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2-01-16 12:4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철학은 지옥이다 !”


울부짖음의 제목은 비트겐슈타인이 강의 시간에 가끔 외쳤던 말이다. 지옥의 일반적 의미야 상황따라 여러 뜻을 담을 수 있지만 가장 선명해야 할 철학이 대(大)철학자에게 지옥으로 다가왔다는 것은 뭔가 살펴보고 가야할 면이 있는 듯하다.

  사실 형식적 대답은 그의 다음 말에 나온다. “철학이 지옥처럼 어렵구나 !” 비트겐슈타인은 학생들에게 고통스러운 난제(難題)를 제시하고 그것에 괴로워하며 그 물음에 공감하는 순간을 만족스러운 수업으로 여겼다. 또한 드러내 놓고 자기 고백적으로 철학적 물음에 힘겨워 했다.

  철학의 문제를 대하는 것이 괴물과 싸워야 하는 강박 관념으로 여겼으며 언제 미칠지 모르는 집념으로 문제를 고민했다. 대(大)수학자로 알려진 스승 러셀에게 이렇게 편지한 바 있다. “저는 신에게 내가 더 많은 이해를 갖게 되고 모든 것이 나에게 명료하게 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불명료함에 대해 가장 힘들어했던 철학자였다.

  특히 형이상학과 도덕 그리고 종교적 개념들(신, 존재, 자아 등)이 마치 실재하는 대상처럼 사용하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개념을 비판이나 반성 없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사용한다. 그 결과 대혼란을 초래한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의 대가(大家)인 비트겐슈타인에게 언어 사용의 규칙을 제대로 제시한다는 것은 지옥에서 벌이는 사투가 될 정도로 힘든 문제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초기에 진리 자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언어 분석을 통해 도달한 마지막 ‘요소 명제’에 대응하는 진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의미있는 것’과 ‘헛소리’는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바뀐다. 모호함을 해결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철학의 임무는 언어 사용의 규칙을 검토하고 적절하게 배열하는 데 있다고 본다.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 맥락과 구체적 상황이다. 이유는 일상 언어의 잘못된 사용이 혼미한 정신을 만들기 때문이다. 고정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를 비판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한다. “의미를 묻지 말고 그 용법을 물어 보라!” 언어의 용법을 묻게 되면 단어에 대응하는 대상을 찾지 않게 되고 그 대상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의 대상이 있든 없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단어는 어떤 대상을 일대일로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적 체계 속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단지 유동적인 하나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그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언어에서 한 단어의 의미는 그것의 용법이다.” 종이 한 장이 다양한 상황에 사용되듯이 단어도 마찬가지다. 모든 단어들이 공통으로 갖는 하나의 기능이란 없다. 그래서 고정된 절대적 “의미를 묻지 말고 그 사용 방법을 물어라”고 한다. 

  어떤 문장의 의미가 혼동되었다면 도구를 잘못 사용한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물음이 생길 때 어떤 경우에 어떤 목적으로 그것을 문제삼는지를 자문해 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행동들이 이 단어에 동반되는지를 살피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생활의 도구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듯이 언어의 용법도 하나의 목적을 가질 뿐이라고 한다. 궁극적인 유일한 목적과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현대 사상에서 언어를 통한 의사 소통은 절대적 의미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유럽 정신 역사에서 특히 기독교 역사에서 ‘로고스’(언어, 법칙, 원리 등의 의미)는 이제까지 절대적 폭군이었으며 독단의 앞잡이였다. 기독교의 언어도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단일한 목적을 이끄는 체계일 수는 없다. 일상 생활의 도구처럼 그때마다 필요한 소모품에 불과하다. 신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의미를 특별히 담는 특별한 언어란 있을 수 없다.   
   
  깊이 고민하고 언어의 사용 규칙을 엄밀하게 하려고 했던 비트겐슈타인은 지옥같이 다시 다가올 의사 소통의 미래를 이렇게 예견하고 갔다. “내가 뿌리는 이 씨앗으로 인해 난삽한 용어들만 생겨날 듯하다.” 맞았다. 인도-유럽피언의 제국은 난삽한 용어들의 쓰레기더미로 채워지고 있다.

  롬3:11~14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12 모두가 탈선하여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하다.(바른 성경)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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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와 침묵 사이의 방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