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니체의 미래 여성관(5) : 더 철저한 이기적 사랑을 하라!
“너희들은 너희들 자신에게서 도피하여 이웃에게 달아난다. 그러고는 그런 행동을 하나의 덕으로 삼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의 그 같은 ‘타인 지향적 헌신’의 정체를 꿰뚫어 보고 있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역, 서울: 책세상, 2000, 121쪽) 니체는 타인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행하는 도덕적 헌신을 자기 자신을 피하는 행동,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행동으로 본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타인을 돕는 행위를 진정한 자신의 올바른 모습을 정립하는 행동으로 강조한다. 그런데 니체는 전혀 다르게 보고 있다. 타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행하는 이른바 ‘이타적’ 행동의 심리를 지배하는 것은 자기 패배적이며 자기 상실이라는 퇴폐적 요소임을 꿰뚫어 보고 있다.
모든 인간의 생존 방식은 자기중심적 판단이 지배한다. 진리와 거짓, 악행과 선행, 추악함과 아름다움 등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이 ‘자기 자신’이 된다. 자기 자신의 정체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가장 분명한 사실은 모두 이기적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인간은 결국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판단을 내린다. 설사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행위라도 그것은 정말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경우가 된다. 이처럼 인간의 생존은 철저하게 ‘이기심을 돌보는 행위’를 토대로 삼아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자기중심적 이기심을 부정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들이 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부정하는 자기희생의 종말은 어디까지나 자기중심적 신념과 타협할 수 없는 이기심에 대한 확증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을 위한 어떠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 기준의 판단에서 벗어날 수 없는 행위이며, 관리 방식을 달리한 또 다른 이기심일 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타인을 위한 헌신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불가피한 사랑의 고유한 면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타인에게는 기분 좋은 일이 될지 모르나 자신에 대한 긍정과 배려심은 배반하는 상황이 된다.
니체는 이렇게 타인 중심으로 자기 자신을 점점 잃어가는 ‘병든 이기심’의 예를 왜곡된 여성적 사랑에서 찾고 있다. 여성이 자연적 사랑의 고유한 스타일을 스스로 배척하면서 남성 지배에 원한을 갖거나 아니면 남성 중심적 권력구조를 모방할 때 빠져드는 ‘질병’이다. 니체가 보기에 여성 해방 운동의 흐름은 여성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운동이기보다는 자기 상실을 가속화하고 있었다. 여성의 고유한 자연적 사랑의 거부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인 임신과 출산에서 실패한 여성이 본능적으로 발산하는 히스테리처럼 다시 여성 해방 운동은 제동장치가 망가진 전차와도 같았다.
니체가 권하는 여성의 정체성 찾기는 자연적인 성적 사랑의 고유성을 상실하고 있는 여성들이 자기 자신과 투쟁해야 하는 자기 극복이 그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극복은 이미 존재하는 무엇인가에 맞추어 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자신을 창조해야만 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자기 극복의 과정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타인의 힘을 부러워하거나 아니면 보복심리에서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탐욕을 쌓아가는 과정이 결코 아니다. 또한, 타인을 배척하면서 자신의 생존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태도와도 거리가 멀다.
자기 극복의 과정에서 극복 대상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지몽매함을 쉬지 않고 극복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자기 무지는 자기 극복의 문제가 자신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시기심과 중오심 때문에 행동하는 방식들로 드러난다. 이는 자기 난관의 탓을 타인에게 돌리는 만큼 자기 회복은커녕 자신을 절망과 황폐의 늪으로 더욱 몰아간다.
여성해방운동에서 우선 여성 자신의 최고 가치는 임신과 출산을 최고의 선물로 안겨주는 자연적인 성적 사랑의 가치를 간파해야 한다. 자기해방의 운동에서 자기 극복의 최고의 계시는 바로 이러한 자연적 사랑의 무한한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다. 자신의 고유한 성과 사랑의 가치가 함몰되지 않도록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최고의 창조 행위, 남성은 결코 감히 접할 수 없는 ‘출산’이라는 최고의 창조 행위는 자기 자신의 무한한 자기 창조 행위가 된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여성의 고유한 ‘권력의지’(Der Wille zur Macht)다.
아이의 출산에서 여성은 자연적인 고유한 사랑에서 비롯하는 남성의 생존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자기 극복의 무한한 동력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생식에서 발산되는 창조를 향한 여성의 권력의지에 대한 확신을 통해 여성은 남성의 지배 방식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모방하지도 않게 된다.
니체 사상의 대전제인 ‘권력의지’가 여성의 무한한 자기 극복의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연적인 성적 사랑에 충실한 여성은 우선 자기 자신에게 더욱 ‘이기적’이어야 한다. 남성의 관능과 쾌락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고유한 성적 사랑의 무한한 가치를 고수해야 할 것이다. 이 가치의 유지를 위해 더욱 철저하게 ‘이기적’이어야 한다.
자기희생은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어야 하며, 누구를 위한다는 것은 오히려 자기 속임이며 가장 어리석은 자기 무지임을 간파해야 한다. 인간의 종(種)의 창조 행위의 원동력인 여성의 본질은 이렇게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일’ 때에만 가능하다.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신의 죽음’에 대한 선언에 대해 이념과 목표가 사라진 현대인에게 삶의 주인이 이제야말로 인간에게 있음을 치밀한 사유 전략을 통해 주입하고 있다.
오래전 사도 바울은 매우 엄격한 기독교 진리의 명제를 고백한 바 있다. 모든 재산을 털어서 남을 도와주고 나아가 자기 몸을 불사르는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것이 최소한의 유익함도 있을 수 없는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로써 보면 우리는 니체가 고민하며 갈구한 ‘여성다운 자기 사랑’에 대한 타당한 진언(眞言)에도 불구하고, 이것 역시 인간의 이기심을 자기 가능성의 무한한 원천이라는 또 하나의 허구를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볼 수 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3/개역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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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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