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공자의 근심거리들
子曰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자왈덕지불수 학지불강 문의불능사 불선불능개 시오우야.
『논어』 「술이」장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이렇다.
“공자가 말했다. 덕이 닦이지 않음과 배움이 연마되지 못함과, 의(리)를 듣고 옮기지 못함과 불선함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나의 근심거리들이다.”
덕은 반드시 수련이 된 후에야 이루어지는 것이고, 배움은 연구하고 갈아서 익숙해져야 한다. 의로운 말이나 행위는 그것을 보거나 들을 때 사람이 그대로 이행해야 의의가 있다(본문에서는 徙 대신에 ‘從’이 쓰였다). 선하지 않은 것이 있을 때에는 바로 고쳐져야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다. 공자는 자신이 이러한 일들을 바르게 하지 못할까를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덕(德)은 ‘얻음’(得, 득)과 같다. 덕 있는 사람이란 그(녀)가 날마다 무언가의 얻음을 이루어갈 때 그것이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살아갈 때 형성된다. 식물이나 동물이 자라며 이치를 따라 성숙하고 열매를 맺는 것도 하나의 모범이 된다. 사람은 하늘의 이치를 따라 바르게 살아갈 때 바른 덕(얻음)을 얻을 수 있다.
배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것의 근원 역시 사람의 사람됨의 의미를 알아가는 데 있다. 말하자면 배움은 사람을 이해하고 자연을 이해하고 나아가 우주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펼쳐져야 하는 것이다. 공자가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했을 때 그 배움은 영역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 배움의 영역은 무한대다. 그것은 논어의 내용 전체의 배움을 넘어서며, 공자가 알고 있던 모든 지식도 넘어서며, 무한대로 펼쳐나가는 끝없는 영역이다. 사람은 이러한 배움을 강구해야 한다.
의로운 말을 듣거나 의로운 행위는 곧바로 각 사람에게 그대로 실천되어야 한다. 이것이 의(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다. 의(로움)를 귀로만 듣는 것으로 그치고서 사람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의가 사람에 대하여 지니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작은 의일지라도 자신에게 옮겨져 와서 그대로 실천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나아가서 사람이 자신에게 선하지 못한 행위나 마음 씀씀이가 있을 때 그것을 고치지 않는다면 바른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마땅히 자신 안에 선하지 못함이 있는지를 살펴야 하고, 찾아내고, 고쳐야 한다. 자신의 불선한 행위와 마음 씀씀이에 대해 선한 하늘의 이치나 주변의 의로운 사람들의 행위를 배워 고쳐야 하는 것이다.
이상의 일들이 공자의 근심거리들이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덕을 쌓고 배움을 닦고 의리를 실천하고 자신에게서 악행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공자의 근심거리들이 그리스도인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리스도인 역시 덕을 쌓고 배우며 의를 실천하며 자신의 악을 고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가운데서 형성된다. 그리스도인은 또한 말씀을 배워 몸에 익숙하게 해야 한다.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의를 찾아 자신의 행동으로 드러나게 해야 한다. 말씀이 깨우치는 선하지 못한 생각이나 마음, 행동 등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진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순간순간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 그리고 행동 등이 선하지 못한 것으로 느껴지는 그 감정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배우고자 하는 열정과 느낌, 그리스도의 선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의 충동, 또는 자신이 죄를 범했거나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는 마음이 생길 때 그 마음에 따라 반응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마음을 모르는 체하고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덮어씌워 자기 책무를 회피하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할 일이 아니다. 그(녀)는 그 마음이 일어날 때 그 즉시 그대로 따라 실천해야 한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언제나 말씀을 따라 바르게 덕을 세우고, 배우기를 계속하고, 그 의를 실천하며, 자신의 악행에 대해서는 그 즉시 고치며 살아가는 것을 우리의 근심거리이자 실천 강령으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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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마흔여덟. 성경권위 부재(不在) 속의 초대교회의 세속화 I |
인간 본능과 예술의 본질: 잡신 신화(神話)에 목숨을 걸다 |