든 사상을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지 아니면 어느 정도 적당하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중국의 사상가들은 ‘신의 죽음’을 말한 니체의 비판적 해체 전략을 따라가면서 당시에 고정된 진리로 통용되던 가치들을 해체한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에 나타난 ‘도덕적 선’에 대한 비판적 전략을 사용하여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비판한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사회에서 살아남는 자는 ‘강한 자’ 혹은 ‘우수한 자’이어야 한다. 하지만 니체에 따르면 서구의 기독교 역사는 다수의 나약하고 힘없는 자들이 소수의 강한 자를 결국 지배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핍박과 억압 속에서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國敎)로 수립한 것은 생물학적 의미의 강자가 승리한다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역사다. 이는 중국 민족의 미래 생존 전략이 단순한 ‘약육강식’의 논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유교적 세계관의 붕괴와 봉건주의 체제의 몰락 이후 향후 중국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중국 문화 창조의 새로운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계몽가들에게 이제까지 의지하던 세계관의 붕괴는 결코 참을 수 없는 혼돈임에 틀림없다. 사실 이러한 결과가 니체가 말한 허무주의의 본질을 몸소 겪는 실제적 사례가 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불변의 진리는 본래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우화가 반복하면서 마치 절대적 진리처럼 조작되었다. 기독교는 시간 너머의 저 세계를 날조하여 ‘영원한 천국’을 만들었으며 ‘최후의 심판’을 조장하여 현실의 불만족을 자위(自慰)하는 도구로 삼았다. 사회주의 ‘혁명’은 기독교의 ‘최후심판’을 변형한 것으로 ‘복수의 위안’(이상욱, “현대성의 이중성”, 344 참조)을 얻기 위함이 그 본질이다. 니체의 눈으로 보면, 민주주의는 조직력의 쇠퇴를 반영하며, ‘자유’는 무책임의 미명이고 노동자 혹은 근로자의 ‘권리’ 강조는 더 힘겨운 노역을 자초하는 것에 대한 경고가 된다. 당대 중국 사회에서 전통의 “와해(瓦解)를 조성하고 말일(末日)의 가속화”(이상욱, “현대성의 이중성”, 344 참조)를 재촉하는 퇴폐주의의 한 예를 든다면, ‘혼인제도’에 대한 의미 상실이다. 혼인은 더 이상 ‘애정’에 기초하지 않는다. ‘성충동’, ‘재산충동’ 그리고 ‘통치충동’이 지배하는 세기말적 증후군들이다. 

니체의 허무주의가 중국 근현대 사상사에 보편화한 흔적들은 적지 않다. 니체 자신의 말대로 ‘다이너마이트’ 혹은 ‘망치’로 가차 없이 모든 가치들을 붕괴시켜야만 출발 가능한 것이 니체 철학 따르기의 전제 조건이다. 니체의 사유 전략을 단순히 중국 문화에 적용하고 문화적 패턴을 니체 철학을 통해 구성해 보기에는 그의 철학적 가설이 요구하는 바가 너무 클 수도 있다. 니체 철학의 본질을 인간의 ‘비극적 본성’에서 찾았던 왕국유는 분명한 이유 없는 소문만 남긴 채 북경 ‘이화원’의 ‘곤명호’에 스스로 몸을 던진다. 몰락하는 청 왕조에 대한 마지막 충정이었는지, 대안 없는 고통과 고난의 중국 현실에 대한 지식인의 솔직한 양심이었는지 아니면 당대에 분출하는 가치 혼돈의 소용돌이의 현장에서 그 역사를 몸소 견뎌내기 위한 ‘비극’의 결단을 내렸는지 모른 채 말이다.

17 내가 지혜를 알고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기 위해 마음을 쏟았으나 이것도 역시 바람을 잡는 것임을 깨달았다. 18 이는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도 더하기 때문이다
(바른성경/전 1:17-18)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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