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교활한 말과 예쁜 표정 짓기를 경계해야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자왈 교언영색 선의인。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증자왈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소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論語』(논어)「學而」(학이)
본문의 해석은 이렇다.
공자가 말하였다. “교활한 말을 하고 예뻐 보이는 표정을 짓는 사람은 선한 이가 드물다.”
증자가 말하였다. “나는 하루에(날마다) 세 번 내 몸을 살핀다. 다른 사람과 의논하면서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 있지 않을까? 친구와 사귐에 있어서 믿음으로 하지 못한 것이 있을까? 가르침 받은 것을 익히지 않은 건가?”
공자는 한 마디로 표리부동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될 것을 온갖 번지르르한 용어를 사용해서 말하는 사람은 선한 이가 적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표정을 지으면 되는 것을 억지로 예쁜 척 꾸미는 이도 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증자(B.C. 505-436, 이름은 '참'(參)이다)는 표리부동한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에 대하여 그 자신만의 답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 첫째는 다른 사람과 이런저런 대화들을 교환하는 중에 충성스럽지 못한 것은 없는 저 자신을 반성해 보는 것이었다. ‘충’은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盡己之謂忠” 진기지위충). 진실로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진심을 다할 수만 있다면 거기에 교활한 말이나 거짓된 예쁜 표정을 짓는 일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둘째로 친구와 교제를 할 때 미덥지 못하게 한 일이 없었는지를 반성하는 것이었다. 미더움은 자신에 대하여 믿음이 있고 그 믿음으로 타인에게 동일한 믿음을 보이는 자세를 말한다. 한자어 ‘신’(信)은 몸에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부신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남이 자신을 믿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스스로 미더워 보이게 먼저 자신의 책임을 보여줌을 의미한다. 나 자신의 말과 행동이 먼저 미더워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로는 전해진 가르침을 날마다 익히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사람은 날마다 무언가를 배우기 마련이다. 이 배움은 반드시 누군가로부터 또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 등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전해 받은 것을 익히는 일은 모든 사람의 의무라 할 수 있다.
증자의 이러한 삶의 태도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반성을 하게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교제는 전국적으로 화석화되고 획일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성경 말씀을 거의 읽고 연구하지 않으면서도 들은 내용만을 가지고 믿음이 있는 것인 양 말하기 일쑤다. 자신의 평소의 삶을 말씀과 대조하면서 반성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부귀와 권력과 학력의 소유가 마치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으로 여겨 그것들을 추구하는데 지나치게 열심이다. 성도들 사이의 교제에서는 정해진 몇몇 단어나 문장들만을 가지고 서로에게 안부하거나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그만이다. 심지어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핑계로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교회 상황도 상황이려니와 앞으로의 교회나 믿는 이의 가정 속에서의 앞으로의 새로운 신앙생활양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문제가 되고 있다.
증자의 반성의 삶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태도와 관련지어 비교해보자. 첫째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교제와 대화 속에서 충성을 다하고 있는 것인가의 반성이다. 둘째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자체 안에서의 교제 곧 믿음의 형제자매들 안에서의 교제가 정말 나 자신이 먼저 신뢰를 보이고 다른 이의 신실함을 마음으로부터 믿고 있는가의 반성이다. 셋째는 전해 받은 것 곧 나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받은 것, 설교 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받은 것, 사람들과의 교제 속에서 전해 받은 것들을 진정 내가 익히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화의 장으로 부르고 계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이사야 1:18).
대한의 그리스도인과 교회들은 이제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반성과 회개를 온전히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깨끗함의 자리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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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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