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1-09-02 11:5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하이데거 : 철학적 착각의 종결


‘신의 죽음’이 공포(公布)된 이후 현대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에 남아있는 가능성이 무엇인가를 추적한다. 인간의 사고 구조에서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아간다. 필요한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본래의 원천을 추적할 만큼 인간 존재에 대해 신비함과 경외심을 보여준다.

  절대적 존재인 신이 사라진 자리에 어떤 동물보다 포악하고 잔인하고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한테서 하이데거는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다. 더욱 근원적인 차원에서 인간을 경외할 수 있는 여지를 진지하게 탐문했다. 제1차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만행 한가운데서 이를 뛰어넘는 다른 존재로서 유럽인을 찾고 싶었다. 

  하이데거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소모되어 버리는 유한한 인간 존재에 주목한다. 죽음의 공포를 늘 의식하고 살거나 혹은 금방이라도 죽을 수 있는 가련한 존재인 인간(현존재)이지만, 삶의 공포를 의식하며 거듭 반성하는 사고의 구조는 불쌍하고 딱한 존재라는 인상을 지워버리게 한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이미’ 이해하고 있는 듯한 섬광같은 사고는 그 사고의 원천과 깊이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하이데거는 여기에 주목한다. 

  인간이 ‘이미’ 자기 존재를 이해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하이데거는 특히 강조한다. 다시 말해 하이데거는 경험 이전에 이미 있고 인간 존재의 깊이와 신비를 더해주는 본래적 가능성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극(선)과 극(악) 사이에서 겪는 경험들을 전체적으로 한순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경험의 한계가 분명할수록 그 경계 너머의 차원에 대한 확신을 더 키워준다.

  이러한 사고 구조는 우연한 것이거나 선별해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필연성을 갖는다. 경험 이전에 전체에 대한 통찰이 발생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인간의 ‘사고(思考)’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총제성을 이미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러한 사건이 강제성없이 자발적으로 발생한다. 그 동인(動因)을 애써 묻지 않아도 될 만큼 사유는 자기 전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이데거는 서양근대철학의 종결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근대철학의 핵심인 ‘생각하는 자아’에 대한 철학을 완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신을 대체한 근대의 인간 주체였으나 충분한 자기 자리 매김을 할 수 없었던 존재(현존재)의 미숙함을 하이데거는 사유의 본래 구조를 재검토함으로써 개선하려고 한다.

  특히 경험 이전의 단계에 대한 논리적 필연성으로 강조함으로써 개혁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예정’과 같은 교리는 전적으로 인간의 고안물이 된다. 신적 계시에 의한 성경 권위는 인간의 논리와 정서에 의해 얼마든지 서술될 수 있는 문헌 정도로 전락한다. 그야말로 유일신론에 근거한 종교적 주장들이 이성적으로 얼마든지 ‘납득’된다는 말이다. 별스러운 종교적 비밀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신비와 경이로움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간 사고의 깊이와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줄 뿐이다.

  덧없는 시간 세계에 매몰되어가는 듯한 존재로 보이지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나’란 존재는 생각한다는 사실에서 이미 존재했던 자기 존재를 추론한다. ‘그곳’에  존재하는 본래적 주체가 ‘자아’이다. 이 자아는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게 해주는 원천이 된다. 이러한 인간 고유의 능력을 칸트는 ‘초월론적 통일성’이라고 부른다.

  초월이란 경험 이전에 있으면서 동시에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말이므로, 초월론적 통일성에는 인간이 통일성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 존재란 뜻이 담겨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인식은 자기 자신과 일치해야 한다’는 말은 철학적 인식론의 고유한 명제가 된다.

  서양철학에서 생각한다는 사건은 인간에게만 가능한 사건이다. 그 주인공인 자아(自我)는 시각(時刻)을 따라가면서 지속적으로 동일한 본성을 유지한다. 그리고 모든 개념의 밑바탕에 놓여있다. 이것을 칸트는 ‘논리적 인격성’이라고 한다. 논리적이라고 함은 사유의 원천을 가능하게 하는 개념들의 규칙성과 관련된다. 인격성은 형식적 수단이나 막연한 전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말은 지식의 통합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간 지성의 근원적 행위를 촉발하는 ‘주체’와 다를 바 없다.

  데카르트에서 하이데거에 이르는 서양 근·현대철학은 ‘신의 죽음’을 계기로 더 한층 생각하는 주체로서 ‘나(자아)’의 자기 확증으로 몰려가는 과정이다. 하이데거는 칸트가 밝히려고 했던 ‘자아’의 초월성을 더 철저하게 규명하려고 하였다. 절대가치인 신이 사라진 것을 계기로 하이데거는 사유의 원천과 주관자가 인간 존재임을 증명함으로써 서양철학을 종결짓고자 했다.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고후10:12) 

<다음 호에는 ‘니체의 또 다른 후손: 분석철학자’을 다루고자 합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철학의 종말’로서 분석철학
경험 구조에 나타난 자기 오만과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