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미완으로 남을 계획: ‘계몽주의’의 운명
신의 능력과 은총 그리고 자비가 아니라 인간 의 이성이 삶의 등불이 된다는 것, 17세기 후반 부터 18세기까지 유럽에서 발생하여 몇 세기에 걸쳐 전개되고 있는 사상적 흐름을 ‘계몽주의’라 고 한다. 계몽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 ~1804)에 의하면, 이성은 인간의 모든 지성을 규제하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그리고 이성 은 자신이 설정한 바를 실현하기 위해 항상 ‘이념 (理念)’을 동반한다. 이념은 인간의 다양한 경험 을 총괄하여 이성으로 하여금 통일과 체계를 최 종적으로 수립하도록 하는 최고의 능력이다. 신 의 자리를 대신한 이성은 이념을 통해 자신이 최 후의 재판장이 된다.
그런데 지극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 성의 자기 착각으로 인해 오만과 거짓을 자행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유럽인 중심의 이러한 자기기만은 비유럽인에 대한 비 인간적 만행의 원인이 되었다. 유럽의 기준에 따 라오지 못하거나 따라가지 않는 자에 대해 ‘비정 상인’으로 단정해 버렸다. 자신을 도덕화하면서 부도덕한 것을 조장하고, 자신을 정상인이라고 자인하면서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비정상인 으로 내몰았다.
합리적 의사소통에 대한 간절함을 역설하는 하 버마스의 말, 계몽은 ‘아직 미완으로 남은 유럽적 기획’이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단지 더 강 한 반계몽주의 투쟁의 빌미가 되는 환경인 듯하 다. 이해하고 존중하고 나아가 용서한다는 모든 행위는 정치적 권력 행사 일정을 잡는 데 사용되 는 의전(儀典)일 뿐이다. 반복하는 인사와 안부지 만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빈말일 뿐이다. 신의 자비와 용서를 들먹이며 자신의 솔 직함으로 담보하려는 행동도 오히려 그것이 진 실하지 않다는 의구심만 증폭시킨다.
인류에 대한 상호 인정의 화려한 고백들은 테 러리즘 시대에는 오히려 배제와 배척의 당위에 대한 신호일지 모른다. 소통의 제스처는 무한히 열어놓은 듯하나 자기 폐쇄적 조치는 더욱 강화 할 것이다. 그래서 그 문빗장을 부수려는 응징과 보복의 테러는 더 치밀하게 진행된다. 어쩌면 미 완의 기획이라는 계몽주의의 정신은 말 그대로 완성할 수 없는 과제로 늘 미완으로 남겨질 운명 일 것이다.
본래 자신의 불완전성과 취약성이 그 본질인데 이를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숨기면서 학문과 기 술, 법과 질서, 자본과 군사의 주권이 자신에게 있는 듯 착각한 것이다. 짐작과 예측을 비웃듯이 아주 가까이 와있는 테러는 이러한 계몽의 기획 에 대해 또 다른 술법으로 응수하고자 한다. 더 완벽한 전쟁을 위한 휴전일 뿐 결코 종전(終戰)일 수 없는 테러는 집단적 학살이든 개인 암살이든 불안한 미래를 상징하는 가장 무서운 시대 징후 가 될 것이다. 결코 인정하거나 수용하고 싶지 않 으나 피해가기는 더 어려운 사건인 테러리즘은 전 지구적 정보 네트워크를 업고 감당할 수 없는 세계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세계화가 필 연적 흐름으로 가고 있다면 이와 더불어 테러리 즘도 그러한 길을 가야만 한다는 역사의 엄격한 심판에 직면한다.
자신의 삶을 운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부각 시키고, ‘나는 다이너마이트다’고 외친 허무주의 자 니체를 따르면, 서구 모든 가치의 전복(顚覆) 은 어떤 이유에서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다시 짓 기 위해서든 버리기 위해서든 파멸과 소멸의 과 정은 피할 수 없다. 한 세기 전 니체의 예언은 세 계 곳곳에서 험악하고 참담한 증후로 확산의 맹 위를 떨치고 있다. 서구 문명과 문화의 강제 이식 그리고 강요받은 질서에 대한 전복(顚覆)과 전도( 顚倒)가 이어지고 있다.
테러리즘의 더욱 큰 잔혹함은 유럽 중심과 비 유럽 중심, 친미와 반미의 대립을 극복하는 방식 이 아니라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더욱 철저하게 무장하여 계몽주의의 후예들에게 더 철저하게 보복하려는 ‘원한감정’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거짓말과 술수, 분리와 배제, 배척과 처 단의 전략들은 교리 확산의 불가피한 수단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까지 니체의 진단이 어느 정도 유효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테러리즘의 확산은 극동에 서 적도로, 남극과 북극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다. 손님이, 무서운 너무나 무서운 손님이 오고 있 다! 자신이 왜 이 시대에 올 수밖에 없는 ‘다이너 마이트를 준비하는 운명’인지 니체의 물음을 반 복하면서 말이다.
어떤 테러에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성경적 세 계관의 확립, 유럽과 비유럽, 동양과 서양, 악의 축과 선의 축 등 인간 중심적 이분법을 극복하는 세계관의 수립, 이것은 가장 절실하고 시급한 기 독교 학문의 시대적 과제일 것이다. 자신의 아들 메시아를 직접 세상에 보내셨던 하나님께 계시 이해의 은총을 간절히 간구하며 진리 무장과 투 쟁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비록 그 응답이 우리의 간담을 녹이며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 시기와 때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 권에 맡긴 채로.
9 다섯째 봉인을 떼실 때 내가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행한 증언때문에 죽임을 당한 이들의 영 혼을 보았는데 10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쳐 말하기를 “거 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시여, 언제까지 땅 위에 사는 자 들을 심판하지 않고 저희의 피를 갚아주지 않으시렵니 까?”하니, 11 그때 그들 각 사람에게 흰 두루마기가 주 어졌으며, 그들의 동료 종들과 형제들도 그들처럼 죽임 을 당하여 수가 찰 때까지 잠시 동안 더 쉬라는 말씀을 들었다.(바른성경/ 계 6: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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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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