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감성(感性) 작용과 창조자 본능
하이데거(1889~1976년)는 절대자 혹은 절대가치인 ‘신의 죽음’ 이후 인간 중심의 절대적 요소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려고 한다. 특히 시간 자체에 대한 분석에서 시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이 갖는 초월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하이데거는 임마누엘 칸트(1724~1804)를 재해석한다. 왜냐하면 칸트는 시간에 대한 의식을 사유와 인식의 고유한 능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칸트는 시간을 모든 인식 작용을 지배하면서 그때마다 필요한 진리를 창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적인 요인라고 보았다.
칸트를 따르면 물리적 시간이건 심리적 시간이건 상관없이 시간은 경험과 지식을 가능하게는 결정적 계기다. 인식을 위해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필요한 지식과 올바른 진리를 얻으려면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시간은 경험 이전에 이미 주어져 있다. 경험 이전에 있기 때문에 ‘선험적(先驗的)’이라고 하며, 인식의 과정을 가능하게 하고 제한하되 인식하는 주체와는 무관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초월적(超越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식하는 주체와 무관하다는 말이 인간의 의식과 사유를 벗어나 외부 세계에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다. 초월성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은 바로 인간의 의식이다. 초월의 주체는 바로 인간이며 인식 활동에서 이러한 사실을 실현한다. 하이데거는 칸트가 의식했던 이러한 문제를 더 깊고 상세하게 다루었다.
하이데거는 초월을 외부 세계의 문제가 아닌 인간 내면의 고유한 능력임을 보이고자 한다. 그런데 시간이 생각 이전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생각과 동떨어진 채로 있을 수는 없다. 인간의 인식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시간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의도는 분명하다. 시간의 초월적 특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인간 존재의 초월성이 그만큼 드러나기 때문이다.
시간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한한 인간의 사유가 시간을 통제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시간에 지배 받는 유한한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지만,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시간의 비밀을 알고 시간을 조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무한한 존재이기도 하다. 시간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창조의 순간도 알 수 있고, 시간이 끝나는 곳을 응시하면서 종말의 시기도 예단(豫斷)할 수 있다. 처음과 나중을 모두 이해한 듯한 착각에 빠지고 세계창조의 당위성을 알았다는 오만에도 사로잡힌다.
이러한 시간을 칸트는 ‘순수한 직관’이라고 부른다. 순수하다는 말은 경험 이전에 존재한다는 말이며, 직관(直觀)이란 경험하기 이전에 인간의 의식은 이미 시간을 알아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시간은 인식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 되기도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이미 이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시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이미 의식 속에 있기 때문에 경험이 가능하고 진리 창조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시간이 감각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는 점에서 지식의 원천과도 관련한다. 그래서 칸트와 그 주위에 모인 자들은 시간을 ‘순수 지성(知性)’이라는 말과 연관시킨다. 왜냐하면 시간이 인간 내면에서 인식 가능성의 원천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 원천을 드러나게 하는 유일한 기관이 있기 때문이다. 곧 인간의 지성이다. 이것을 순수 지성이라고 한 것은 이 지성 역시 감각 경험 이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수 지성은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과 관련되기 때문에 논리학과 만난다. 왜냐하면 논리학이란 많은 개념들 가운데 올바른 범주 관계를 구성해 참인 명제를 만들어 주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결국 순수 직관과 순수 지성은 시간과 범주(논리학)를 뜻하며, 이를 통해 경험 이전부터 시간성과 관련된 인간은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갖추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 지성적 존재가 된다.
논리학에서 명제 구성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범주다. 범주가 모든 명제를 만들어내며, 범주 결정이 존재와 진리를 결정한다. 예를 들면 사람이라는 개념은 피조물이라는 범주에 속할 때 진리가 된다. ‘사람은 피조물이다’로 말이다. 그런데 사람이 과일에 속하면 비진리가 된다. ‘사람은 과일이다’로 말이다. 이와 같이 범주는 존재와 비존재, 진리와 비진리를 결정한다.
이러한 범주 결정을 도와주는 능력이 내면에 있는데 바로 시간성이다. 즉 인간의 지성이 진리를 체험하고 확정할 수 있도록 시간은 그때마다 계기를 제공한다. 이와 같이 시간은 범주가 결정되도록 돕고 범주는 시간을 통해 의도했던 진리를 만들어낸다. 신이 죽어버린 시대에 인간은 시간에 매몰되어 가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창조하고 가능하게 하는 존재가 된다는 말이다. 이사야 선지자의 다음 경고를 무시하면서.
사 14: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다음 호에는 ‘시간적 존재의 착각’을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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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감성(感性) 작용과 창조자 본능 |
시간성의 저주, 초월 본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