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서양 사상의 종언
‘신의 죽음’, ‘인간의 죽음,’ ‘국가의 죽음,’ ‘주체의 죽음,’ ‘철학의 종언,’ ‘역사의 종언,’ ‘이데올로기의 종언,’ ‘예술(미술)의 종말,’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저자의 죽음,’ ‘책의 죽음’, ‘언어의 죽음,’ ‘거대 서사(敍事)의 종말’, ‘모더니즘의 종말’ 등등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한 마디로 죽음의 시대다. ‘죽음’에 담긴 분위기는 다양할 수 있다. 죽거나 끝장나서 좋다는 경우도 있고, 죽지 말아야 하는데 죽어서 경악하거나 큰 실망을 하는 예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죽어 버려야 편하기에 빨리 없어져 버리라는 마음에서 만든 목록도 있을 것이다. 의도야 어떠하든 위에 든 개념들은 사상사에서 적어도 한 때는 결코 소멸할 수 없는 주제들이었다.
그런데 이 주제들 가운데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마 ‘신의 죽음’일 것이다. 불멸과 불변의 속성을 지닌 존재가 죽는다는 사실은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신이 죽었다는 소문은 인류의 역사 이래 가장 큰 뉴스였다. 19세기 말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0~1900)에 의해 전 세계에 타전(打電)된 이 급보는 낭보와 비보의 경계를 흩뜨려 놓으면서 지금은 일반화한 소식이 되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보면 유럽 주도의 기독교 역사는 한 마디로 신을 죽여 온 역사라는 말이 된다. 유럽 사상은 신의 죽음에 비례해서 발전과 퇴보를 거듭해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의 죽음이 일시 ‘복음’이 되어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듯 했으나 한 세기 지난 현재의 곳곳을 둘러보면 제대로 살아있는 것이란 없다. 존재 의미는커녕 실존을 위한 최소한의 구실도 찾지 못하고 병들어 죽어가는 처참한 신세로 이리저리 딩굴고 있다. 인간이든 국가든 역사이든 적어도 발전하리라는 최소한의 낙관론도 이제는 별무소용이다. 절대 가치였던 신의 죽음 이후 다른 것들도 연쇄와 동반의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책의 대명사였던 성경이 재미없는 신화나 우화류, 교훈집으로 전락한 것은 오래 전 이야기다. 예술을 통해서 표현해야 할 대상이 사라져 버렸다. 표현의 궁극적 대상과 기준이 사라지자 예술 분야는 난삽한 기술의 복마전이 되어 버렸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씨는 1984년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원래 예술이란 사기다. 속이고 속는 것이다. 사기 중에서도 고등 사기” 창조의 원형을 보여주겠다는 예술은 고등사기꾼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국가는 몇몇 이익집단의 전유물이 되었고 생산 활동의 이익은 소수점 몇 프로가 독식하게 되었다. 거창한 주제로 품위있게 만나는 듯하나 조금 후면 피자 조각 하나 더 먹자는 아귀다툼으로 변한다. 문자 하나에도 마음 편히 자신의 소신과 감정을 담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신의 죽음에 대한 니체의 선언이 이제 유럽과 나아가 전 세계의 보편적 일상사가 되어 절대적 가치를 거론할 수 없는 결과를 낳고 있다면, 언어의 명료화를 추구했던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자기 우려대로 또 다른 난삽한 용어들을 부추켜 명료화는커녕 무질서와 혼돈의 무덤을 스스로 파게 하는 ‘연쇄살인’의 도의적 책임에 직면해 있다.
유럽의 문명과 문화, 특히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는 서양 사상의 현재 주소는 간단히 말해 ‘없다.’ 종교적 진리를 향한 유럽식의 어떠한 이야기와 제스처라도 금방 사라져버릴 비누방물에 불과하다. 이러한 서양의 전통을 모방한 종교가 한국의 기독교라면,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기독교란 ‘없다.’ 신의 죽음이 선언된 지 130여 년이 지나가고 있는 현재, 서양 중심의 기독교와 현대 사상은 바로 죽어버린 이념의 무덤을 쌓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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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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