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1-01-27 19:4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神的 가치추구에 드리운 ‘신의 죽음’


가치(價値)란 어떤 대상의 값어치를 말한다. 가치론은 그 대상이 얼마나 쓸모 있느냐를 따지는 분야다. 어떤 대상을 유용성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이미 수단적 가치가 된다는 말이다. 서양사상의 흐름에서 볼 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유행하는 ‘가치철학’은 인간을 기계와 물질로 파악하는 자연과학적 세계관에 기초를 둔다.

  근대철학은 절대가치인 신에 대한 부정 위에 세워졌다. 그와 동시에 삶을 유익하게 하는 가치 자체의 모든 근원이 인간의 내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초월적이며 절대적 존재인 신에 대한 판단도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산물이 아니라) 이성의 고유한 활동에 속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임마누엘 칸트는 이론적 인식 능력의 한계를 긋는다. 인식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의식(意識, consciousness) 내에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본래적 원형(Ding an sich)은 결코 인식할 수 없다. 이러한 전제에 입각한 철학자들이 볼 때 성경은 수없는 해석의 해석을 거듭하는 잡동사니 문서에 불과하다. 칸트 이후 인간의 모든 인식은 내면의 의식세계 곧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에 근거를 둔다.

  자기의식은 그 사유 내용이 물질적이든 관념적이든 모두 가치들로 평가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치는 곧 쓸모의 정도에 따라 그 가치를 평가받는다는 말이다. 그 결과 다양한 대상들은 삶에 필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가치에 대한 평가를 통해 새로운 가치가 창조되며 다가온 삶은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가치평가와 가치창조 과정은 모두 자기의식 내에서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의식 외부에 자리 잡은 신적 존재와 같은 초월적 힘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을 가치평가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신을 부정하면서 시작한 근대철학은 철학의 자기 목적에 도달한다.

  가치철학에서 가치의 수립은 명제화에서 비롯한다. 명제는 참과 거짓이 분명한 문장을 말한다. 가령 ‘나사렛 사람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이다’는 참인 명제다. 이 문장의 구조는 (서술어인) 마리아의 아들들 가운데 (주어인) 나사렛 사람 예수도 속해 있다는 점이다. 모든 명제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가치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명제가 성경의 어떤 객관적 진리를 보여주는 근거는 아니다. 진리가 될 수 있다면 단지 사용 맥락에서 일시적 유용성을 가진 가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은 어떤 가치인가? 신은 가치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가치평가의 대상이 된다면 신은 더 이상 신이 될 수 없다. 신을 가치평가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순간 신은 이미 절대적 의미를 상실한다. 신을 가치로 삼는다는 자체가 신성모독이 다. 신은 다만 인식의 무한한 과제이며 목표일 뿐 평가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종교는 가치평가의 대상으로 보편화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신의 존재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신의 존재가 그만큼 세속화되었다는 뜻도 된다.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물질적 재화(財貨)가 현대사회의 중요한 평가 대상이라면, 같은 시대에 신의 존재에 대한 가치평가가 증가한다는 것은, 신의 존재도 물질적 가치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뜻도 된다. 다시 말해 신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을 달래기에 필요한 긴요한 수단가운데 하나다.

  ‘신의 죽음’을 고하는 사명(?)을 마친 니체가 죽은 해(1900년)는 20세기가 시작하는 연도이기도 하다. 니체 사후 가치철학의 발전은 신의 죽음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신의 죽음이 확산되는 방식이 신에 대한 전면적 거부이기보다는 종교에 대한 논의가 증가되는 모습을 취한다. (부정하든 긍정하든) 신에 대한 가치평가가 늘어난다는 것은 절대자 신이 욕구실현의 희생양이 된다는 말과 같다. 놀랄 일이 아니다. 아니, 놀랄 일이다. 이미 200여 년 전에 성령께서는 바울을 통해 약속하셨다.

딤후3:1,4,7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이다.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며 7 항상 배우기는 하나 결코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

<다음 호에는 ‘시간 속의 가치에 내려진 심판’을 다루고자 합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진리의 시간성이라는 아이러니
의식(意識)의 수단으로 전락한 현대의 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